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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직격 인터뷰

유승민 "박 대통령 국민에 약속 안 지켜 실망…돌아가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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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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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따뜻하고 정의로운 ‘새로운 보수’로의 혁신을 주장해 주목받았던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는 그러한 소신엔 변함이 없으며, 박근혜 대통령도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가 입을 열었다. 원내대표를 그만둔 지 100여 일 만이다. 공무원연금법 통과를 위해 시행령 등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시정요구권이 들어간 국회법 개정안의 여야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고 대통령한테 ‘배신의 정치’ ‘자기 정치’로 낙인찍혀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던 그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조심스러웠지만 할 말은 다 하는 소신의 날은 무뎌지지 않았다.

[직격 인터뷰]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
오늘 저녁 6시30분 JTBC ‘직격인터뷰 - 위험한 초대’ 방송

- 원내대표 사퇴 연설에서 헌법 제1조 1항을 언급해 화제가 됐었다. 무슨 생각이었나.

 “정치를 왜 하는지 늘 자문하는데 그땐 정말 왜 지금 정치를 하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같은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게 그때 얻은 대답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화가 없다.”

 - 그 가치가 여당 내에서 제대로 구현되고 있나.

 “상당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당·청 관계나 당내 민주화 등 차원에서 그렇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방향으로 움직여 왔고, 우여곡절이야 있겠지만 결국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고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 억울하진 않나. 국회법 합의가 이뤄졌을 때 청와대와는 어디까지 얘기가 됐던 건가.

 “당시에도 진실을 얘기했다. 팩트(시행령 등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시정요구권,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연계해 여야 합의가 이뤄졌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자체가 위헌이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확고하다. 다만 지난 얘기를 다시 끄집어내는 건 구차하다. 더 얘기하지 않겠다.”

 - 배신감은 안 느끼나. 김무성 대표나 원유철 원내대표, 그리고 태도를 바꾼 동료 의원들에게 서운함도 있을 것 같은데.

 “특정인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동료 의원들에게 서운한 감정은 없다. 오히려 미안하다. 나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까. 하지만 의총에서 선출된 원내대표가 스스로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외부 힘이 아니라 의총에서 사퇴를 결정하는 게 맞다고 봤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당 발전을 위해 기여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 박 대통령과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게 16년 전이고, 가까이서 대한 게 11년이다.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누구보다 사심 없이 바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본인을 위해서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니까.”

 -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를 말했을 때 심경이 어땠나.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대통령이 왜 그렇게 화가 나셨을까. 대통령이 되셨으니까 그 자리에 걸맞은 인사, 정책, 소통, 국정운영을 보여달라고 주문했을 뿐인데. 그날 오후 의총에서 의원들이 원한다면 물러났을 텐데 절대다수가 유임을 바랐다. 어쨌거나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동지로서 돕는다는 차원에서 한 일이고, ‘배신’이란 표현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

 - 그런 소신이 박 대통령의 정책기조와 어긋나는 게 많아서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고 보는데 소신을 바꿀 생각은 없나.

 “나는 새누리당이 보수로 규정돼 있지만 그래도 늘 고통받는 서민들 편에 서서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정의로운 보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도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일자리 세 가지는 꼭 이뤄내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나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나 이후 내가 주장한 새누리당의 노선이 박근혜 정부가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대통령과 거리가 있는 게 아니라 국민에 대한 약속이 바뀌었다면 바뀐 게 문제다. 지금도 나라 상황이 어렵지만 우리가 말했던 경제민주화·복지·일자리 문제를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야 할 상황이 곧 온다고 믿는다.”

 - 그게 왜 바뀌었을까.

 “내가 박근혜 정부에 실망하고 있는 게 그 부분이다. 이 정부가 국민한테 약속한 그 기조 그대로 끌고 갔다면 지금보다 훨씬 국정운영이 잘되고 있으리라 믿는다. 여야의 극한적 대립도 없었을 거고, 국민 지지도 더 높았을 것이며, 정부에 대한 평가도 더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그 길로 돌아가야 한다.”

 - 원칙주의자란 측면에서 ‘남자 박근혜’란 소리도 듣는다. 박 대통령도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것 아닐까.

 “대통령하고 소통할 기회가 없었던 게 정말 아쉬웠다. 원내대표 사퇴를 결심하고도 꼭 만나서 충분한 대화를 하면서 내가 느낀 것, 국민이 느끼는 걸 전달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됐다.”

 - 한번 뵙자고 말했었나.

 “그런 뜻을 전했는데 잘 안 됐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저뿐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가진 분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그런다면 대통령의 국정 방향도 조금 바뀔 여지는 있다고 본다.”

 - 오랫동안 가까이서 박 대통령과 함께하면서 느낀 장단점을 꼽는다면.

 “기본이 아주 잘되신 분이라고 본다.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면 용기 있게 추진하는 게 장점이다. 단점이라면 좀 더 귀를 열고 소통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셨을 때 인사와 정책, 소통을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주문을 공개적으로 했었다.”

 - 그 세 가지가 잘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있는데.

 “(잘하기 위해서) 많이 애쓰고 계실 것이다.”

 - 특히 인사는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아직 임기가 절반 남았으니까 지난 시간보다 남은 시간에 더 잘하길 바란다.”

 - 좀 더 소통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 있을까.

 “소통이란 게 정책하고도 관련이 많다. 정책을 추진할 때 설득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없으면 굉장히 힘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노동개혁이든, 금융개혁이든 문제에 있어 소통의 과정을 거쳤으면 좋겠다.”

 - 내년 총선은 어떻게 전망하나.

 “전망하긴 아직 이르지만 야권은 하나로 뭉칠 걸로 본다. 여권으로는 내년 총선이 박근혜 정부 4년차에 대한 평가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선 기본적 구도가 우리에게 유리할 거라 보지 않는다. 특히 수도권 승부가 중요한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에만 머물러 있으면 아주 불리해질 거다. 새누리당이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국민에게 어떻게 새로운 희망을 주느냐가 중요한데, 지금 준비가 너무 안 되고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 수직적 당·청 관계가 총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런 당·청 관계가 공천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변화와 혁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당을 억누르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나 생각한다. 당은 행정부보다 한 발자국 앞서 비전을 제시하며 나가야 하는데 지금의 당·청 관계에서는 그런 부분이 부족하고 그 부족이 결국 국민을 실망시켜 총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 대구 지역 민심은 어떤가.

 “대구·경북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제일 높은 지역이지만 내가 주장해 온 정의로운 보수에 대해서도 의외로 많은 호응이 있다. 그런 대구 시민의 힘이 나라를 바꾸는 데 건설적인 힘이 될 거라 믿는다.”

 - 친박들을 중심으로 TK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대구·경북이 왜 물갈이 대상이 돼야 하는지 한 번도 설득력 있는 주장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저급한 주장일 뿐이다. 당의 발전을 위해 문을 열고 좋은 인재들을 수혈한다는 건 맞는 얘기지만 대구·경북뿐 아니라 전국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 인위적으로 물갈이가 이뤄지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TK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새누리당의 중요한 자산인 의원이 많은데 나와 정치적 뜻을 같이했다는 이유로 공천에서 부당하게 배제되거나 차별받으면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 액션 플랜이 있나.

 “과정을 지켜보겠다.”

 - 이런 맥락에서 김부겸 연대설도 나온다.

 “100% 소설이다. 김부겸 전 의원은 내가 존경하는 정치인이지만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당이 제일 어려웠던 시기에 당을 떠났다. 아직 서운한 게 남았다.”

 - 12년 전 일 때문에 연대를 못한다?

 “그건 아니고 나는 새누리당의 적자라고 생각하고 새누리당을 바꿔서 보수를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새누리당을 떠날 일은 전혀 없다.”

 - 타의로 밀려날 수도 있지 않은가.

 “자유롭고 공정한 공천 경쟁이라면 당연히 참여할 것이고 승리할 자신이 있다. 져도 승복할 것이다.”

 - 또 다른 공천 학살이 재연된다면.

 “아까도 말했지만 가만 있지 않을 거니 그때 가서 보자.”

 - 김무성 대표에 대해 ‘합리적 중재를 한다’와 ‘청와대에 너무 꼬리를 내린다’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 차기 대선 주자로서 김 대표를 어떻게 평가하나.

 “김 대표는 나와 정치적 노선이나 정책 등에서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정치인으로서 장점이 많은 분이다. 국민이 평가하게 내버려두자.”

 - 유 의원을 차기 대선 주자로 꼽는 목소리도 많다. 스스로의 평가는 어떤가.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다. 모든 정치인은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제대로 된 정치인으로서의 꿈이 있을 거다.”

 -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논란인데.

 “다수의 검정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된 부분이 있다는 대통령의 문제인식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가장 큰 논란이 친일과 종북인데 이를 모두 버린 균형 잡힌 역사를 교과서에 싣고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국정교과서가 최선의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설득하고 소통하는 민주적 절차를 거치면 좋겠다.”

 - 그런 절차를 안 거치고 밀어붙여서 야당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4대 개혁이 어려워지고 있다.

 “역사 교과서가 블랙홀이 되면 진짜 문제다. 벌써 노동개혁 문제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형국이 되지 않았나. 이건 문제다.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을 거다.”

 - 국방위원장도 하셨는데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형 전투기(KF- X)의 근본 문제는 뭔가.

 “그게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이 천명한 이후 13년째 논란이 돼온 거다. 일곱 번의 타당성 조사 중 여섯 번이 ‘국내 개발이 어렵다’로 나왔는데 밀어붙이고는 4개 핵심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다고 하다가 안 준다니까 우리 기술로 개발할 수 있다고 국민을 속여온 거다. 국가 안보에 관한 문제인데 개발이 안 된 상태에서 전쟁이 나면 우리 공군은 뭘 가지고 싸운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논의해야 한다. 국내 개발만 기정사실화하지 말고 연구개발은 그대로 하면서 전력 공백은 메울 수 있는….”

 - 한민구 국방장관의 굴욕도 논란이 됐다.

 “국방장관의 입장에선 어렵다 해도 시도는 한번 해보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누구누구의 책임을 묻는 게 중요한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앞으로 이 계획을 어떻게 결정하느냐가 수백, 수천 배 더 중요하다.”

 - 정치인 유승민의 목표는 뭔가.

 “어떤 자리든 정치를 그만두는 날, 국민한테 절망과 좌절을 주는 부조리나 불평등을 고치려 노력한 정의로운 보수, 그걸 위해 용감하게 개혁을 추진했던 정치인 유승민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유승민은 …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의도연구소장을 거쳐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듬해 10·26 재·보선에서 대구동구을 후보로 당선된 뒤 내리 3선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올해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됐으나 국회법 파동으로 7월 사퇴했다.

글=이훈범 논설위원
사진=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