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반도체 세계 1위, 자동차 5위 … 씨앗은 이 한 마디

중앙일보

입력 2015.10.27 00:01

업데이트 2015.10.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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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 마디 말의 힘은 강했다. 내세울만한 자원도, 새로운 사업을 일으킬만한 돈도 없던 시절. 대한민국 기업인들의 외침은 경제발전의 불씨를 살리고 이끌었던 동력이었다. 이를 전해듣고 지켜보며 사회와 연결점에서 일해온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들은 ‘한국경제를 만든 이 한마디’라 표현하며 전·현직 최고경영자(CEO) 70인의 어록과 일화를 책으로 엮었다. 정상국 CCO클럽 회장은 “경제가 활력을 잃었다고 하는데 아직 이들 창업주, 기업인들의 열정과 도전 정신은 살아있다. 현재도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주요 그룹 CCO가 쓴 『이 한마디』
책에 드러난 CEO들의 어록
이병철·박태준 회장, 애국심 강조
정주영 회장, 불굴의 의지 보이고
구인회·최종현 회장, 사람이 먼저

 “예술을 하듯 사업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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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뭐래도 밀고 나가겠습니다.” 1983년 2월의 어느 새벽, 도쿄 한 호텔에 머무르던 이병철 삼성 회장은 전화기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내린 ‘2·8 도쿄 선언’이었다. 이 회장의 당시 나이는 74세.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된 국토 위에서 사업을 해 온 창업주들은 하나같이 ‘나라 사랑’을 외쳤다. 고령의 나이에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 이 회장은 “나라가 없으면 삼성은 없어도 좋다”는 어록을 남겼다. 당시 “일본도 하기 어려워하는 반도체를 어떻게 개발하고 생산하느냐”며 만류하던 기업 임원들에게 그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을 되새기게 했다. 이 때 이 회장이 결정을 물렸다면 한국 기업들은 D램 세계점유율 1위(67.8%)라는 위상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 회장의 경영은 바둑용어인 ‘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큰 국면을 헤아릴 수 있으면 한 수 한 수 제대로 둘 수 있다’는 뜻으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 면 제대로 경영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죽기를 각오한 포항제철(현 포스코) 건설 역시 애국심 없이는 나오기 힘든 역사였다. 67년 박정희 대통령의 제철소 건설 의지를 전달받은 박 회장은 건설현장에서 힘들어하는 직원들을 볼 때마다 이렇게 외쳤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 기필코 성공해 나라와 조상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제철소 건설을 일제 식민지에 대한 대일청구권 배상금으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제철보국(製鐵報國·철을 생산해 국가에 기여한다) 정신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한진그룹을 세운 고 조중훈 회장이 69년 국영항공사였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할 때의 일화도 유명하다. 광복을 맞은 25세 때 트럭 한 대로 사업을 시작해 번듯한 화물운송업체와 고속버스회사를 거느리던 그는 적자에 허덕이던 대한항공을 인수해 운영해달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에 토를 달지 않았다.

 화물운송업으로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1억5000만 달러를 항공운송체계를 갖추는 데 투자했다. 한국은행이 보유한 외화가 5000만달러인 시절이었다.“지금까지 일궈놓은 사업마저 흔들리게 생겼다”는 주위의 우려에 “예술을 하듯 사업을 하면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예술가가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장인정신을 발휘하듯 사업에 몰입해 투혼을 발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안 할 사람은 구경이나 하시오”

 83년 말, 충남 서산에 대규모 간척공사를 하던 현대건설 직원들은 큰 난관에 빠졌다. 6400m에 이르는 방조제 중 270m만 메우면 되는데 거친 물살 탓에 아무리 바윗덩어리를 쏟아부어도 무용지물이었던 것.

 현장소장은 정주영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고철로 쓰려고 사 둔 유조선을 이용해 물막이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소장은 망설였다. 그러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봐, 해 봤어? 해보지도 않고 고민하느라 시간과 돈 낭비하지 말고 한 번 해봐.”결국 84년 정 회장의 지휘 아래 철야로 진행된 작업에서 길이 332m의 폐유조선을 방조제 쪽으로 밀어 넣어 물막이 공사를 끝냈다. 당초 계획했던 공기 45개월을 36개월이나 줄여 9개월 만에 공사를 끝냈다. 290억원의 공사비도 절감했다. 뉴스위크·타임 같은 외신들이 앞다퉈 이 공법을 ‘정주영 공법’으로 소개했다. 정 회장의 “이봐, 해 봤어”는 여전히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명언으로 남아있다.

 정 회장과 함께 국산자동차 시대를 열었던 당시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 역시 형의 ‘해봤어?’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남아있다. “포드의 조립도면조차 제대로 카피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고유모델 개발은 어불성설”이라는 기술책임자에게 “안 할 사람은 구경이나 하시오”라며 고유모델 개발을 추진했다. 74년 현대차 기획팀 대리로 포니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충구(70) 전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은 “일단 가라니깐 이탈리아로 갔다. 가 보니 뭐라도 해야한다는 각오가 더 생겼고 어깨 너머로 본 자동차 디자인·설계의 핵심 기술을 밤마다 숙소에서 적어 가지고 왔다”고 회고했다. 이런 정주영·세영 형제와 직원들의 열정은 74년 국산 첫 고유모델 자동차인 ‘포니’의 탄생을 가져왔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해봤어?”정신은 글로벌 5위의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은 석유와 비교 안 되는 무한한 자원”

 60년대 초 락희화학공업사를 운영하던 구인회 LG회장은 방콕 출장을 다녀온 허신구(현 GS리테일 명예회장)상무의 긴급보고를 받았다. “가루를 뿌리니 거품이 나고 때가 말끔하게 빠져나갑니다.” 합성세제를 만들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임원들은 팔고 있는 빨랫비누 인기가 없어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구 회장은 “자신감이 있다니 믿어줍시다”라며 허 상무의 손을 들어줬다. 한데 이렇게 개발한 ‘하이타이’가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다. 생산을 중단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럼에도 구 회장은 허 상무의 손을 다시 들어줬다. 광고를 크게 늘리고 영업을 강화하자 곧 폭발적 반응이 일어 하이타이는 대한민국 합성세제의 대명사가 됐다. 구 회장은 이 일을 두고 생전 “한 번 믿으면 모두 맡겨야 한다. 책임을 지면 최선을 다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LG는 이런 구 회장의 인간존중 철학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사출성형기를 도입한 플래스틱 사업을 시작하고 라디오·TV 개발도 최초로 이뤄냈다.

 맏형인 최종건 회장의 뒤를 이어 73년 선경(현 SK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한 최종현 회장 역시 인간중심 경영 철학을 기업에 뿌리내렸다. 80년 유공, 94년 한국이동통신 지분을 인수하며 오늘날 SK그룹의 뼈대를 만들면서도 그가 놓치 않은 건 ‘사람’이었다. “인간은 석유와 비교도 되지 않는 무한한 자원이다”라는 말은 그의 생각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이익도 도의가 밑바탕 돼야 정당한 것”

 120년 역사의 국내 최장수 기업인 두산의 박두병 초대 회장은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다”“기업의 미래는 사람에게 달렸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정직함을 요구했다. “부끄러운 성공보다 좋을 실패를 택하겠다면 그 생각이 옳다”는 말을 자주했다. 67∼73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재직시 외자유치에 성공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두산에서 먼저 자금을 사용하라고 권했지만 박 회장은 이를 사양했다. “이익도 도의를 밑바탕으로 할 때 정당한 것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인천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또한 정직을 가장 중시했다. 그 중에서도 “고객과의 약속과 믿음은 절대적으로 지켜야한다”는 걸 특히 강조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가족들에게 일본말을 절대 못 쓰도록 한 강직함을 지닌 경영인이기도 했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하나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들”이라며 “젊은 청년들도 대기업 취업만 고집할 게 아니라 창업정신을 갖고 출사표를 던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병주·김기환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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