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베트남은 제2의 중국으로 여겨지며 한국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필자 역시 이곳이 사람들의 말대로 기회의 땅인지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투자견학단에 속해 호치민시를 방문했다.
확실히 베트남은 유교 문화권이라 교육열도 높고 국민도 주변국에 비해 근면했으며 정부도 외자유치를 독려하며 개방정책을 펴고 있는 등 매력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발전 초기 단계이다 보니 그만큼 불확실성도 많았다. 또한 짧은 시간에 돈이 몰리다 보니 버블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산 가격이 너무 높았다.
견학 마지막 날 버스 안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가이드가 마지막 인사를 한다며 “베트남에 관심은 갖되 투자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너무 큰 기대를 가지면 안 됩니다”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경제발전상을 목격한 참가자들이 베트남에 투자해 인생을 바꿀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초 치는 소리를 하니 무슨 헛소리냐며 소리를 지르며 반발하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버스 안은 고성과 항의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오랜 기간 암흑기 겪는 베트남 펀드돌아보면 이 사건이 일어난 때가 정확히 베트남 펀드의 꼭지였다. 베트남이 가장 뜨거웠던 시기에 설정된 베트남펀드들은 모두가 알다시피 투자자들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베트남시장은 이후 오랜 기간 암흑기를 겪게 됐다.
해외투자 시도 자체는 권장되어야 한다. 국내가 전반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으므로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는 신흥국은 좋은 대안 투자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 펀드 사태에서 보듯이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해당국이 가장 인기를 구가할 때 투자가 이뤄진다는 게 문제다. 가입 열풍이 불었지만 지금은 문제아로 전락한 중국 펀드, 브라질 채권 등도 모두 그랬다. 유행에 동참한 결과는 참혹했다.
투자 타이밍도 문제지만 접근 방법에도 오류가 많다. 한국의 본격적 주가 상승이 고도 성장기 때 일어난 것이 아니듯이 꼭 주식시장의 방향이 경제성장률과 동행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경제성장률이 높은 국가를 찍어 대표주로 내세운 펀드에 가입하면 고수익이 난다는 오해를 하는 경향이 있다. 전체 시장을 산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 국가에 속한 가장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쪽으로 방법을 바꿔야 한다.
예컨대 2007년 대비 베트남 지수는 현재 반 토막이 나 있지만 베트남유업(Vietnam Dairy Products)은 소득 수준 향상에 따른 소비 증가의 결과 꾸준한 주가 상승을 거쳐 당시보다 5배가 올랐다. 즉, 시장 전체에 투자하는 것과 개별 기업에 투자하는 것 사이에 엄청난 결과 차이가 발생했단 뜻이다.
실제로 필자는 지난 8년간 세 가지 생각을 하고 해외투자를 해 왔다. 첫째, 한국에만 투자할 때는 1900개라는 한정된 숫자의 상장기업 중에서 골라야 하지만 해외로 범위를 넓히면 더 많은 선택지가 있어 싸고 좋은 기업을 발굴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믿음이 있다. 물론 개별기업을 일일이 분석해야 한다는 수고가 따른다. 필자와 해외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해외기업들을 직접 찾아가 탐방도 한다.
둘째, 이해가 용이한 지역과 업종을 우선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밖으로 나가 투자를 할 땐 무지가 가장 큰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브라질은 우리와 문화나 풍토가 무척 다른 곳이니 남미보단 한국과 인접한 아시아 기업들에 투자할 때 틀릴 확률이 덜할 것이다. 또한 일반 소비자 대상 사업이 B2B보다 쉽게 접근 가능하다.
유행 따라 ‘국가 찍기’ 멀리해야셋째, 국내와 비교해 우위가 있는 해외 종목을 찾겠다는 각오를 한다. 사실 국내 시장이 충분히 매력적이라면 굳이 해외로 눈을 돌릴 필요는 없다. 같은 유형의 국내 종목보다 성장성이 더 빠르다든지, 비즈니스 매력도 대비 가격이 싸다든지 하는 차별점이 있는 종목을 발견할 때 해외투자를 한다는 보람을 더 느끼게 된다. 실제로 중국의 인터넷기업, 동남아의 유통기업 등을 보다 보면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로 성장이 정체된 국내 업체들에서 찾기 힘든 시원시원한 면모를 만끽할 수 있다. 이것이 해외 종목 발굴의 매력이다.
과거에 판판이 깨지기만 해 넌더리가 난다고 외면만 해선 안 된다. 해외 없이 국내투자만으로 만족할만한 장기수익률을 올리기가 무척 힘든 시대다. 일단 ‘유행 따라 국가 찍기’ 같은 유혹만 멀리해도 큰 실패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직접투자를 한다면 내가 가진 투자아이디어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종목을 국내외 불문하고 찾아볼 것을 권한다. 내가 원하는 주식이 그 나라에 있으므로 그 나라에 투자한다는 접근이 가장 이상적인 해외투자의 모습이다. 마치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를 좇아 한국에 온 것처럼 말이다.
최준철?VIP투자자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