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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21살에 납북된 어부, 43년만에 노모·부인 만나 오열…이산가족 2차 상봉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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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오대양호 납북사건으로 북측으로 끌려간 어부 정건목(64)씨가 24일 납북 이후 처음으로 남측 어머니와 해후했다. 24~26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20차 이산가족 2차 상봉 행사에서다. 43년만에 아들 얼굴을 처음으로 보는 노모 이복순(88)씨는 아들을 얼굴을 쓰다듬으며 오열했다. 납북 당시 풋풋한 21살이었던 아들은 60대가 되어 주름진 손으로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며 본인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복순 할머니는 24일 오후3시30분 첫 상봉을 앞두고 “우리 건목이는 착하고 활발하고 우애가 좋은 아들이었다”며 아들을 만날 기대에 부풀었다.

정 씨는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호와 62호 선원 25명 중 한 명으로, 72년 12월28일 서해상에서 홍어잡이를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북측으로 끌려갔다. 정 씨는 62호 어선에 타고 있었다. ‘오대양호 사건’으로 기억되는 이 납북 사건에서 지금까지 생사가 파악된 이들은 모두 19명이며, 이 중 유일한 생존자가 정 씨다. 그는 이번 상봉에서 아내 박미옥(58)씨와 누나 정정매(66), 여동생 정정향(54)씨를 만났다.

정 씨는 살아서 가족을 다시 만났지만 또 다른 납북자인 문홍주씨는 이미 사망해 그의 아들 문치영(48)씨와 며느리 이경숙(48)씨가 남측의 가족과 얼굴을 마주했다. 전시납북자인 문 씨는 6·25가 발발 당시 서울에서 철도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전쟁 통에 배추밭을 돌보러 갔다가 의용군에 붙잡혀 갔다고 가족들은 기억한다. 문 씨 가족의 6남매 중 문 씨를 포함해 3형제가 전쟁 중 행방불명됐다.

이들의 생사는 이달 초 정부가 북측에 의뢰한 납북자 및 국군포로 50명의 생사확인 과정에서 밝혀졌다. 북측은 남측이 의뢰한 50명 중 19명의 생사를 확인했으며, 나머지 31명은 생사확인이 불가하다고 회신했다.

24일 금강산호텔에서 시작된 첫 단체상봉을 시작으로 가족들은 이날 7시30분 환영만찬의 일정을 소화한다. 상봉 이틀째인 25일은 숙소에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9시30부터 2시간 동안 개별상봉을 하며, 이어 공동중식과 오후 3시30분 단체상봉의 일정을 소화한다. 사흘째인 26일엔 바로 작별상봉이다. 최장 65년을 기다린 가족들이 2박3일간 모두 6번, 두 시간 씩, 총 12시간 동안 얼굴을 마주하는 셈이다.

지난 20~22일 열린 1차 상봉에선 북측에 거주하는 가족이 상봉을 신청해 성사가 된 96가족이 해후했고, 이번 2차 상봉에선 남측에 거주하는 가족들이 상봉을 신청해 상봉이 성사된 90가족이 만난다. 지난 23일 속초에 집결해 방북 교육 등의 일정을 소화한 남측 가족들으 24일 오전 버스를 이용해 금강산에 도착했다.

김매순(80) 할머니는 지병이 악화돼 의료진이 방북을 만류했으나 “업혀서라도 가겠다”며 앰뷸런스를 타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김 할머니는 6·25 중에 헤어진 다섯 살 위 오빠 고(故) 김갑신 할아버지의 아들 일운(48)·일명(45) 씨를 만날 예정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 고령자가 특히 많은 점을 고려해 버스 한 대 당 의사·간호사를 1명 씩 탑승시켜 건강을 돌보로고 조치했다. 휠체어·보청기도 각 43대와 51대로 가족들이 신청한 분량보다 넉넉히 준비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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