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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한국의 가을에서 미국 고향을 느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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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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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
JTBC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출연자

내게 고향 생각이 가장 많이 떠오르는 때가 바로 가을이다. 한국 친구들은 내 고향의 날씨와 계절이 어떤지를 종종 묻는다. 물론, 미국은 아주 큰 나라이고 기후도 다양하다. 내가 자란 곳은 동북부에 위치한 코네티컷주다. 한국인이 잘 아는 뉴욕의 옆이다. 흔히 ‘뉴잉글랜드’로 불리는 이 동북부 지역은 미국에서도 기후가 가장 한국과 비슷하다. 사계절이 있으며 기온도 비슷하다. 여름은 덥고(하지만 장마는 없다), 겨울은 추우며(대신 눈이 더 많이 내린다), 봄은 온화하다(한국같이 아름다운 벚꽃은 없다).

 한국과 가장 비슷한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날씨뿐 아니라 가을의 정서와 리듬이 고향과 똑같다. 한국에서 이런 가을 정서를 ‘가을 남자’나 ‘가을 탄다’는 재미있는 말로 표현하던데, 뉴잉글랜드 사람들은 ‘가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뉴잉글랜드의 가을도 휴일과 함께 시작된다. 한국에 추석이 있다면 뉴잉글랜드에는 노동절이 있다. 노동절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미국에선 가을에 새 학기가 시작한다. 이 때문에 한국에 살고 있는 지금도 나는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린 시절 새 학기의 설렘을 떠올린다.

 한국에서는 가을에 다양한 제철 음식을 즐기며 김장을 담근다. 비슷한 시기에 뉴잉글랜드의 가족들은 사과와 호박을 따러 간다. 부모님과 함께 직접 딴 사과로 애플파이와 애플사이다(사과주)를 만들곤 했다. 계피로 향미를 더한 뜨거운 애플사이다 한 잔은 매서운 가을바람으로 얼어붙은 손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곤 했다. 호박은 안을 비워내고 깎아 핼러윈 장식에 이용하거나 추수감사절에 먹을 호박파이를 만든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뉴잉글랜드의 가을은 가족이 함께 모여 제철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이다.

 가을을 얘기하면서 단풍을 빼놓을 수 없다. 뉴잉글랜드의 단풍 역시 한국처럼 매우 아름답다. 뉴잉글랜드를 대표하는 한 가지를 꼽자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 가을의 색깔들이 아닐까 싶다. 이 때문에 뉴잉글랜드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이 계절을 손꼽아 기다린다. 빨간색·노란색·주황색으로 물든 단풍이 불꽃처럼 타오르면 많은 미국인이 가을 색깔로 아름답게 물든 뉴잉글랜드의 산과 언덕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다. 잊을 수 없는 이 풍경을 위해 가족 단위로 등산을 가는 일도 흔하다.

 모든 계절 중 가을이야말로 내 고향과 가장 가깝게 느껴지고, 마음이 통하며, 공감이 간다. 나는 타고난 가을 남자인가 보다.

마크 테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