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KF-X 사업 엉망 만든 책임자들 확실히 문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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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의 4개 핵심기술 이전 거부로 좌초된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과 관련한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2013년 국회 국방위 속기록에 따르면 이용걸 당시 방사청장은 “핵심기술 이전에 이미 합의했다”고 말했다.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은 한술 더 떠 “(핵심기술 이전 포함) 어떤 것도 다 장관 책임”이라고 큰소리쳤다. 2년 뒤인 지금 이런 발언들은 새빨간 거짓임이 드러났다. 미국은 지난 4월 4개 핵심기술 이전 불가 방침을 정식 통보했고,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KF-X는 위상배열(AESA)레이더 등 4개 핵심기술이 빠지면 현재 공군이 쓰고 있는 KF-16 전투기와 대동소이하다. 이런 중대한 하자가 발생했음에도 청와대에서 물러난 사람은 주철기 전 외교안보수석 한 명뿐이다. 그나마 “문책성 인사가 아니라 본인이 쉬고 싶어 했기 때문”이란 게 청와대 설명이다. 혈세 18조4000억원이 들어간 건군 이래 최대 무기 사업이 엉망이 됐는데도 청와대는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은 채 상황을 종결한 것이다. 국민의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의 근원적인 책임자로 지목되는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이다. 김 실장은 2013년 국방장관 시절 4대 핵심기술 제공을 약속한 미 보잉사와 유럽 유로파이터사를 뒤로하고 록히드마틴의 F-35를 채택한 장본인이다. 이럴 경우 핵심기술 이전이 어려울 것임을 그가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데도 그는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호언하며 F-35 채택을 밀어붙였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당국자들이 핵심기술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업을 추진했는지 여부다. 그런 만큼 청와대는 주 전 수석 한 명을 경질하는 것으로 문책론을 피해 가려 하면 안 된다. 김 실장을 비롯해 정책결정 핵심선상에 있던 인사 전원의 책임을 확실히 추궁하고, 상응하는 문책을 해야 한다. 무리하게 미국 측에 핵심기술 이전을 재요구했다가 면전에서 거부당해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까지 퇴색시킨 한민구 국방장관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