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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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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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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마음은 미래를 바라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 푸시킨(1799~1837),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중에서

내일을 믿는 이에게 내일은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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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엔 순탄한 비단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일에 상처 받고 좌절하면서 헤쳐나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한다. 내게 언제가 가장 힘들었느냐고 묻는다면 30대라고 답한다. 나이도 많지 않은데 아이들 키우면서 큰집의 맏며느리로서 시집살이하고, 박사학위 공부하고 직장일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온 힘을 다해 노력해도 직장이나 가정에서 칭찬만 듣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마음의 진정성을 몰라줄 때, 억울하고 감정을 추스를 수 없을 때마다 대학 시절 어느 역사 시간에 선생님께서 읽어주신 이 한 구절이 내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일이 안 풀릴 때 그 속에만 깊이 빠져들면 더 앞이 안 보이고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당면한 일을 관조해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이 시구절은 그 뒤 대학총장직을 맡았을 때나 더 큰일을 감당할 때마다 산소 같은 힘을 주었다. 항상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기쁨의 내일을 기약하는 이 긍정의 힘이 위로와 평정심을 찾게 해주었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