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을 둘러싼 관련 기관들의 말 바꾸기가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사임을 불러왔다.
주철기 사임 부른 KF-X 사업 전말
방사청 작년 “핵심기술 이전 가능”
올 4월 미국 “이전 불가” 최종 통보
9월 국감에서야 방사청장 공개
KF-X 사업에 필요한 핵심 기술 이전에 대한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등의 미숙한 대응 때문에 감독 책임이 있는 청와대까지 불똥이 튄 것이다. 특히 방사청은 잦은 말 바꾸기로 불신을 자초했고, 국방부는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거듭하다가 외교 실패를 맛봤다.
KF-X 사업은 공군의 노후 전투기를 교체할 미디엄급(F-16급) 전투기를 자체 개발하기 위한 사업이다. 약 18조400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2025년까지 개발을 완료한 뒤 2032년 실전 배치가 목표다. 이를 위해 미국 록히드마틴사로부터 차기 전투기로 F-35A를 도입하면서 핵심 기술 이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의 계획과 달리 KF-X 개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통합기술 등 핵심 기술 4가지의 이전이 무산됐다. KF-X 개발 사업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방사청은 지난해 9월 정부 간 계약인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미국에서 차세대 전투기 F-35A 40대를 구입하기로 했다. 또 KF-X 사업에 필요한 기술 25개 중 21개를 이전받기로 했다. 나머지 4개 핵심 기술 이전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당시 방사청은 “기술 이전이 이행되지 않으면 합의각서에 따라 이행보증금을 몰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1년 뒤인 올해 9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자신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4가지 핵심 기술에 대해 미국 측이 지난 4월 수출승인(EL)을 최종 거부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장명진 방사청장은 9월 21일 국정감사에서 “4가지 기술에 대해 미국 정부가 수출승인을 거절해 다른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더 황당한 증언은 다음 날 나왔다. 정경두 공군참모총장은 22일 국감에서 “계약 당시부터 4가지 기술에 대한 이전이 어렵다는 사실은 식별됐던 사안”이라며 “4가지 기술 이전 부분에 대해선 그 당시에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4월 미국으로부터 최종 통보를 받은 이후 9월 국감에서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정부 차원의 입장 표명은 없었다. 군 당국뿐 아니라 6월 방사청으로부터 보고받았다는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자 방사청은 지난 5일 4개 기술에 대해 “국내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개발 방안을 추진 중이다. 특히 AESA 레이더와 관련해 다양한 획득 방안을 검토했다”면서 유럽에서 기술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13~16일) 직전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느닷없이 “미국에 4개 기술 이전을 다시 요구하겠다”며 미국행에 올랐다. 결과는 실패였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15일(현지시간)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핵심 기술 이전이 어렵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조차 2012년 타당성 보고서에서 KF-X 사업 참여 업체 중 록히드마틴이 기술 이전 부문에서 가장 미흡하다고 밝혔다. 당시 보고서는 “록히드마틴은 기술 컨설팅 정도의 협력만 할 의사가 있으며, 미 정부의 승인이 없다는 이유로 핵심 기술은 이전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지적했다. 3년 전의 일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