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국토부·해양수산부 장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교체하는 부분 개편을 단행했다. 국방·교육부 등 6개 부처 차관도 바꾸었다.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사업 핵심기술의 이전이 무산된 것에 대한 문책과 내년 총선에 출마할 장관들을 교체하는 것이 개편의 핵심으로 보인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4개 기술의 이전을 거부당한 사건은 외교안보 시스템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AESA(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를 포함한 4개 기술은 F-35 차세대 전투기 사업의 핵심 요소다. 특정국가가 무기를 판매하면서 최신 핵심기술을 이전하지 않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어떤 나라에도 4개 기술을 이전한 적이 없다. 일본·호주 같은 동맹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런 방침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사업을 추진했어야 했다.
미국의 거부 방침은 이미 지난 4월에 확인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방위사업청을 포함한 국방 당국은 2개월이 지나서야 청와대에 알렸다. 이후 청와대는 상황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군 당국은 미국과 협의가 가능하다는 변명만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미국은 박 대통령의 방미 직전에도, 미국에서 열린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No’로 답했다. 미국 입장이 분명한데도 국방장관이 대통령을 따라 미국까지 가서 다시 ‘No’를 들었으니 ‘굴욕외교’ 말이 나오는 것이다.
찰떡같다는 한·미 군사동맹에서 이런 균열이 발생한 건 외교안보 라인의 능력 문제다. F-35로 결정될 당시의 국방장관은 김관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이다. 대통령은 외교안보수석의 교체에만 그칠 게 아니라 김 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일을 제대로 처리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번 개각은 박근혜 임기 후반부를 위한 1단계 개편이다. 최경환·황우여 부총리 등 출마가 거론되는 장관들이 개편에서 빠진 것은 노동개혁과 역사교과서 등 현안 때문일 것이다. 이들을 포함해 추가로 교체가 이뤄지면 ‘박근혜 후반 내각’이 진용을 갖추게 된다. 박 대통령은 현안이 마무리되는 대로 출마 관련 장관들을 조속히 경질해 새 출발 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를 위해 정권이 강력한 국정동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개혁 입법화를 비롯해 4개 개혁과제가 버티고 있다. 한·미 대북 공동성명에서 보듯 북한 문제의 유동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미국·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하는 문제 등 외교 난제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거센 역사교과서 파동에 휩싸여 있다. 정작 국정을 처리해야 할 국회는 공천과 선거구 덫에 갇혀 있다.
대통령은 이제 외국방문의 화려한 기억으로부터 돌아와 국내의 질척질척한 현안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내년 총선 이후에는 차기 대선정국이 가열되기 시작할 것이다. 레임덕이라는 유령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