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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싸이월드 말고도 많았죠, 추억의 사이트 흥망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싸이월드가 개편되면서 잊혀졌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들어가는 SNS가 몇 년 후 어떤 이에게는 ‘그런 게 있었어?’라고 신기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사이트는 어떻게 흥했고 왜 쇠퇴의 길을 걸었을까. 추억 속 사이트의 흥망성쇠 발자취를 담아봤다.

동창 찾기 붐을 일으킨 ‘아이러브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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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전 국민을 동창회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동창 찾기 사이트가 있었다. 졸업하면 베프가 아닌 이상(아니 베프라도) 연락이 끊기기 십상이다. 그런데 인터넷이 그리운 동창들을 만나게 해준다고? 이런 꿈만 같은 일을 ‘아이러브스쿨’이 실현해냈다. 사이트의 문을 연 지 9개월 만에 회원 수는 3백만 명을 넘어섰고, 당시 매일 6만 여명에 가까운 신규 회원을 유치하는 저력을 과시하며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동창회를 열어서 첫사랑의 상대를 만나고 또 새로 사귀게 된 커플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동창 찾기 열풍이 식고 비슷한 사이트가 늘어나면서 ‘아이러브스쿨’은 주춤했다. 또 ‘사람 찾기’ 기능을 앞세운 ‘싸이월드’의 강세도 영향을 미쳤다. 반가운 점이라면 ‘아이러브스쿨’은 예전만큼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현재 유일한 동창 찾기 사이트로 살아남아 있다.

중·고등학생들의 동창커뮤니티 ‘다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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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30대에게 추억의 사이트를 묻는다면 단연 ‘다모임’을 한손에 꼽는다. ‘아이러브스쿨’이 졸업생을 찾았다면 ‘다모임’은 당시 중·고등학교 재학생 사이에 초등학교 동창 찾기의 붐을 일으켰다. 고등학생이 초등학교 동창을 찾는 것 뿐만아니라 같은 고등학교 재학생끼리도 새로운 만남의 장이 되었기에 ‘아이러브스쿨’과는 달리 차별화된 재학생 커뮤니티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잘 나가던 ‘다모임’도 ‘아이러브스쿨’과 마찬가지로 ‘동창 찾기’라는 사회 트렌드가 점차 시들해지고, 그룹 중심에서 개인 중심의 커뮤니티가 발전하면서 개인 블로그와 싸이월드가 활성화되며 자연스럽게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더욱 아쉬운 점은 ‘다모임’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한때 ‘다모임’은 SM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되어 스타 커뮤니티 아이플과 동영상 포털 ‘아우라’로 변신해 동영상 UCC 선두업체로 발돋움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수익성이 없어 서비스가 종료됐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산실 ‘프리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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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챌’은 다음, 네이버와 같이 대표적인 인터넷 포털 사이트 중 하나였다. 특히 각각의 포털 사이트들은 고유의 특징이나 주력하는 바가 있는데 ‘프리챌’은 커뮤니티 및 아바타 서비스로 유명했다. ‘싸이월드’의 미니미와 ‘다음’ 아바타의 초석을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커뮤니티 역시 소모임을 만든다고 하면 거의 대부분 ‘프리챌’ 커뮤니티에 개설할 정도로 그 인기는 컸다.

2002년 11월 ‘프리챌’은 커뮤니티 유료화를 외치며 인터넷 문화의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유료화는 당연히 실패했고 다수의 커뮤니티와 함께 실제로 목적을 가지고 사이트를 방문하는 유효 회원을 잃었다. ‘프리챌’에서 빠져 나온 커뮤니티들은 ‘다음’과 ‘네이버’로 들어갔고, 시기적절하게 치고 들어온 ‘싸이월드’에 네티즌들은 안착했다. ‘싸이월드’의 대성공은 ‘프리챌’ 유료화 덕이라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그 후 ‘섬’ 커뮤니티 서비스, ‘노라조’ 등의 게임 서비스를 시행하며 재기를 꿈꿨지만 상업적 효과는 미미했다. 2007년 ‘프리챌’은 UCC 인기 열풍에 가세해 동영상 검색사이트로 살길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결국 2011년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2013년 2월, 메일과 커뮤니티, 동영상 등의 서비스를 종료했고, 현재는 프리챌 게임 서비스만 유지되고 있다.

메신저의 시초 ‘버디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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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메신저 ‘버디버디’는 당시 청소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친구들끼리 ‘버디 아이디’를 공유하며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고, 화상채팅, 미니홈피, 아바타 꾸미기 서비스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니홈피를 꾸미고 낯선 이들과 채팅을 하며 즐거워하던 것도 잠시, 일부 채팅 서비스는 점점 퇴폐의 길로 빠져 원조교제, 음란화상채팅의 온상이 되었다.

음란한 동영상이 넘쳐났고, 광고성 쪽지에 지친 개인 이용자들이 점점 떠나게 됐다. 또 비슷한 메신저가 많아지고 2000년대 중반에 들어 네이트온과 MSN에 밀려 급격하게 쇠퇴한다. 결국 2012년 4월 단계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했고 추억의 메신저로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게 됐다.

미니홈피 전성시대 ‘싸이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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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설립돼 2004년부터 시작된 ‘싸이월드’ 붐은 2000년대 후반까지 계속됐다. ‘싸이월드’에서 개당 1백원에 판매되는 사이버 머니 ‘도토리’의 하루 판매량은 평균 1억 3천여만 원에 이르고 2008년에는 한 해 ‘도토리’ 판매액만 800억 원을 넘겼다. ‘싸이질(싸이월드에서 미니홈피를 꾸미는 일)’이나, 싸이질에 열중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싸이홀릭’, ‘싸이폐인’과 같은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개인 홈피지만 파급력이 높았기에 스타에서 정치인까지 미니홈피 관리는 필수가 됐다. 투데이 멤버에 뽑히면 자신의 홈페이지가 싸이월드 메인에 광고되면서 방문자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에 사람들은 좋아했고, 광장에서는 베스트 리플 일명 ‘베플’에 서로 뽑히려고 다양한 리플을 적어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방문자 추적 프로그램이 퍼지고 악플 문제가 거론되면서 사생활 보호가 안 된다는 목소리가 늘어나면서 블로그로 옮겨가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에 싸이월드는 프라이버시 기능이 강화된 미니홈피2를 만들어 대응하기도 했다. 명성을 계속 이어나갈 것만 같던 싸이월드도 2009년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모바일 기반 SNS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인기를 끌며 쇠퇴의 길을 걷는다. 또 싸이월드와 연동서비스로 인기를 끌던 네이트온 메신저가 카카오톡에 밀리며 서비스는 더욱 위축됐다.

한동안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던 싸이월드가 최근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9월 말, 싸이월드가 싸이홈으로 개편된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싸이홈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와 ‘싸이 블로그’가 결합된 형태로 싸이월드의 사진첩과 게시판, 다이어리 기능은 이어받고 방명록, 일촌평, 쪽지 서비스는 사라진다. 무엇보다 PC 기반에서 벗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반응형 웹 등 모바일 디자인 및 사용자환경(UI)에 최적화했다. 최근에 올린 게시물이 맨 위에 오는 ‘타임라인’ 식의 배열을 선택했는데 이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동일한 방식이다.

싸이월드는 “실시간으로 많은 양의 정보가 오가는 SNS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용자들이 언제든지 돌아와 개인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기록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타인의 소식부터 봐야 하는 것에 지친 사용자들이 자기 홈과 가까운 일촌의 홈을 오가며 예전 미니홈피에서 느끼던 ‘싸이만의 감성’을 되살린다는 전락이다”고 밝혔다. 모바일 시대에 뒤쳐졌던 싸이월드의 재도약, 그 결과가 어떨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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