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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총기·흉기 대결 한 달 … 일부 순례자 방탄조끼 착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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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호 7 면

팔레스타인 청년이 지난 14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라말라에서 이스라엘 병사들과 대치하던 도중 돌을 줄에 매달아 던지고 있다. [AP=뉴시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흉기와 총기를 마구 휘두르는 물리적 충돌이 9월 중순 이후 한 달째 계속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3차 인티파다(Intifada·대규모 반이스라엘 봉기)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자는 지난 10일부터 이스라엘에 일주일 동안 체류하며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현지를 취재했다. 현지인들은 최근 한 달간 이스라엘 주요 대도시가 3차 인티파다 우려로 어느 때보다 얼어붙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기자를 포함해 58개국에서 온 2000여 명이 참석한 ‘2015 국제우주대회(IAC)’ 행사장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예루살렘 버스 터미널에서 14일 오후 7시30분쯤 테러가 발생해 행사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동안 발이 묶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이 ‘분노의 날’로 명명한 16일에는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역 등지에서 이스라엘군이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면서 팔레스타인인 최소 3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


이달 들어 양측의 충돌로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최소 37명이 사망했고 20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팔레스타인인에 의한 20차례가 넘는 흉기 공격 등으로 이스라엘인은 적어도 8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버스 안이나 터미널, 길거리에서 시도 때도 없이 흉기와 총기 공격이 이어지고 있어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10대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이 유대인 여성과 어린이를 공격하는 일도 잦다.


예루살렘에서 만난 이스라엘 정부의 한 공무원은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인 올드시티(Old City)에 한정됐던 팔레스타인의 테러 행위가 전국 각지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 달라진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은 자신의 몸을 던져 유대인을 죽이고 샤히드(Shahid·순교자)가 되면 천국에 가서 72명의 처녀를 만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샤히드에 격분한 유대인들이 “우리도 총을 들고 그들(무슬림)을 공격하자”며 외치고 있다고 현지 가이드가 전했다.


소요사태 확산으로 상점들도 울상양측의 해묵은 갈등이 최근 다수의 사상자를 초래한 물리적 충돌로 격화된 직접 계기는 유대력(曆)으로 새해 시작에 해당하는 명절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가 발단이 됐다. 올해 로쉬 하샤나였던 지난달 14~15일 알아크사 모스크(사원)가 있는 성전산(聖殿山·템플 마운트) 일대에서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대규모로 충돌했다.


‘로쉬 하샤나 충돌’의 무대이자 유대인과 아랍계 무슬림이 가장 첨예하게 충돌해온 올드시티를 13일 오후 직접 찾아갔다. 올드시티는 유대인·무슬림·기독교도·아르메니아인 쿼터(거주 지역) 등 4개 쿼터와 성전산으로 구성돼 있다. 올드시티로 들어가는 8개의 게이트 중에서 서쪽의 자파(Jaffa) 게이트를 통해 유대인 쿼터를 거쳐 성전산 쪽 광장으로 걸어갔다.


자파 게이트 입구는 이날 오전 인근에서 유대인 여자 경찰을 팔레스타인 청년이 칼로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인지 소총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보안요원들이 배치돼 분위기가 삼엄했다. 이스라엘 국내와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가톨릭·개신교·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의 순례객과 일반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간헐적으로 몰려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일부 관광객은 방탄조끼를 입은 채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유대인 쿼터 골목에서 소규모 과일 주스 가게를 운영하는 캐나다 국적의 유대인 마이클 지누(24)는 “올드시티 상황이 불안해서 그런지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푸념했다.


성전산 서쪽에 위치한 ‘통곡의 벽’ 옆 광장에도 수십 명의 보안요원이 소총을 들고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유대인 순례객으로 보이는 10∼20대 남자 수십 명이 이스라엘 깃발을 들고 요란하게 “우리가 여기 왔다”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무슬림은 자신들이 섬기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야트막한 이곳 성전산에서 승천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메카·메디나와 함께 성전산은 무슬림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튀는 행동은 무슬림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말 아닌 행동으로 ‘평화’ 해법 찾아야1987년 가자 지구 청년 4명이 이스라엘 군용트럭에 깔려 사망하면서 시작된 1차 인티파다는 오슬로 협정으로 끝났다. 2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 극우정치인 아리엘 샤론이 무장 병력과 함께 예루살렘의 올드시티에 있는 알아크사 모스크를 방문한 2000년 9월 촉발돼 팔레스타인인 5000여 명과 이스라엘인 1000여 명이 숨졌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쫓아내고 가자 지구의 권력을 잡은 강경파 무장 세력인 하마스는 3차 인티파다를 적극 선동하고 있다. 반면 마흐무드 압바스 PA 수반은 인티파다에 부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 올드시티에 사는 아랍인 택시 기사 나달(27)은 “압바스와 하마스 모두 평화보다는 자꾸 문제를 일으키려 해 싫다”고 말했다.


최근의 충돌이 당장 3차 인티파다로 비화될 가능성은 아직 작다지만 무고한 인명 피해를 줄이고 3차 인티파다를 막으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양측의 해묵은 불신은 갈등과 분노를 키우고 폭력적인 공격을 부른다. 폭력은 보복을 초래하고 희생과 비극을 잉태한다. 예컨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공격이 잇따르자 일부 유대인 유통업체는 유대인 고객들로부터 아랍인 판매원의 해고 압력을 받고 있다고 현지 일간신문 하레츠가 전했다. 온건파 아랍인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유대인을 원망하게 되고 보복 공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인남식(중동정치학 박사)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 타결 이후 최근 이스라엘 내부에서 안보 불안감이 커지면서 이번 사태가 더 커지고 있다”며 “어차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리더십하에서는 타협이나 공조가 쉽지 않아 존 케리 미 국무장관 선에서 유엔 등 다자를 중심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만난 유대인과 무슬림은 모두 평화를 강조했다.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인사말 샬롬(Shalom)은 평화란 뜻이다. 아랍어 인사말도 평화란 의미의 살람(Salaam)이다.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은 유대인과 아랍인이 진정한 평화를 얻으려면 말보다는 상대를 존중하는 행동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건태 이스라엘 주재 대사는 “양측 갈등의 해법은 2000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중재한 캠프 데이비드 평화안에 대부분 제시돼 있다”며 “다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루살렘·텔아비브=장세정 기자?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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