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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선 공부 잘한 사람보다 중간쯤 한 사람이 일 잘하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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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호 21면

열심히 산 덕에 1조 기업을 일궜다는 박순호 회장이 자신의 경영철학을 얘기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사업 성공 비결은. “저는 그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잠은 잘 만큼 잘 잔다. 깨어 있는 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또 열심히 즐겁게 산다. 시간이 금이라고 하지 않는가. 시간을 잘 활용해 최선을 다해 일하고 성과를 바랄 뿐이다. 물론 주위 환경이 뒷받침되야 하니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 한다. 또 노력해서 얻은 모든 재물을 나누고 살아야 한다는 게 제 경영철학이다.”


-성공하려면 노력보다 운이라는 말이 있다.“운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경영철학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첫째, 경영은 교과서대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세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일상의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오늘이 좋아도 내일은 안 좋을 수 있다. 패션 트렌드는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는 또 다르다. 둘째, 가파른 경제성장에 이어 지금은 불가피하게 정체기이기 때문에 경영인으로서 나름 고민과 연구를 많이 한다.”


-섬유·패션 산업이 침체를 겪는 이유는 잘못된 정부의 정책 때문은 아닌가. “아니다. 시대의 조류, 한국의 발전 단계 같은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현재 국내 시장은 굉장히 어렵다. 공급 과잉이다. 한해 100개 이상 브랜드가 탄생하고 그 다음해에 60~70개가 문을 닫는다. 정부를 탓할 게 아니다.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잘 인식해 정부는 이에 걸맞은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인은 기업문화를 바꾸면 된다.”

-기업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나.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다.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까지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업에 애정과 애착을 가지고 직분 역할을 100%, 120% 할 때 기업이 성장한다.”


-세정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패션에서 100%라는 것은 없다. 답을 내기 힘들다. 제가 40년 동안 패션사업을 해오면서 많은 것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했다. 수많은 브랜드도 탄생도 시켜보고 또 접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세정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실패는 없어야 한다.”


-기업 경영은 힘들다. 혹시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가. “때려치울 수 없다. 우리 회사에 납품하는 회사들이 많고 대리점이 1700개 정도 된다. 한 가족을 3~5인이라고 보면 전체 우리 세정 식구가 1만6000명 정도 된다. 그러니 어떻게 접을 수 있겠는가. 사실 저에게도 기업 경영 40여년 동안에 얼마나 풍파가 많았겠는가. 하지만 저는 건강이 허락하고 힘만 있으면 100살까지라도 할 거다.”


-대학 강연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 대학생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대학에서 교과서로 이론을 공부했다면, 현장에서는 실무에 적응해야 한다. 교과서와 사회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자기자신도 모르는 게 자기의 실력이다. 내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모른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공부했더라도 현실에서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사회에 나와서는 큰 차이가 난다. 제 경험으로는 공부 잘한 사람보다 오히려 중간쯤 한 사람이 오히려 실무를 더 잘하는 경우가 많다. 입사 후 공부하지 않으면 자꾸 실력이 벌어지게 돼 있다.”


-차이가 나는 원인은. “마인드와 포인트다. 대학에서 강연하다 보면, 대학마다 또 개인마다 자질과 성향, 자세가 다르다. 메모해가며 열심히 강의를 들은 학생은 ‘이 강의의 핵심 포인트 5가지가 뭐냐’고 물으면 잘 대답한다. 아쉽게도 그런 학생이 몇 명 안 된다. 메모해가며 열심히 들은 학생은 저에게 좋은 질문을 한다. 열심히 듣지 않은 학생은 제가 대답하기에 좀 난감한 어긋나는 질문을 한다. 강의 제대로 안 듣고 질문하는 학생은 ‘포인트’가 없는 학생이다.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서 뭔가 답을 얻어가야 하겠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앞뒤가 없는 학생들도 있다. 대학이라는 터전이나 가르치는 분들도 잘해야 하지만 우선 개개인의 포인트가 중요하다.”


-포인트란 무엇인가. “의류학과나 디자인학과나 그 학과를 선택한 개인적 지표가 있을 것이다. 그 지표를 구체화시키지 않고 ‘되는대로 취업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게 포인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명문대와 비명문대의 차이인가. “그것과는 다르다. 학교의 전통적인 교육 방식과 개인의 자질에서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세정그룹에서 신입사원 뽑을 때 포인트를 보는가. “아니다. 저는 최종 면접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세정그룹의 인재 채용에서 별다른 것은 없고 성품·인성·자질을 보고 더 깊이 들어가면 재능·지식을 본다.”


-채용에는 관여 안 하지만 브랜드 품평회에는 꼭 참석한다고 들었다. 이유는. “그건 빠지면 안 된다. 제 철학과 노하우가 있고 세정이 여기 오기까지 어떤 제품을 어떻게 변화시켜서 어떤 고객에게 얼마나 팔았는지 데이터를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때 저는 디자인까지 한다. 컬러도 잡는다. 이 시대에 맞는 제품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품평은 제가 다 한다. 또 저의 품평회 참석 여부에 따라 직원들의 움직임이 다르다.”


-옛날에는 졸업 후 인턴십 없이 바로 취업했다. 인터십이 필요한가. “인턴으로 6개월이건 1년이건 현장을 접하는 과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교과서만 달달 읽다가 실제로 해보니까 너무나 멀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할 말이 있다면. “저는 오로지 자신감과 맨주먹으로 창업했다. 부모님 재산 10원짜리도 가져온 것 없다. 오늘날 세정은 패션·섬유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동종업계에서도 우리를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우리 직원들의 회사를 아끼는 마음 덕분에 오늘의 세정이 있었다. 우리 직원들에게 저의 한결같은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다. 우리 직원들과 더불어 세계의 패션 리더가 될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 진출해도 결코 뒤지지 않고 앞서나갈 것이다.”


김환영 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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