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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훌륭하다” 오방색으로 빚은 한복, 세계를 홀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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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섬유 가공이나 염색 기술로 문명 수준을 가늠할 수 있고 디자인과 색감은 예술적 눈높이를 말해준다. 걸작 명화나 천재의 음악이 아니더라도 문화를 뽐낼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옷이다. 그래서 한복이 나섰다. 아름답고 독창적인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한복 전시회가 프랑스 파리와 서울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문화 외교의 현장인 두 전시회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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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 공간은 선비정신을 주제로 모시 두루마기와 중치막 · 창의 · 홑전복 등을 전시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박물관 옆 국립장식미술관은 의복과 공예, 가구 같은 응용예술을 전시하는 유서깊은 곳이다. 이곳에서 한복을 프랑스인과 세계 관광객에게 소개하는 한국패션전이 열리고 있다.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이 행사는 한국 복식문화를 설명하는 역대 최대 규모 전시회다. 이영희·김혜순·김영석 등 한복 디자이너와 앙드레김·진태옥·칼 라거펠트(샤넬 수석 디자이너) 등 한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거장 24명이 참여했다. 지난달 19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석 달 보름간의 대장정이다. ‘한국 의복 속 오방색’이란 주제로 한복의 과거와 현재, 미래 모습을 담았다. 서영희 예술감독은 “우리 선조가 조화로운 복을 기원하며 즐겨 썼던 다섯 가지 색인 오방색을 통해 한국 역사와 생활문화, 학문에 녹아있는 정신을 보여줄 수 있도록 전시를 꾸몄다”고 말했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작품 270여 점은 색채별로 전시됐다.

파리 국립장식미술관서 한국패션전

 

다섯 가지 색채의 한복

전시는 오방색 각각의 의미를 한복으로 풀어냈다. 적색은 역동성과 염원을 상징한다. 전통을 응용한 현대복이 주인공이다.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의 철릭원피스와 거들 덧치마는 무관들이 활동복으로 사용한 철릭(상의와 하의를 따로 구성해 허리에 연결한 포)을 원피스로 재해석했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단청과 한글, 무속의식 등에서 받은 영감을 드레스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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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패션전에 박근혜 대통령의 한복이 전시됐다. 2013년 취임식 한복(왼쪽)과 영국 국빈 방문때 입은 한복. [사진 한복진흥센터]

고귀함과 풍요를 상징하는 황색은 화려한 궁중 의상과 금실로 장식한 이브닝 드레스로 채웠다. 앙드레김 드레스는 특유의 금색 자수를 사용해 왕실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풀었다.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은 국가의 중대한 예식이 있을 때 왕비가 입던 대례복인 황원삼을 재현했다. 통섭과 지혜를 뜻하는 흑색은 차세대 디자이너들의 신선한 감각이 배어난 현대복과 궁중제복으로 구성했다.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은 왕의 제복인 면복을 재현했다. 얇고 투명한 검은 사(絲)로 만들어, 안에 받쳐 입은 여러 겹 옷색이 설핏설핏 비치도록 했다. 스티브J 앤 요니P는 면복에 새기는 12가지 문양인 십이장문을 스팽글과 비즈로 정교하게 수놓은 트렌치코트와 스커트를 선보였다.

선비정신의 근간인 청색은 과거와 현재의 남성복을 전시했다. 온지음 옷공방(김정아·이경선)은 청색 사로 만든 영조대왕의 도포와 광해군의 비단 중치막(소매가 넓고 앞이 두 자락, 뒤가 한 자락인 윗옷)을 재현했다. 디자이너 정욱준(준지)은 한복의 특징을 응용해 절제미 있는 남성복을 만들었다. 저고리처럼 소매가 풍성한 셔츠, 대님을 두른 듯 아랫부분이 모이는 바지, 마고자를 변형한 재킷이 눈길을 끌었다.

신성함과 순결의 상징인 흰색은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의 모시원삼과 여성 속옷, 이영희의 한산 모시 드레스로 구성했다. 진태옥은 여러 겹의 광목을 커팅한 드레스, 짧은 저고리와 부풀린 치마의 비율을 단순하게 표현한 드레스로 한복을 떠올리게 했다.

 

문화외교 나선 박근혜 대통령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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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김영진의 ‘철릭원피스와 거들 덧치마’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복이다. 2013년 2월 박 대통령의 취임식 한복과 그해 11월 서유럽 순방 때 입은 한복 등 4벌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대통령 취임식 예복은 깊은 붉은 색 두루마기에 광택이 나는 노란색 매화를 새겨 희망과 화합, 여성미와 리더십을 표현했다. 영국 버킹엄궁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국빈 만찬을 위해 지은 한복은 오렌지색 저고리에 은빛 자수를 놓은 파스텔톤 치마다. 당시 화려한 액세서리를 한 여왕 옆에서도 은은하게 빛이 나서 한복의 매력을 제대로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과 국빈 행사 때 ‘한복 외교’를 펼치고 있다.

두 벌의 한복 옆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과 영국 여왕 만찬 장면이 흘러나와 한복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서 감독은 “대통령의 한복은 전통 한복의 품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 이번 전시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유럽 관객들은 미니멀한 디자인에다 오묘한 빛깔 조합으로 화사함을 보여준 박 대통령의 한복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면서 관람한다고 한다.

현지 관람평은 긍정적이다. 르몽드 기자는 “별다른 기대 없이 전시회에 왔는데, 전시를 보고 나니 세게 뺨 한 대 얻어맞고 가는 기분이다. 정말 훌륭하다”고 주최 측에 소감을 남겼다. 한 프랑스인 관람객은 “한국 패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정도로 성장해 있을 줄 몰랐다. 놀랍다”고 전했다. 개막 후 보름간 1만5000명이 다녀갔다.

광복 70년간의 한복

박 대통령의 한복은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다. 다음 달 1일까지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리는 ‘광복 70주년 기념 한복특별전-한복, 우리가 사랑한’ 전시회에 대통령 취임식 만찬 한복, 한미동맹 60주년 만찬 한복, 숭례문 복구 기념식 한복 3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해방 이후 70년간 한복 문화의 흐름을 조명했다. 한복의 황금시대는 19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였다. 서봉하 예술감독은 “50~60년대는 새마을운동과 의복 간소화 영향으로 소매가 좁아지고 치마가 짧아졌다가 70~80년대에 양장이 보급되면서 한복은 명절·결혼식 같이 특별한 날 입는 의례복으로 바뀌었다. 입는 횟수는 줄었지만 특별한 옷으로 인식되자 더욱 화려해졌다”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즐겨 입던 흰색 두루마기와 프란체스카 여사가 남긴 옥색 한복, 웨딩드레스 한복, 미스코리아 한복, 한류 드라마 속 한복 등 의미 있는 88점의 작품을 흥미롭게 구성했다. 하루 평균 관람객 2000~2500명의 70%가 외국인이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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