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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주민 “먹이 줄 거면 똥도 치워라” … 애니맘들 “먹이 줘야 쓰레기 안 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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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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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과 수 관계자 등이 14일 ‘캣맘’ 벽돌 사망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용인시 아파트 투척 지점에서 3차원 스캐너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 경찰은 벽돌이 어느 지점에서 던져졌는지 분석할 예정이다. [뉴시스]

“남의 일 같지가 않죠. 저도 항상 느껴왔던 위협인데요.”

 6년 차 캣맘 온정화(50·여)씨가 지난 13일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닷새 전인 8일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벽돌을 맞고 사망한 ‘캣맘’ 박모(55·여)씨 사건을 두고서다. 경찰은 캣맘을 혐오한 누군가가 일부러 벽돌을 던져 박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온씨는 “일주일에 3~4번은 주민들에게 폭언을 듣는다”며 “최근에도 ‘먹이를 줄 거면 똥까지 치우라’며 윽박지르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용인 캣맘 사망사건을 계기로 길고양이 등 동물을 돌보는 ‘애니맘(animal-mom)’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특히 벽돌을 맞아 숨진 박씨의 경우처럼 혐오감을 직접적으로 표출해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애니맘포비아’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애니맘은 주로 거리의 동물을 돌보며 도시에서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집을 지어주는 캣맘이 서울에만 3000명 넘게 활동 중이다. 그 밖에 다양한 애니맘들이 도시 곳곳에서 활동 중이다. 유기견들을 관리하는 ‘도그맘’,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피존맘’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배진선 주무관은 “캣맘을 비롯해 다양한 애니맘들의 활동을 시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특히 비둘기의 경우 유해 조수로 지정돼 있어 먹이를 주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점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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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맘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은 편이다. “애니맘들 때문에 동물들이 모여들어 동네 환경이 지저분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일부 주민들은 애니맘들에게 협박이나 폭언을 일삼기도 한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캣맘 이모(35·여)씨는 “지난주에 동네에서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아가씨 고양이 밥 줘요? 요즘 뉴스 봤죠. 조심해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했다.

 대구 동구에서 활동 중인 도그맘 배모(48·여)씨는 마을 뒷산에 살고 있는 유기견들에게 먹이를 주던 중 취객에게 폭언을 들었다. “언젠가는 그 시끄러운 개를 보신탕 가게에 보내버리겠다”는 얘기였다. 피존맘들도 봉변을 당하는 건 마찬가지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사랑실천협회’ 민원실에는 사람들이 피존맘에게 욕설을 한다는 제보가 매주 1~2건씩 접수되고 있다.

 주민들이 애니맘들에게 공개 망신을 주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1월 부산 연산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유기견들에게 먹이를 주는 도그맘들을 겨냥한 대자보가 붙었다. ‘괜한 짓 해서 동네를 더럽히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주택가에서는 먹이를 놓는 곳 앞에 ‘먹이 주지 마세요. 짜증 납니다’란 벽보가 부착되는 일도 벌어졌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아파트 단지에서 캣맘 쫓아내는 방법’ 등이 공유되고 있다. ‘고양이 먹이인 참치캔에 몰래 차량용 부동액을 넣으면 (고양이 퇴치에) 효과가 좋다’ 등의 글들이 올라온다.

 애니맘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너무 단편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주장한다. 캣맘 온정화씨는 “길고양이가 너무 많아지면 도시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비를 털어 중성화수술을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온씨가 활동 중인 ‘성동&광진 캣맘 모임’은 길고양이 숫자를 조절하기 위해 회원들이 400만원을 모아 고양이 20마리에 중성화수술을 시켰다. 조희경 동물연대 대표는 “애니맘들이 먹이를 주지 않는다면 길거리 동물들이 쓰레기 봉투를 헤집고 썩은 음식을 먹어 병균을 옮길 가능성이 있다”며 “먹이를 주는 게 오히려 더 위생적”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동물을 무작정 배척하지 않으면서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건국대 수의학과 한진수 교수는 “고양이 등 길거리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싶다면 이탈리아처럼 중성화수술도 함께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캣맘을 만날 때마다 ‘중성화수술도 같이 시켜달라’고 부탁하고는 있지만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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