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으로] “과학수사·집회시위 관리 배우자” 중동·제3세계 국가들 ‘K캅’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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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찰관의 지휘 아래 훈련 중인 오만의 경찰 대원들. 현재 아랍에미리트와 오만에선 경찰청에서 파견된 6명의 교관이 활동하고 있다. [사진 경찰청]

“K캅의 물결, 한국은 치안도 수출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The K-cop wave, policing proves to be another South Korean export).”

러브콜 받는 한국 치안시스템

 지난 6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게재된 기사의 첫머리다. 이 기사는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가요 ‘K팝’에 빗대어 ‘K캅’이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 한국의 치안력 수출을 자세히 다뤘다. 이는 결코 과장된 조어(造語)가 아니다.

실제로 최근 경찰청엔 한국 경찰의 선진 치안시스템 전수를 요청하는 세계 각국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요청한 나라만 22개국에 달한다. 경찰은 이 중 세르비아·아랍에미리트(UAE)·인도네시아 등 10개국을 시스템 전수 대상 국가로 선정해 현재 9개국에 치안 전문가를 파견했다. 이들 10개국 중 세르비아·UAE 등 5개국은 과학수사 기법을, 멕시코·브루나이 등 5개국은 평화적 집회시위관리에 대한 전문가를 요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K캅을 선호하는 국가들은 과학수사 기법이나 집회시위 관리 기법 중 하나를 우선 배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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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시스템 전수가 시작된 건 2012년부터다. 초기에는 치안이 불안한 중남미와 중동 국가들을 중심으로 집회시위 관리 노하우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속칭 ‘물대포’로 불리는 살수차와 여경 바리케이드 등에 대해 배우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로 시위 진압을 맡는 경비국 소속 경찰들이 파견됐다. 최근에는 과학수사 기법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은 지난해에도 14개국의 요청을 받아 8개국에 전문가 58명을 파견했다. 이 중 과테말라에선 지난 4월 사이버수사팀 발족이라는 결실이 맺어졌다. 중남미 국가 중 처음이다. 경찰청 치안한류센터의 여태수 경정은 “한국 경찰의 과학수사 능력은 이미 세계적으로 톱클래스로 인정받고 있다”며 “여기엔 몇 가지 계기가 있다”고 말했다.

 처음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건 2004년 12월 태국 등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 사태 때다. 동남아 국가들의 요청을 받아 한국 경찰도 과학수사팀을 파견해 시신 확인 작업을 도왔다. 수십여 일이 걸릴 거라던 예상을 뛰어넘어 일주일여 만에 시신들의 신원을 확인해 각국에서 파견된 경찰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6년 7월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발생한 영아살해 유기사건은 또 하나의 계기였다. 당시 영아의 실제 부모가 누구인지를 두고 한국 경찰과 프랑스 측의 견해가 팽팽히 맞섰다. 한국 경찰은 DNA 조사 결과를 거쳐 집주인인 프랑스인 부부를 지목했으나 프랑스 측은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한 달여가 지나서야 ‘한국이 옳았다’고 인정했다. 이 때문에 주한 프랑스 대사가 방배경찰서를 찾아가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2011년 1월 경찰이 다국적 IT기업인 구글을 개인통신정보 무단 수집 혐의로 기소한 것도 대표적 성과다. 같은 혐의를 수사해온 16개국 경찰 가운데 이를 사실로 밝힌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다.

 또 매년 전 세계에서 수백여 명의 경찰이 한국을 찾아와 첨단 수사 기법을 배워 가고 있다. 2005년부터 한국에서 연수를 받은 해외 경찰은 964명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추어 경찰청은 지난 5월 ‘치안한류센터’라는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여 경정은 “이 같은 K캅 열풍의 근저에는 한국의 국격 상승이 깔려 있다”며 “특히 IT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동 및 제3세계 국가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최근 한국을 주 무대로 벌어지는 보이스피싱 사건 등은 최신 수사 기법들을 발전시키는 촉진제가 됐다. 요즘 중남미 국가에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확산되는 가운데 가장 전문적인 수사 능력을 갖춘 국가로 한국이 꼽히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북한의 연이은 디도스 공격에 대한 신속한 대응도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디지털수사 능력을 눈여겨보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밖에 빛의 파장을 활용해 발자국 등 생물학적 증거를 검색하는 ‘증거물 검색기’나 인체에 무해한 지문 채취용 분말인 ‘S분말’ 등 특허까지 낸 원천기술은 해외에서 탐내는 과학수사용품이다.

 전문가 파견을 요청한 국가 중 UAE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파견된 경찰 전문가뿐 아니라 가족 체류비까지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반면 일부 국가는 우리 측이 비용을 써 가며 지원하기도 한다. 사이버범죄수사와 디지털포렌식의 전문가 파견을 요청한 과테말라와 캄보디아 같은 국가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곽정기 경찰청 외사수사과장은 “굳이 우리 돈을 들여 그들의 치안력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은 현지 교민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낙후된 경제 등으로 인해 치안에 투자하기 어려운 국가들을 지원해 교민 관련 사건이 발생했을 때 원활한 공조 체제를 가동시키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런 판단 아래 경찰청은 내년부터 필리핀 경찰에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을 받아 400만 달러 상당의 수사 관련 기자재를 무상 지원하기로 했다. 필리핀에서 교민 대상 강력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데 대한 조치다.

[S BOX] 올해 치안 장비 수출액 675억 … 파푸아뉴기니와 10억 달러 MOU도

“K팝처럼 K캅도 경제적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경찰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초청연수 형태로 해외 경찰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2억3000만 달러(약 2670억원) 규모의 치안 관련 장비를 수출했다. 올해도 5820만 달러(약 675억여원) 규모의 장비 수출이 예정돼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2018년까지 10억 달러를 투입해 ‘경찰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인 파푸아뉴기니는 우리 경찰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국 치안 시스템의 주요 수입국이 된 것이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시위 진압용 살수차나 방패 등을 수출해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고 있다”는 우려도 한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과거 몇몇 국가는 실탄 발사 허용 등 지금보다 더 위험한 방식으로 대응했다”며 “오히려 현지에서 선진적인 시위 관리 시스템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전했다.

 또 과거에 비해 시위 관련 장비 수출은 감소하는 대신 과학수사 장비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올해 체결된 주요 계약도 디지털포렌식센터(오만), 폐쇄회로TV(CCTV) 및 경찰통신망(파푸아뉴기니), CCTV 시스템(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과학수사 장비에 집중돼 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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