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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 고3만 받아주는 직업학교 … 휘성·노브레인도 선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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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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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현산업정보학교 댄스실에서 6일 조남준(18·실용음악과)군이 부르는 자작곡에 맞춰 같은 과 친구들이 춤추고 있다. 일반고 학생들은 3학년 때 산업정보학교로 옮겨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오종택 기자]

일반 인문계 고교인 서울여고로 진학한 송재경(18)양은 지난해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대학 입시만을 목표로 모든 학생이 같은 공부를 하는 게 맞느냐는 생각에 시달렸다. 자연히 성적은 좋지 않았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컴퓨터라면 내가 잘할 수 있는데….”

[꿈꾸는 목요일] 꿈을 리셋하는 산업정보학교 아이들

 송양은 가족 중 유일하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다. 종종 발생하던 프로그램 오류를 스스로 해결하며 보람을 느꼈다. 컴퓨터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질 때쯤 진로교사를 통해 산업정보학교를 알게 됐고, 올해 종로산업정보학교 컴퓨터보안과에 들어갔다. 송양은 “이곳에서 리눅스·코딩·앱 개발·프로그래밍 등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며 “친구들이 ‘꿈을 향해 구체적으로 공부하는 네 모습이 보기 좋다’며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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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인문계 고교에 진학했던 아이들이 뒤늦게 진로를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2학년은 특성화고로 전학을 적극 권장한다지만 곧 3학년이 될 학생은 방법이 없을까. 이 같은 학생들이 늦게나마 꿈과 끼를 살릴 수 있도록 기회가 돼 주는 곳이 있다. 바로 산업정보학교다. 산업정보학교는 일반계 고교 3학년을 대상으로 직업교육을 해주는 위탁 직업교육기관이다. 서울에 5곳, 부산·대구·인천·대전에 각각 한 곳씩 모두 9곳이 있다. 학생들은 고교 2학년 말인 11월에 지원해 1, 2학년 때의 출결과 성적, 봉사활동시간 등 평가를 거쳐 12월에 최종 선발된다. 학교는 3학년 때부터 다니며 월요일은 본교, 화~금요일은 산업정보학교로 등교한다. 졸업할 땐 산업정보학교가 아닌 본교 명의로 졸업장이 나온다.

지난 6일 아현산업정보학교 실용음악과에 재학 중인 조남준(18·오른쪽)군이 부르는 자작곡 '수고했어'에 맞춰 같은 과 천경환(18)군이 젬베로 리듬을 맞추고 있다. 조군은 최근 케이블방송 엠넷의 '슈퍼스타K 7'에 출연해 가수 에일리로부터 "완전 반했다"는 평을 받았다. 조군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공부하니 학교에 오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오후 3시쯤 찾은 아현산업정보학교에선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드럼 소리와 기타 소리가 들렸다. 아현산업정보학교는 실용음악·사진영상·방송영상·제과제빵 등 모두 14개 학과에 794명이 다니고 있다. 이날 4층 합주실에서는 학생들이 각자 밴드를 구성해 교사 앞에서 자작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40여 명의 학생들은 바닥에 모여 앉아 연주를 들었다. 조남준(18)군은 “무대연주 수업 중인데 학생들이 원하는 친구와 자유롭게 밴드를 구성해 연주를 하면 선생님이 코치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조군은 이 학교 실용음악과에 재학 중이다. 최근 케이블방송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7’에 나가 가수 ‘에일리’로부터 “완전 반했다”는 평을 들었다. 중2 때부터 기타에 빠진 조군은 고등학교를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1년에 최소 1200만원이 들고, 과외까지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포기했다. 일반 인문계 고교인 수락고에 진학했지만 꿈을 접지 않았다. 조군은 “예고를 포기하면서 산업정보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이곳에서 이론까지 갈고닦아 예술콘텐트 경영 쪽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산업정보학교는 정부에서 전액 지원해 주기 때문에 학비가 들지 않는다. 조군은 요즘 하루 18시간 가까이 음악 공부에 힘을 쏟는다. 그는 “연습실에 간이 침대 하나를 놓고 그곳에서 먹고 자는데 전혀 힘들지 않다.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니 학교 오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아현산업정보학교 방승호 교장이 제자인 조남준, 천경환 군과 함께 금연송인 '노 타바코(No Tabacco)'를 부르고 있다. 노 타바코 송은 작곡가 안영민 씨가 작곡하고, 방승호 교장이 작사한 곡이다. '노 타바코'란 제목에는 '아이들을 타박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있다.


 한국폴리텍대나 대한상의(인력개발원), 각 전문대도 일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업교육을 한다. 하지만 오직 일반고 고3 학생들만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산업정보학교에 있다. 가수 휘성과 박효신, 나비, 노브레인,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다녔던 아현산업정보학교의 경우 올해 794명을 선발했는데 1848명(경쟁률 2.33대 1)이 지원했다. 특히 실용음악학과엔 올해 150명을 뽑는데 644명이 몰려 4.2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앨범을 3집까지 낸 가수이기도 한 방승호 아현산업정보학교 교장은 “본교에서 악동 취급 받던 아이들이 이 학교에 오면 천재로 거듭난다. 매년 학교에 오고 싶어 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정보학교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곧바로 취업을 한다. 서울산업정보학교 냉동공조과에 입학한 정해찬(18)군은 최근 광진구 시설관리공단 기술직 8급에 합격했다. 정군은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수업이 재미없어 잠만 잤는데 지금은 다르다”며 “기술직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면서 ‘이곳에 잘 왔다’고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아현산업정보학교 방송영상과에 다니는 김영연(18)양은 동아방송예술대학이나 한국영상대학에 진학해 방송영상공부를 심화할 계획이다. 김양은 “‘노는 학교’라는 이미지 때문에 엄마가 심하게 반대했지만 즐거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이제는 인정해 주신다. 나중에 PD로 경험을 쌓고 나만의 방송국을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는 꾸준히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직업교육 기회를 확대할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향후 고용부 등과 협업해 일반고 직업교육 위탁과정을 확대하고 2016년까지 100% 수용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노진호 기자, 김정희 인턴기자 yesno@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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