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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협동조합도 일자리 창출의 대안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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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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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아시아도시재생연구원 이사장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 프렌차이즈 빵집에 밀려 동네 빵집이 사라지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와 24시간 편의점이 늘어나면서 동네 수퍼마켓과 전통시장도 위기를 맞고 있다. 신규 창업자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데, 폐업률이 90%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처한 현실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분배와 상생이 부족한 경제정책 때문이고, 그 중심에 대기업이 있다.

 우리나라는 개발과 성장을 강조하는 경제정책을 통해 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은 정부의 지원 속에 몸집을 불려 왔다. 그런데 개발과 성장이 최고의 덕목이던 시대가 끝나고, 분배와 상생이 중요시되는 지금까지도 대기업의 몸집 불리기는 그칠 줄 모른다.

 대기업이 수익을 거두면 재투자를 해야 경제가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투자를 통한 고용창출보다 주주들에 대한 배당과 사내유보금 확보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2015년 기준으로 30대 대기업이 사내에 쌓아놓은 유보금 규모가 710조원에 달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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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이 고용에 나서지 않는 탓에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고용불안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2015년 상반기 청년 취업률은 59.6%에 불과했다. 10명 중 4명이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것이고, 이는 일반 실업률의 3배에 달한다. 또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한창 일할 나이인 40~50대에 직장을 잃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일자리를 확충하기 위해 자영업자들을 위한 소상공인 지원제도를 활성화하겠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하고 있을 뿐 좋은 일자리는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대기업이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여건이 바뀌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에 제공하던 각종 지원을 줄여서라도 일자리와 부의 분배를 고민해야 할 시대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피케티 열풍’을 일으킨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에서 세계 경제가 처한 문제의 해결방법으로 소득불평등을 개선해야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탈피하고, 상생과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협동조합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협동조합은 지분에 따라 의사결정 권한이 차별화되는 주식회사와 달리 1인 1표의 민주적 의결 절차를 통해 사업을 운영한다. 그뿐 아니라 경영진을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며, 모든 자산은 조합원 공동의 소유이고 회사가 아닌 조합원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운영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FC바르셀로나라는 세계 최고의 축구팀, 선키스트, AP통신 등이 대표적인 협동조합이다.

 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경우를 보면 세계 경제위기 때 스페인 전역에서 기업의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가 발생했으나 협동조합에 소속된 직원을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경우도 전체 시민의 40%가 협동조합에 가입돼 있는데, 평균 임금이 이탈리아 평균의 두 배에 달하며 실업률은 절반에 불과하다. 또 ‘무리(MURRI)‘라는 주택건설 협동조합은 볼로냐 전체 주택 공급의 20%를 담당하고 있는데, 다른 건설업체보다 저렴하게 주택을 제공해 주거 문제 해결에 일조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매출액 상위 50대 기업 중 15개 기업이 협동조합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일이다.

 물론 협동조합이 능사는 아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조합원의 이익을 우선하므로 외형적 성장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성장이 더디더라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됐지만 아직까지 걸음마 수준이다. 협동조합 기본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8000개에 육박하는 협동조합이 설립됐으나 실제 활동하는 협동조합 수는 10% 수준에 불과하다.

 은행권에서는 협동조합의 자본금인 조합원의 출자금을 부채로 인식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도 곤란하다. 금융과 연계하지 못한 협동조합은 뒤뚱대기 십상이다. 더 큰 문제는 협동조합 설립 마인드다. 협동조합이 성공하려면 구성원 모두의 참여와 주인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후죽순처럼 생긴 협동조합들의 설립 과정을 살펴보면 전혀 딴판이다. 협동조합의 가치나 취지에 대한 공유 없이 설립한 탓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우리 협동조합이 경제의 한 축으로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성공 비결에 그 답이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의 몬드라곤은 교육·금융·복지후생·연구라는 4대 축이 원활하게 돌아갔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경쟁보다 협동의 원리를 강조하는 교육이 지속적으로 진행돼 온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무엇보다 더불어 사는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문화가 축적돼야 협동조합이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병훈 아시아도시재생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