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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공 상담소] 친구와 대화 절반이 욕 … 혼내지 말고 왜 그런지 물어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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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드립(패륜 애드리브의 줄임말, 부모 욕),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요즘 10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애들끼리 대화하는 걸 들어보면 한 문장 속에 비속어나 은어가 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달로 한글·언어파괴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자녀가 바른 언어 습관 기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속어·은어 쓰는 아이 어떡하죠

Q 1 모든 말이 ‘씨 ’로 시작해 ‘씨 ’로 끝나는 아들 어쩌죠.

초등학교 때까지는 별문제 없이 자랐던 아들이 중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 180도 달라졌습니다. 심심하면 문을 걸어 잠그고 방안에만 처박혀 있고, 잔소리 좀 하려고 하면 짜증부터 냅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는 방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이고 들었더니 상상을 뛰어넘더군요. 애들끼리 은어나 비속어를 사용하는 건 알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모든 얘기가 ‘씨 ’로 시작해 ‘씨 ’로 끝나는 건 물론이고, 반 이상이 비속어였습니다. 당장 문을 박차고 들어가 혼을 낼까 했지만 안 먹힐 게 뻔했습니다. 아이 언어 습관을 바로 잡을 방법이 궁금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모씨·50세·강남구 대치동)

Q 2 아이는 순한데 욕 달고 사는 친구들 때문에 걱정돼요

저희 딸아이는 일반고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곧잘 해서 특목고를 준비했는데, 면접에서 아깝게 떨어졌습니다. 일반고에 보내기는 했지만 입학 전부터 걱정이 많았습니다. 학력저하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말입니다. 남녀공학인 학교의 면학 분위기는 확실히 좋지 않더군요. 공개수업 때 부모들이 교실 뒤에 떡 하니 서 있는데도 절반 이상이 엎드려 자는 모습이 가관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같은 반에 욕을 하는 애들이 많다는 겁니다. 남자애들이야 그렇다 쳐도 여자애들까지 욕을 하면서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혹시 나쁜 친구들을 사귀어 잘못된 언어 습관이 생길까 걱정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폭력적인 만화나 영화도 보지 않도록 조심스레 키워왔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주의를 시키면 좋을까요. (장모씨·48세·강서구 등촌동)

A 청소년들의 언어 사용 실태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지난 7월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온라인 웹사이트에서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조사한 결과 32.3%가 욕설이나 은어였습니다. 청소년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비속어는 ‘ 나’(6111건)였고, ‘새 ’(5537건)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또 같은 유형의 욕설을 다양하게 변형시킨 ‘씨 ’ ‘시 ’ ‘ㅅㅂ’도 각각 4031건, 3667건, 3210건을 차지했습니다.

비속어를 사용하는 대상은 친구가 48%로 가장 많았고, 불특정 남녀에게 욕설하는 경우도 25%나 됐습니다. 또 은어 중에서는 노잼(재미없다), 극혐(극도로 혐오하다), 낫닝겐(영어 Not과 ‘인간’이라는 뜻의 일본어를 합한 말), 열폭(열등감 폭발) 등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 사례처럼 자녀들의 말본새를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많습니다. 첫 번째 사례 학부모는 비속어·은어를 자주 사용하는 자녀 교육 방법이 궁금하고, 두 번째 사례 학부모는 아이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비속어·은어를 10대를 이해하는 도구로 삼으라고 조언합니다. 비속어·은어를 사용하는 건 그들이 어른과는 다르다는 정체성을 결정하고 표현하는 요소라는 겁니다. 어른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자신들만의 영역을 견고하게 만든다는 얘기죠.

부모 눈앞에서 “씨 ”이라고 말하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아이를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습니다. 하지만 이때 언어 자체에 집중해 “너 왜 말을 그런 식으로밖에 못하느냐”고 하면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반항심에 더 심한 말을 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죠.

아이가 쓰는 말보다는 그런 단어를 쓰는 상황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비속어·은어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친근감의 표시입니다. 입만 열면 욕설부터 내뱉는 아이도 처음 만난 면접관 앞에서 비속어를 사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또 분노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씨 , 우리 담임 존 어이없어”라고 말하면 학교에서 담임교사에게 억울하게 혼났을 수도 있고, 황당할 정도로 재미있는 일을 경험했을 수도 있습니다.

언어 자체를 문제 삼지 않더라도 아이의 말을 정중하고 공식적인 언어로 바꿔주는 건 중요합니다. 예컨대 자녀가 “애들이 옆에서 자꾸 지 하잖아”라고 하면 부모는 “애들이 옆에서 너를 귀찮게 했어?”로, “병 새 , 존 짜증나”라고 할 때는 “친구가 뭐를 굉장히 잘못했어?”라는 식으로 비속어를 공식적인 언어로 되묻는 거죠.

아이와 소통이 잘되는 경우라면 자녀 기분이 가라앉은 후에 사용하면 안 되는 말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좋습니다. 『B끕 언어』 저자 권희린씨는 그의 책에서 ‘비속어 수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자주 사용하는 비속어를 대화 속에 섞어 얘기한 뒤 부모가 해당 비속어의 어원을 직접 알려주는 겁니다. 잘못된 언어라는 걸 인지하면 사용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비속어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언어까지 알려주면 더욱 좋습니다.

자녀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할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학생회장 선거, 수업 시간 발표처럼 고급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시키는 겁니다. 이런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고 말본새가 하루 아침에 완전히 바뀌지는 않지만 잘잘못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부모의 언어 사용 습관입니다. 평소에 공식적인 언어를 자주 사용하는 부모를 둔 학생들의 언어 습관을 바로 잡기가 훨씬 더 수월합니다. 부모가 알게 모르게 비속어나 은어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자신도 모르게 자녀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을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의 언어폭력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청소년들 스스로도 비속어·은어 사용의 문제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입니다.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청소년 언어사용실태’와 함께 조사한 ‘언어 사용에 대한 국민인식결과’를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언어 사용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분야가 뭔가’는 질문에 ‘청소년들의 비속어, 신조어 사용’이라고 답한 사람이 전체(52.2%)보다 10대(64.8%)에게서 높게 나타났습니다. 청소년들도 비속어나 은어를 사용하는 게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계속 사용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도움말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사단법인 밝은청소년 한혜원 부장, 한우리 독서토론논술 정은주 연구소장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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