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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은 ‘부잣집 도련님’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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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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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이 인권변호사 출신의 가벼운 처신이 문제였다면 이명박은 대기업 CEO의 장사꾼 기질을 벗어나지 못했다. 박근혜가 은둔의 공주 체질이라면 김무성의 DNA는 무엇일까? 그의 한 측근은 ‘부잣집 도련님’이라 했다. 그는 평소 ‘자기 관리’에 소홀해 약점이 많은 편이다. 또한 지킬 게 많아 싸울 때 싸우지 않는다. 김무성은 오히려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다”는 입장이다.

 올 1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윤회 문건 파동의 배후는 KY(김무성-유승민)’라는 김무성 수첩이 언론 카메라에 공개됐다. 실수로 유출한 것인지 의도적인 노출인지 아리송하다. 나중에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과 술자리를 함께한 이준석 전 비대위원의 제보로 밝혀졌다. 측근들은 7월 유승민 사태가 나자 “갈라치기 수법이니 청와대와 정면대결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무성은 “나는 함부로 못할 것”이라며 “오픈프라이머리 공약으로 의원들이 내 편으로 똘똘 뭉쳤다”고 자신했다. 이런 장담과 달리 불과 두 달 만에 그는 박근혜와 공천 룰 대결을 벌이고 있다.

 김무성은 ‘인파이터’보다 피해자 코스프레가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두 번의 공천 학살과 ‘백의종군’도 그렇게 이겨냈다. 지난해 개헌 발언과 유승민 사퇴 때도 그는 청와대의 압박에 납작 엎드렸다. 승부사는커녕 ‘부잣집 도련님’다운 몸조심이다. 이번 공천 룰 파동도 마찬가지다. 김무성은 박근혜와 진검승부를 펼칠까? 새누리당 중도파 의원들은 “두 사람이 결코 죽기살기식으로 맞붙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무엇보다 김무성은 박근혜와 척질 생각이 아예 없다. 대선을 앞두고 쓸데없이 TK 민심에 미운 털이 박히면 미래가 없다.

 박근혜는 김무성과 체급이 다른 거물이다. 작심하고 새누리당을 뒤흔들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김무성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여기에 새누리당 내부에도 TK의 ‘웰빙 의원’들은 손봐야 한다는 흐름이 있다. 김무성이 “전략공천은 없다”면서도 “우선추천은 수용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배경이다. 청와대가 요구하면 ‘기술적’ 수법으로 일부 변형된 전략공천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박근혜가 유승민처럼 김무성을 찍어내기도 쉽지 않다. 우선 청와대로선 ‘국민공천 vs 전략공천’의 프레임 싸움부터 부담스럽다. 전략공천에는 권력과 밀실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만의 하나 김무성의 벼랑 끝 승부수도 경계해야 한다. 말 없는 다수의 비박(非朴)을 감안하면 국민공천과 전략공천을 새누리당 의총에 붙이면 친박이 참패할 수 있다. 친박 최고위원들이 사퇴해 전당대회가 열려도 마찬가지다. 김무성이 다시 당 대표에 출마하면 감당하기 어렵다. 청와대로선 악몽이다.

 지난달 7일 박근혜가 측근들을 이끌고 TK 지역을 순방한 ‘무력시위’도 양날의 칼이다. 수행에 배제된 새누리당 의원들은 “무섭다”면서도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다. 사실 새누리당 의원의 70%는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 자신의 손으로 공천한 ‘친박’이다. 문제는 그후의 관리 부실이다. 친박 핵심들도 “누구 덕에 의원 배지를 달았는데…”라며 구박했다. 이들 상당수가 지난해 문고리 3인방 사태로 박근혜 지지율이 곤두박질할 때 자연스럽게 ‘탈박’을 했다.

 새누리당 구도상 박근혜와 김무성은 타협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김무성은 오픈프라이머리→안심공천→우선추천으로 오락가락했지만 적어도 본전은 건졌다. 내년 총선에서 친박 우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저지한 셈이다. 만약 청와대가 과도하게 공천에 개입하면 또 국회에서 스마트폰 명단을 슬쩍 언론 카메라에 노출할지 모른다. ‘선거의 여왕’이자 승부사 기질의 박근혜와 ‘부잣집 도련님’ 체질의 김무성은 DNA가 다르다. 두 사람의 ‘OK목장의 결투’를 바랐다면 당분간 기대를 접는 게 좋을 듯싶다. 새누리당 중도파 의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입을 모았다.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이 맞붙는다고 해도 진검승부는 내년 총선 이후에나 벌어질 것이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