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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월엔 들꽃 10~6월엔 눈꽃 천지, 강설량 세계 최고 휴화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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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아래 하얀 눈을 덮어쓰고 있는 레이니어산. 이처럼 구름 한 점 없는 ‘블루 스카이(Blue Sky)’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 열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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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어산(Mount Rainier) 국립공원은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의 복판에 있다. 그래서 남한 영토(약 10만㎢)보다 두 배 가까이 넓은 워싱턴주(18만4000㎢) 어디에서도 레이니어산이 보인다고 한다. 해발 4392m의 레이니어산은 북미(알래스카 제외)에서 5번째로 높은 산이다. 레이니어산은 1890년대에 마지막 폭발을 일으킨 휴화산이다. 언제든지 다시 불을 뿜을 수 있다. 레이니어산은 전세계에서 가장 눈이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10m쯤 내리는 것은 기본이라고 한다. 1800년대 초반, 영국 해군 제독 조지 밴쿠버가 친구인 피터 레이니어를 존경해서 불렀던 것이 지금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1899년 3월 2일 미국의 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곳이다.

중앙일보·미국관광청 공동기획│미국 국립 공원을 가다 ⑪ 레이니어산 국립공원

시애틀서도 보이는 웅장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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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어산 니스퀄리 입구 인근의 침엽수림. 20m가 넘는 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워싱턴주에서 가장 큰 도시 시애틀의 전경을 담은 사진을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맑은 날 다운타운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뒤편으로 웅장한 설산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바로 레이니어산이다.

운 좋게도 사진으로만 봤던 장면을 시애틀에 도착한 날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흰 눈을 덮어쓴 레이니어산이 남쪽에서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사진에서처럼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직선거리가 약 60마일(100㎞)이니까 서울시청에서 충남 천안시청까지 거리(약 96㎞)와 비슷한데, 서울시청에서 관악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지척에 있는 듯했다. 시애틀에서 레이니어산까지 뻥 뚫린 시야 덕분이었다.

레이니어산은 독특하게 생겼다. 바가지를 뒤엎은 것 같기도 하고, 종 같기도 하다. 해발고도 4000m가 넘으면 보통 산세가 칼날처럼 날카롭다. 레이니어산을 둘러싸고 있는 유니콘 피크(2108m)나 피나클 피크(2000m)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레이니어산은 뭉툭하다.

레이니어산이 둥근 모양인 것은 화산이어서다. 레이니어산은 수백만 년 전부터 용암을 수없이 뿜어낸 탓에 한라산처럼 정상부가 날아가 버렸다. 항공사진을 보면 정상부에 백록담 같은 분화구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질학자들은 레이니어산이 원래는 지금보다 300m쯤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에버그린 이스케이프 여행사의 트레비스 버크는 “레이니어산의 마지막 분화 기록은 1890년대에 있었다”며 “그 이후로 휴화산 상태”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레이니어산이 쉬고 있지만, 언제 다시 폭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레이니어산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70㎞ 떨어진 세인트 헬렌스산의 경우 1980년 대규모 폭발을 일으켜 57명의 인명 피해를 기록한 적이 있다. 그 폭발로 세인트 헬렌스산의 정상 400m가 뭉개졌다.

이 일대의 원주민은 레이니어산을 ‘타호마(Tahoma)’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주민 말로 ‘신들의 집’ 또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여름에는 야생화, 겨울에는 만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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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시즌에만 활짝 피는 야생화 [워싱턴주 관광청]

레이니어산을 오르려면 대부분 국립공원 남서쪽의 니스퀄리(Nisqually·611m) 입구를 이용한다. 목적지는 설악산 중청대피소(1676m) 높이인 해발 1645m의 파라다이스 지역(Paradise Area)이다. 니스퀄리 입구에서 30㎞쯤 떨어져 있다. 자동차를 몰아 비좁은 산악 도로를 올라가는 동안 침엽수 사이로 레이니어산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40분이 지났을까. 빽빽하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눈앞에 레이니어산이 나타났다. 파라다이스 지역이다. 1885년 탐험가 제임스 롱마이어의 며느리 마르타가 야생화 꽃밭을 보고 “천국(Paradise)에 온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곳이다. 레이니어산에서 야생화 꽃밭은 해발 1500~1800m에 있다. 1500m 이하에는 침엽수가 빼곡하고, 1800m 이상에서는 꽃도 자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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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시즌에는 만년설이 녹아서 만들어진 폭포가 100개나 된다.

아마도 마르타는 여름에 이곳을 왔던 것 같다. 7월 중순부터 두 달 정도만 야생화 밭이 되기 때문이다. 레이니어산은 보통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겨울이다. 6월 말에도 눈이 쌓여 있어 꽃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여행자 대부분은 파라다이스 지역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당일 여행으로 인기 있는 코스는 니스퀄리 비스타 트레일이다. 왕복 약 1.2마일(2㎞) 길이로,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코스는 짧지만 경치는 감동적이다. 용설란·루핀·아네모네 등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레이니어산의 만년설과 어우러진 야생화 밭 앞에 서면 누구나 마르타처럼 천국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벤치 앤드 스노우 레이크 트레일도 인기다. 왕복 4㎞ 코스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재미가 있다. 이 코스에서는 눈이 녹으면서 만들어진 호수를 만날 수 있다. 길 초입에는 리플렉션 호수와 루이스 호수가 있고, 반환점에는 벤치호수와 스노 호수가 있다. 안내를 맡은 버크가 “레이니어산에는 눈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100개가 넘고 호수는 325개나 된다”고 자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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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쯤 되면 반바지 차림으로 산악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야생화 천국인 파라다이스 지역이 겨울에는 눈 세상으로 변신한다. 미국 국립공원 자료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 파라다이스 지역이다. 1971년 7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무려 28.5m의 눈이 이 지역에 내렸는데, 이 강설량이 기네스북에 기재돼 있다. 설악산 중청대피소 정도의 높이인데도,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내리는 것이다.

반면에 2014년 7월부터 올 6월까지는 6.7m밖에 내리지 않아 1920년 측정 이래 최소 적설량을 기록했다. 눈이 적게 내렸다고 하지만 5월에도 눈이 2m쯤은 쌓여 있다. 그래서 1917년 문을 연 레이니어산 국립공원의 유서 깊은 숙소 ‘파라다이스 인(Inn)’이 겨울에는 문을 닫는다. 보통 10월부터 이듬해 5월 중순까지 영업을 중단하는데, 올해는 10월 5일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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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문을 연 파라다이스 인.

대신 파라다이스 인 근처에 있는 헨리 잭슨 메모리얼 방문자센터는 겨울 시즌에도 문을 연다. 주말(토·일요일)과 공휴일에만 문을 여는데, 버크가 “방문자 센터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통유리 너머로 보는 레이니어산의 설경이 압권”이라고 소개했다. “아마도 다시 ‘파라다이스’라고 감탄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레이니어산 입구 중에서 겨울에도 문을 여는 곳은 니스퀄리뿐이다. 니스퀄리 입구를 통해 올라갈 수 있는 곳은,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파라다이스 지역이 유일하다. 파라다이스 지역까지는 한겨울에도 자동차가 올라갈 수 있다. 산악 스키나 크로스컨트리 스키, 스노 슈잉 등 겨울 레포츠를 즐기려는 사람이 많이 찾는다. 이 중에서 스노 슈잉만 초보자가 할 수 있는 종목이다.

산악 스키를 타려면 패러다이스 주차장에서 스키를 신고 파노라마 포인트(2074m)나 존 뮤어 캠프(3105m)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버크는 “겨울 시즌이 끝나는 5월쯤에는 반바지 차림으로 스키를 타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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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레이니어산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서는 시애틀을 경유해야 한다. 대한항공(kr.koreanair.com)이 주 5회(월·목요일 제외) 인천~시애틀 직항편을 띄운다. 시애틀에서 레이니어산까지는 자동차로 2~3시간 거리다. 당일 버스투어 상품도 많다. 이 중에서 에버그린 이스케이프(evergreenescapes.com)의 밴 투어를 이용했다. 오전 8시 시애틀을 출발해 오후 6시 30분 돌아온다. 운전사 겸 가이드가 동식물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1인 경비는 225달러(약 27만원). 교통비와 간단한 식사, 트레킹(여름 시즌), 스노슈잉(겨울 시즌) 등이 포함된 가격이다. 레이니어산 국립공원 입장료는 자동차 한 대 20달러(약 2만4000원). 겨울에도 국립공원 안에서 숙박할 수 있다. 니스퀄리 입구에서 10㎞ 들어가면 나오는 롱마이어 지역의 내셔널파크 인이 겨울에도 문을 연다. 요금 119~252달러(약 14만~30만원). 레이니어산 국립공원과 관련한 상세한 정보는 홈페이지 참조(nps.gov). 미국관광청 discoveramerica.co.kr, 시애틀 관광청 visitseattle.co.kr.

글·사진=이석희 기자 seri19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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