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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갉아먹는 애벌레, 유전자 조작 퇴치법 찾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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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호 7 면

1 교미하는 배추좀나방. 2 배추좀나방 애벌레. 3 배추좀나방으로 피해를 본 뉴욕주의 한 양배추밭. 미국 코넬대 연구진은 농약 대신 유전자 조작으로 나방을 퇴치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암컷이 죽도록 나방의 유전자를 조작해 개체 수를 줄이는 방법이다. [사진 댄 옴스테드, 코넬대 농업연구소]

미국 뉴욕주 북부지역에 위치한 한센농장에는 매년 봄 불청객이 찾아온다. 남부지역에서 날아오는 배추좀나방(diamondback moth)이다. 나방 떼는 이 지역에서 재배하는 양배추를 노린다. 이곳 양배추는 주로 샐러드나 독일식 발효 양배추 김치인 사워크라우트 재료로 판매된다.


?나방을 쫓는 데는 한 가지 농약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100여 년째 대대로 이곳에서 농장을 운영 중인 에드 한센 주니어는 “나방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농약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해야 이들이 한 가지 농약에 내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나방들이 적응력이 워낙 우수해 가장 감당하기 힘든 해충이라고 말한다.


?이 농장 근처에 있는 코넬대 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 물질을 스프레이로 뿌려 나방 수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스프레이를 맞은 나방이 알을 낳으면 그 후에 태어나는 암컷 나방 애벌레는 죽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는 연구다. 연구진은 지난달부터 야외 우리에 이 유전자 조작 나방을 넣고 안에서 일어나는 나방의 교미 습성을 조사하고 있다. 연구결과가 성공적이면 이 유전자 조작 나방들은 내년 여름부터 소규모 양배추 밭을 날아다닐 것이다.


야외 실험장서 나방 교미 습성 관찰‘자기 파괴 유전자’를 집어넣은 곤충을 미국 땅에서 풀어놓고 실험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과거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는데 유전자 조작 모기에 물리는 것에 두려워하는 일반인들의 거센 항의에 부닥치기도 했다. 하지만 연방 규제기관은 이번 유전자 조작 나방에 관한 실험에 대해서는 우려가 적은 편이라고 밝혔다. 실험을 맡고 있는 코넬대 농업연구소 앤서니셸턴 교수(곤충학자)는 “이 실험의 목적은 농업에서 사용되는 살충제 양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셸턴 교수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배추좀나방은 1940년대 후반부터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화학살충제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었던 때다. 디디티(DDT)에 내성을 갖게 진화한 첫 작물 해충이다. 다른 힘없는 경쟁자들이 DDT에 죽어나가면서 수가 크게 늘었다. 오늘날은 케일, 중국 양배추를 비롯해 양배추과의 작물이 자라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이 나방을 찾아볼 수 있다. 배추좀나방은 세계 농장주에게 연간 50억 달러가량의 피해를 끼친다. 배추좀나방은 세대를 거듭하며 우수한 적응력을 보였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 나방이 모든 합성 농약에 면역력이 있다.


전세계 농작물 연간 50억 달러 피해과학자들은 살충제의 대안을 찾고 있다. 1990년대 들어 곤충에 감마선을 쏴 불임 상태로 만드는 연구가 진행됐다. 그 이후 20여 년 동안 방사선으로 불임이 된 수컷 파리들이 야생으로 방출돼 번식이 가능한 다른 수컷 파리들과 경쟁했다. 결국 미국에서 파리 유충은 퇴치됐다. 하지만 배추좀나방은 방사선에도 내성이 있다. 이런 이유로 셸턴 교수와 함께 일했던 영국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 ‘옥시텍(Oxitec)’은 이 나방의 번식을 막는 다른 방법을 찾게 됐다. 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유전자(DNA) 조각들을 이어붙여 암컷 곤충이 죽는 유전자를 개발해 냈다. 이 유전자를 지닌 암컷 애벌레는 살기 위해 항생물질인 테트라사이클린을 주기적으로 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야생에서는 성충이 되기 전에 죽는다.


?과학저널인 BMC바이올로지에 올 7월 게재된 연구결과를 보면,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수컷 나방들은 작은 우리 안에 사는 정상 나방들을 전멸시켰다. 유전자가 조작된 수컷 나방과 교미하는 암컷 나방은 정상 유전자를 지닌 나방만큼 후손을 번식시켰다. 하지만 암컷 후손들은 번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 죽는다. 일부 수컷 나방만이 합성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다. 조작된 유전자가 몇 대를 거치며 사라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방의 개체수를 줄이려면 유전자를 조작한 수컷 나방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셸턴 교수는 야생 나방으로 가득한 야외 우리에서 조작된 유전자를 지닌 수컷 나방들이 다른 나방들과 얼마나 잘 경쟁할지 실험할 것이다. 내년 여름에 들판에 유전자 조작 나방을 풀어놓으면, 실제 이 기술이 활용될지 여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이 해충 퇴치 방식은 세간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유전자 조작 생물을 반대하는 단체는 합성 유전자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이 이 유전자 조작 나방을 먹게 되는 다른 야생동물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옥시텍의 최고경영자(CEO)인 해이든 패리는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모은 데이터를 미국 농림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옥시텍은 (조작된 유전자에서 생성된) 단백질을 모기·물고기·딱정벌레·거미에도 먹여 봤지만 해가 없었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회사가 제출한 자료를 보고 계획된 유전자 변형 곤충을 이용한 야생 실험이 환경에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동식물에 해 끼칠 수도” 비판 지난 6월 뉴욕의 노스이스트유기농업협회는 공개 서한에 서명을 받으며 이 실험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협회는 “야외 실험 도중 유전자 조작 나방이 빠져나가 근처의 농장을 오염시키고 그들의 유기농 인증에 피해를 끼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럴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공중에 방사된 야생 나방들은 근처에 먹이와 무리가 있는 한 멀리 날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멀리 벗어난다고 해도 뉴욕의 추운 날씨에 전멸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유전자 조작 곤충은 자외선에 비췄을 때 빨간 빛을 내기 때문에 구분이 가능하다. 다른 유전 정보가 이들 나방의 DNA에 인위적으로 삽입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셸턴 교수의 유전자 조작 나방을 실제 농장주가 사용할지는 미지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곤충학자 마크 베네딕트는 “결국 기술은 상업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배추좀나방을 쫓기 위한 여러 방법이 제시됐다. 애벌레를 먹고사는 말벌 등 천적을 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값싼 화학살충제 앞에선 경쟁력이 없었다. 퀸스랜드대학교 곤충학자인 마이클 퍼롱 박사는 “농약을 뿌리는 게 가장 쉽기 때문에 거부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약이 훨씬 값싸고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농장주인 에드 한센 주니어는 “아직 유전자 조작 나방을 이용하는 방법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코넬대 연구진)이 이 실험을 해서 기쁘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아직 보편화되기까지는 이르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번역=김지윤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kim.j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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