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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선물의 추억 … 1965년엔 양말, 2015년엔 셰프 세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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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今年秋夕(금년추석) 선물엔 망서리지마시고 가정표양말로! (동양섬유공업사)”

명절 선물 50년 변천사
50~60년대 쌀·참기름 등 일상용품
70년대 커피·과자종합세트 잘 팔려
80년대 잡화·참치통조림 많이 찾고
90년대부터 영광굴비·상품권 인기
2000년대 올리브유·치즈 ‘웰빙’ 추세
2015년엔 디저트, 명인 이름 건 제품

 “추석선물은 신탄진 담배로. 니코찐함유량이 파고다보다 16.5%가 적은 맛좋은 담배!(전매청)”

 “선물은 백설표 설탕으로…당분 99.9% 보증 (제일제당)”

 50년 전인 1965년 9월, 추석(9월10일)을 앞두고 한 일간신문에 실린 ‘즐거운 仲秋佳節(중추가절) 맞이 인기상품안내’의 광고문구다.

 신문엔 “서울 남대문과 동대문의 방산·자유시장 등의 아동복점에선 1000~2000원 정도의 물건이 가장 인기를 끌고 고무신 가게에선 60~100원 짜리가 인기다”, “백화점의 와이셔츠 점포에서는 평일 20매 가량에 비해 약 배가 늘어난 40매가량이 판매되고 있다”는 기사가 소개됐다. 50년 전엔 양말과 설탕·담배·고무신·와이셔츠가 최고의 인기 선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명절 선물만큼 시대적 환경과 사람들의 생활습관, 소비자 의식을 잘 반영하는 것도 드물다. 고도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명절 선물의 변천사는 경제 발전사와 궤를 같이한다. 계란 한 꾸러미에서 해외 직수입 웰빙 선물까지, 명절 선물 50년사를 짚어봤다.

기사 이미지

50~60년대

 한국전쟁 이후 무너진 사회기반을 복구하는 게 급했던 50년대엔 ‘상품’을 선물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대신 밀가루·쌀·계란·찹쌀·돼지고기·고추·참기름 등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농수산물을 정성껏 포장해 직접 주고 받으며 정을 나눴다.

 전후 복구가 어느 정도 이뤄졌던 60년대에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은 신식 일상 용품들, 즉 설탕과 비누·조미료 등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이라 먹는 것도, 생필품도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서울 개포동에 사는 김선숙(63)씨는 “명절에 각설탕이 가득 든 원형통을 받으면 설탕을 아끼려고 사카린을 섞어 먹고, 그마저 다 먹으면 그 상자가 아까워 오랫동안 집에서 요긴하게 썼다”고 회고했다. 당시 설탕은 약으로도 쓰였다. 이질에 걸렸을 때 설탕물에 메밀가루를 타 마시고 복통이나 설사에도 설탕물을 마셨는데 집에 손님이 오면 설탕물을 타서 대접하는 일이 흔했다. 60년대까지 선물 종류는 많아야 100여 개였다.
 

70년대

 70년대는 산업화·공업화와 맞물려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한결 풍요로워졌다. 취업할 기회는 풍부했고 회사 매출이 쑥쑥 늘어 직장인들의 월급도 매년 크게 뛰었다. 사람들은 명절이면 “자, 어떤 선물을 사볼까” 선택을 할 수 있게 됐고 선물 종류도 1000여 개로 늘어났다. 특히 회사마다 공산품을 활발히 생산하게 되면서 선물도 생필품이 아닌 기호품으로 바뀌어 갔다. 식용유·럭키치약·와이셔츠·피혁제품 등이 대표적이었다. 가격대는 3000~5000원 안팎이었다. 특히 커피세트와 과자종합선물세트는 어린이들은 물론 국군장병들에게도 최고의 선물로 등극했다.

 70년대 선보인 동서식품의 맥스웰 커피세트는 다방문화가 확산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맥스웰 커피세트는 설탕(제일제당)과 조미료세트(미원)에 이어 백화점 선물 매출 3위를 차지했다. 속옷이나 스타킹도 상당히 고급 선물로 인식됐고, 70년대 하반기엔 텔레비젼·전자보온밥통·전기밥솥·가스렌지 등 가전제품이 ‘꿈의 선물’로 등극했다.

 ◆80년대

 경제성장이 정점을 찍으면서 대중 소비사회가 도래했고 고급 명절 선물도 많아졌다. 사회적으로 명절 선물을 검소하게 하자는 운동이 일었을 정도다.

 획일적 선물이 아니라 상대방에 꼭 맞는 선물을 하는 새로운 선물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선물 종류도 3000여 종으로 늘어났다.

 82년도 추석을 앞두고 신문 기사들엔 5000원 이하 선물로 청주(4200원)·분말들깨(3400원)·스타킹(6족에 2880원) 등이, 2만원 이상 고가상품으로 갈비(3kg에 2만6000원)·로얄제리(1kg에 2만9000원)·국산양주 블랙스톤(2개에 2만2000원)·가죽핸드백(2만6000~4만3000원) 등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특히 넥타이·스카프·지갑 등 잡화와 함께 정육세트와 고급 과일세트, 참치통조림 등이 보편적인 선물로 등장했다. 고급 선물세트를 구성하는 ‘과대포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1987년 10월 소비자보호원은 ‘백화점 선물세트가 과대포장이 많고 낱개 구입보다 세트 구입이 비싸며 불필요한 판촉물 가격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고, 백화점들은 “1차식품(신선식품)세트는 품질을 보증하기 위한 책임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90년대

 값비싼 제품과 실용적인 중저가 선물세트. 명절선물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진 시기다. 알뜰구매를 하려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실용적인 중저가 상품이 인기를 끌었고 식품도 햄이나 참치보다 지역 특산물 수요가 크게 늘었다. 동시에 100만원이 넘는 양주나 영광굴비 등 초호화 선물도 등장해 날개돋힌 듯 팔렸다. 당시 176만원 중국산 팬더금화, 200만원이 넘는 수입양주, 345만원짜리 제주산 전복목걸이 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부터 백화점 선물세트는 선물용, 할인점 선물세트는 자가·단체용이라는 이분법이 뚜렷해졌다.

 90년대 중반 이후 최고의 인기 명절 선물은 상품권이었다. 상품권은 94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했는데 간편하면서도 사실상 현금이나 마찬가지라 각종 설문조사에서 늘 ‘받고싶은 선물 1위’에 올랐다. 이와 함께 골프나 헬스기구 등 스포츠·레저에 대한 선물도 등장했다.

 
2000년대

 2000년대도 90년대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양극화 현상이 계속 이어졌다. 이 가운데 ‘웰빙’이란 화두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명절 선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각종 건강식품과 영양제가 주요 선물 품목에 올라섰는데 와인과 올리브유, 치즈나 트뤼플(송로버섯) 등 이국적인 건강음식들도 인기를 끌었다.

 홍삼·수삼·상황버섯 등 고가의 자연 건강식품과 비타민 등 건강보조식품 선물도 부쩍 늘었다. 망고·석류·멜론 등 수입과일과 랍스타·킹크랩 등 이국적인 해산물도 이색 추석선물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창의성이 대학입시의 중요한 잣대로 강조되면서 명절에 자녀에게 퍼즐·입체서적·전자완구류·PMP 등 지능지수, 감성지수를 높일 수 있는 상품을 선물하는 유행이 돌기도 했고 재테크를 위해 금융상품을 선물하는 일도 ‘신풍속도’로 등장했다.

 
2015년 지금은?

 정육과 과일·굴비는 변함없는 인기 선물이다. 하지만 올해는 젊은 층과 1인 가구의 입맛에 맞춘 트렌드 상품과 건강한 전통 먹거리, 고급 수입 디저트가 명절 선물로 호응을 얻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명인들이 이름을 걸고 빚은 참기름·고추장·젓갈 등이 고급 선물세트로 인식되고 몽슈슈(일본)·고디바(벨기에)·PBN풍년제과(전주) 등 국내외 디저트도 주고 받는 사람 모두 만족하는 선물이 됐다. 특히 최근 먹방(먹는 방송), 쿡방(요리 방송) 열풍이 풀변서 유명한 셰프들이 꾸민 선물세트가 선보였다. 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용일 셰프, 청담동에서 유명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어윤권 셰프 등 국내 셰프는 물론 뉴욕 사라베스의 잼 세트, 파리 페에르에르메의 마카롱 세트 등 글로벌 셰프들의 식품 세트도 등장해 호기심을 끌고 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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