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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맹물 수능’ 혼란을 올해도 겪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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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50일 앞두고 또다시 ‘물수능’ 혼란이 우려되고 있다. 9월 모의평가 결과 이과 수험생은 국어A·수학B·영어 세 과목 모두 한 문제만 틀려도 1등급을 받지 못했다. 이는 수능과 모의고사를 통틀어 사상 처음이다. 특히 국어A 만점자 비율은 6.12%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능 1등급은 과목별 전체 응시자의 4%가 받는다. 이에 앞서 6월 모의평가에서도 국어B(인문계)와 영어도 만점이 1등급이었다.

 모의평가는 11월 12일 치러지는 올해 수능의 난이도를 미리 보는 바로미터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3일 “실제 수능 역시 6·9월 모의평가 출제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쉬운 수능’으로 수험생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을 잡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출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향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문제를 너무 어렵게 내면 학습 포기자들이 속출하고 사교육만 배 불릴 가능성이 있어서다. 그렇다고 실제 수능을 모의평가 식으로 출제하면 그 후유증은 엄청날 것이다. 한두 문제만 틀려도 2·3등급으로 미끄러져 수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맞추기 어렵고, 정시에서도 소수점 몇 자리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현상이 심화될 게 뻔하다.

 문제 출제 오류와 물수능 논란이 겹쳤던 지난해가 그 교훈이다. 수학B는 최다 만점자가 쏟아졌고, 영어는 2점짜리 한 문제가 1·2등급을 가를 정도로 쉽게 나왔다. 하지만 실력보다는 시험 당일 운(運)이 좌우하는 ‘실수 안 하기’ 시험은 부작용이 많았다. 수험생과 고교 진학교사들은 수시·정시 모두 변별력을 상실한 안개 입시로 큰 고통을 겪었다. ‘로또’ 같은 시험으로 수능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고, 결과에 수긍하지 않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올 반수생(半修生)이 7만5000명을 넘고, 그로 인한 등록금 낭비가 500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다.

 교육 당국은 대통령이 쉬운 수능을 강조했다고 맹물시험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적절한 난이도 조정을 통해 등급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도출되도록 변별력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게 하는 것도 교육의 중요한 가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