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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50년 미래 비전 선포] 물가·성장·무역 다 잡은 80년대 “시장 존중” 방향 이끈 중앙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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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

중앙일보가 창간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반세기에 한국 자본주의는 기적 같은 압축성장을 이룩했다. 1965년 1인당 국민소득은 105달러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3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국민총생산액을 기준으로 세계 13위의 강국이 되었다.

김민환 교수가 본 중앙일보 사설 속 한국 경제 50년

지난 50년 역사는 편의상 개발시대, 세계화시대 및 지식정보시대로 나눌 수 있다. 60년대 이후 80년까지가 경제개발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룬 개발시대였다면, 80~98년은 세계화를 지향하며 선진자본주의로 도약한 세계화시대로, 98년 이후는 지식정보기반 산업이 급성장해 생활 패턴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지식정보시대로 정의할 수 있다.

위기 때마다 견제·견인 적절히 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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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시대를 이끈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의 핵심은 국가주도 외향적 성장전략이었다. 경제기획원을 만들어 경제계획을 세우고 정부가 경제문제를 전방위적으로 통할(統轄)한 것이 국가주도 전략이었다면, 외국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여 수출 산업을 육성한 것이 외향적 성장전략이었다. 지난 50여 년 동안 경제 관련 핵심 의제는 국가주도성과 외향성이라는 두 변수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진화했다.

 개발시대에 중앙일보는 국가주도 외향적 성장전략 자체를 지지했다. 그러나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하며, 자본과 기술을 들여오더라도 미국과 일본에 지나치게 편중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가 고도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안정성장을 추구할 것을 권고했다. 고도성장정책은 국내적으로 ‘인플레’를 촉발할 뿐만 아니라 고도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고율 투자와 고율 외자 도입이 필요해 결국 국제수지 적자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이 따르지만 중앙일보는 개발시대에 시장에 대한 과도한 국가개입을 견제하며, 외향적 성장전략이 미국과 일본에 치우치는 것이나, 고도성장으로 구조적 모순이 커지는 것을 경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자 중앙일보는 시장원리를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고도성장 대신에 안정성장을 지향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다행히 정부의 고위 경제관료들도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런 충언을 수용했다. 세 마리 토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던 전두환 대통령은 시장 존중과 안정성장으로 정책방향을 틀어 결국은 임기 중에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 국제수지 흑자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은 대통령이 되었다.

 중앙일보는 우리 시장을 외국에 개방하는 문제에 관한 한 전두환 정부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신중론을 폈으나 오래지 않아 태도를 바꾸어 세계체제에 개방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장했다.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를 국가목표로 내걸고 무한경쟁에 뛰어들자 이를 적극 성원했다. 우리나라는 95년 수출 1000억 달러를 돌파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자 이듬해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경제에 관한 한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중앙일보는 전두환 정부에서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시장주의와 대외적 개방화 및 안정성장 구현을 적극적으로 견인했다.

 외환위기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외채를 들여와 경쟁적으로 과잉투자를 하던 한국 자본주의가 앓을 수밖에 없었던 일종의 홍역이었다. 이 위기를 전기로 하여 우리나라는 한편으로 뼈저린 반성을 통해 자본주의를 구조조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지식정보사회로 이행했다.

 외환위기를 김대중 대통령의 대중경제론이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으로 치유한 것은 외향적 성장전략을 통해 대외경제 의존도를 높인 한국 자본주의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잘 어울린 김대중과 IMF의 ‘복합 처방’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는 단시일에 위기를 넘어 빠르게 글로벌 체제로 진화했다.

 중앙일보는 정부의 외환위기 극복을 적극 성원하면서도 정부 조치가 시장논리 자체를 흔들지 않을까 경계했다. 특히 재벌개혁이나 복지확충에 대해 일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우리 경제가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 체제에 개방적이고도 능동적으로 대응하도록 견인했다. 이 시기에는 이미 고도성장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일반화했지만, 중앙일보는 정부가 안정성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경고했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중앙일보가 경계하고자 한 것은 정부가 모순의 확대재생산을 무릅쓰고 고도성장에 매달리는 것이었고, 중앙일보가 견제하고자 한 것은 정부가 시장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었으며, 중앙일보가 견인하고자 한 것은 시장 자율화와 세계화였다. 한국 자본주의가 오늘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중앙일보의 그런 경계와 견제 및 견인기능이 작동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묘하게도 한국 자본주의는 개발시대에서 세계화시대로, 그리고 지식정보시대로 건너뛰면서 그때마다 큰 위기를 겪었다. 65년에는 한·일 국교정상화 문제로 사회적 혼란을 겪었고 80년에는 권력 공백으로, 98년에는 외환위기로 경제기반이 흔들렸다.

 그런 위기 국면에서 중앙일보는 더욱 빛을 발했다.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의 시동을 걸어야 했던 60년대 중반 정부에 시장 개입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가 하면, 박정희 대통령 급서 이후 등장한 전두환 정부의 초기에는 안정성장을 추구하도록 역설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에는 재벌개혁이나 복지 확충에 대해 국가 개입이 지나치지 않도록 경계할 것을 경계하고, 견제나 견인할 것은 견제하고 견인했다. 이런 역할을 통해 중앙일보는 ‘경제는 역시 중앙일보’라는 성가를 얻었다.

 시장주의,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중앙일보의 시장주의는 국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견제논리였다. 중앙일보는 경제개발을 위해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을 인정하였으나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정부가 금융권을 장악하고 공기업을 육성하는 것까지도 그 필요성에 공감했으나, 권력의 개입이 금융이나 공기업의 부실화를 초래한 사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중앙일보의 시장주의는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반영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대기업 편향성은 금융기관이나 공기업의 민영화 문제에서 자주 드러나곤 했다. 중앙일보는 김대중 정부가 금융개혁을 위해 4~5개의 초대형 은행을 육성하는 방안을 강구하자, 경영 주체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대기업도 단독이 아니면 공동으로라도 지분과 지배구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확고한 경영주체를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기업 개혁에 대한 논지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가 공기업의 일정 지분을 보유한 채 경영만 민간에 넘기는 것은 이미 김영삼 정부 때 추진했다가 실패한 정책이라고 못 박고, 소유권 자체를 민간에 넘기는 것이 민영화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영화를 위해서는 공기업의 사업영역 자체를 경쟁체제로 바꾸고, 규모가 큰 공기업은 분할해서라도 시장에서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기업 민영화에 있어서도 대기업의 참여를 무조건 배제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중앙일보의 대기업에 대한 이런 고려는 국민주 형태의 소유구조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정작 부정적이었던 것은 대중적 소유구조 그 자체가 아니라, 미미한 지분을 보유하고도 결정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정부의 월권적 개입이었다. 중앙일보는 정부의 간섭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금융기관이나 공기업 민영화의 핵심이라고 보았고, 그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해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대외개방, 총량주의의 빛과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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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는 박정희 정부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외자 도입에 관해 신중론을 폈다. 외자는 경제개발을 촉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도입해야겠지만 자본흡수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수출입 문제에 관하여는 미·일 편중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80년대 초에 수입 자유화 논의가 제기되자 이에 대해서도 신중론을 폈다. 이 신문은 국내 산업의 제반 여건을 면밀히 분석해 선별적이고도 단계적으로 시장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의 시장개방에 대한 신중론은 노태우 정부 시기까지도 대체로 유지되었지만, 90년대에 들어 시장여건이 급변하자 점차 유연한 태도로 바뀌었다. 이런 성향은 특히 김영삼 정부 이후에 두드러졌다. 우리 정부도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에 맞게 국내외 기업을 끌어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고, 세계 교역질서의 재편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안목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부가 세계적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되 시급히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가 특히 높은 관심을 보인 문제가 바로 국내기업의 해외투자와 외국기업의 국내 투자유치였다. 정부가 국내 생산기지에 대한 직접투자보다는 기업에 대한 주식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자 중앙일보는 이를 지지하며, 양질의 해외 자본이 국내에 많이 축적되도록 지속적으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외국기업의 투자유치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자, 중앙일보는 외국인 투자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규제로 들어오지 못하는 외국기업은 아예 다른 나라로 떠난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국내에서나 통하는 균형발전 논리가 아니라 국가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의 관점에서 수도권 규제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 따라 쌀 수입개방론이 대두했을 때 중앙일보는 정치적 고려 대신에 국익을 먼저 생각하기를 정부에 촉구했다. WTO 회원국 가운데 쌀을 개방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필리핀뿐이라고 지적하고, 이제 더 이상 개방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WTO 체제를 대체하는 FTA 체제에 대해서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을 요구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자, 무역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우리로서 한·미 FTA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전제하고, 양국이 각론에서 몇 가지 조율할 것이 남아 있지만 총론적으로 합의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대통령이 결단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WTO 체제나 IMF 체제에서 시장이 개방되면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농업이나 중소기업 등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일보는 개방체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폈다. 그런 주장의 밑바탕에는 개방체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총량적으로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이런 총량주의가 국가경제 전체에 결과적으로 이익이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총량주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야나 그에 따른 다양한 문제에 대해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농업이나 중소기업의 어려움, 고용의 둔화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지식정보사회, 새 판을 위한 새로운 도전

 80년대 이후 노동집약적 산업의 대외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되는 가운데 산업의 기술 집약화와 고부가가치화가 진전했다. 신기술을 적용한 지식기반산업이 급성장했다. 지식기반산업의 국내 총생산에 대한 비중은 85년에 22.8%였지만 2000년에는 42.8%로 뛰었다.

 외환위기 국면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 작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자 경제에 새 살을 찌우기 위해 강력한 부양책을 폈다. 정부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산업이 그것이었다. 정부는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구축 등을 비롯해 기업지원책을 적극적으로 늘렸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IT 창업자금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99년 후반부터 주로 IT를 기반으로 한 벤처창업이 봇물처럼 터지자 우리 자본주의는 언제 국가부도를 당했느냐는 듯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지식정보사회는 지난 시대의 진보·보수의 틀을 엎고, 새 사람 새 틀로 새 판을 짤 것을 요구한다. 우리나라에서 지식기반산업은 날이 다르게 발전했지만 새 판을 짜는 일, 즉 지식정보사회에 알맞은 사회체계를 갖추는 데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를테면 교육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식정보사회는 산업사회와는 다른 인적자원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교육체계를 새로운 사회에 적합하도록 개편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육체계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체계 전반을 지식정보사회에 맞도록 리모델링해야 한다. 그런 사회적 의제를 제시할 의무가 미디어에 있다. 중앙일보는 새 판을 짜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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