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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식·문재인식 ‘버림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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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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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
정치부 차장

2011년 10월 3일 당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존재의 위기’를 경험했다.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패한 것이다. ‘불임 정당’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 속에 당시 손학규 대표가 던진 카드는 예상 밖 강수였다. 경선 패배 다음날 “제1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했다. 당 대표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사의를 밝혔다.

 그의 ‘황소 고집’은 다시 하루 만에 꺾였다. 당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사퇴 반대를 결의하자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4년 전 일을 꺼낸 건 새정치연합이 겪고 있는 초유의 당 대표 재신임 정국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를 공격하는 비주류는 “그의 리더십이 책임정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한다. “지난 4·29 재·보선 참패 다음날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혔더라면 오히려 주위에서 뜯어말리며 문 대표 리더십이 더욱 탄탄해졌을 것”(호남 한 재선의원)이라는 논리다. 그러면서 비주류가 곧잘 인용하는 게 2011년 손학규 대표의 사례다.

 아닌 게 아니라 4년 전 손 대표가 내건 승부수에 비주류는 공격 명분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당시 비주류 수장 격이었던 정동영 최고위원도 “지금은 대표가 사퇴할 시점이 아니라 당명을 받들 때”라고 했다.

 하지만 “누가 대놓고 물러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결국 ‘자기 정치’를 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도 없지는 않았다. 일종의 ‘정치적 액션’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었던 셈이다.

 또 그렇게 해서 당 대표직을 유지한 당시 손 대표가 순간의 위기는 벗어난 듯했지만 완벽하게 정치적 승리를 거둔 것도 아니었다. 두 달 후인 2011년 12월 당 대선 후보 출마를 위해 대표직을 내던진 그는 다음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지금의 당 대표인 문재인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문 대표가 재신임 카드를 던진 이후 수습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주류는 "오죽하면 이러겠느냐”고 하지만, 어찌 됐든 재신임에 직을 거는 방식은 근원적 처방이 못될 거라는 얘기가 많다. 20일 당무위원회-의원총회 연석회의에서도 다수의 이런 의견이 문 대표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이미 깊어진 야권 지지층의 실망감은 쉽게 회복되긴 어려울 듯하다.

 비주류의 문 대표 공격 명분도 설득력 있게 들리진 않는다. 비주류는 “문 대표 간판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이유를 댄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문 대표 없이 치르는 선거도 승리를 보장해줄 것 같지는 않다. 당이 처한 문제는 이미 뿌리 깊은 고질이 아닌가. 정치권의 대표적인 전략가로 꼽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새정치연합 주류와 비주류 싸움은 가혹하게 말하면 침몰하는 배에서 서로 선장이 되겠다고 다투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똘똘 뭉쳐도 난관을 헤쳐가기 어려운 판에 주류·비주류로 갈려 싸우는 꼴은 국민 눈높이로는 ‘의미 없는 헤게모니 다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형구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