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인류 배 불린 기술, 무기로 돌아와

중앙일보

입력 2015.09.19 00:49

업데이트 2015.09.19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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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벨기에 이프르에서 프리츠 하버(왼쪽에서 둘째)가 독일 군인들에게 염소 가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가 개발한 독가스로 5000여 명의 군인이 사망했고, 수만 명이 후유증을 겪었다. [사진 반니]

공기의 연금술
토머스 헤이거 지음
홍경탁 옮김, 반니, 380쪽, 1만8000원

북한 당국자가 대한민국의 대화 파트너를 만났을 때 가장 자주 요청하는 게 비료라고 한다. 비료를 1kg 뿌리면 식량 1.3kg이 추가 생산된다고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유기농에 밀려 소비가 줄고 있는 비료는 사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데 필수적인 화학물질이다.

 유럽에서도 19세기에는 식량난이 빈번했다. 미국의 과학저술가인 지은이는 1898년 영국 과학아카데미의 윌리엄 크룩스 신임 원장이 취임 연설에서 “이대로 가면 1930년대쯤 인류는 대규모 기아사태를 맞이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데 주목한다. 크룩스는 위생과 의학의 발달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산업혁명으로 농업 인력이 도시로 몰려들어 식량생산은 오히려 줄고 있는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화학만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며 과학자들에게 천연비료의 화학적 합성법 개발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화학적으로 비료의 원료는 ‘질산염’으로 불리는 질소화합물이었다. 당시 서구 산업국가들은 남미에서 채굴한 초석에서 질산염을 다량으로 구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새똥이 쌓여서 생긴 천연화학원료였다. 남미의 칠레와 페루는 이를 두고 전쟁까지 벌였다. 초석은 영국 등 당시 세계무역을 주름잡던 강대국들이 실어갔다. 무역국가인 영국과 달리 과학국가였던 독일은 이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방법에 몰두했다. 이를 다량으로 얻을 수 있기 위해 ‘봉이 김선달식’ 방식이 동원됐다. 공기의 78%를 차지하는 질소를 인공적으로 고정해 질소화합물의 하나인 암모니아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질소화합물인 비료를 합성하는 방식이었다.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질소 고정’이라는 방법인데, 자연에서는 콩과 식물이 뿌리혹에서 뿌리혹박테리아와 공생하며 질소를 고정한다. 하지만 인위적인 질소 고정은 쉽지 않았다. 때문에 20세기 초 이를 둘러싸고 대규모 과학연구 경쟁이 벌어졌다.

공기 중의 질소로 비료를 만드는 ‘하버-보슈’ 공정을 개발한 카를 보슈(왼쪽)와 프리츠 하버.

 승리자는 독일 과학자였다. 독일의 프리츠 하버(1864~1934)와 카를 보슈(1874~1940)가 철 계통의 촉매를 사용하고 고온과 고압이라는 인위적 환경을 제공해 인위적으로 반응을 촉진했다. 그 결과 공기 중의 질소로 다량의 암모니아를 얻을 수 있었다. 암모니아는 질산과 반응하면 질산암모늄으로, 황산과 반응하면 황산암모늄으로 바뀐다. 이 두 가지는 비료의 원료가 된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이를 ‘하버-보슈 공정’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공기 중의 질소로 비료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유럽은 식량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과학기술을 이용해 공기를 빵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공기를 가치 있는 비료로 만든 ‘20세기 연금술’이기도 하다. 그 공로로 하버는 1918년, 보슈는 31년에 노벨화학상을 각각 받았다. 굶주린 사람을 구했기에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버와 보슈의 인류에 대한 공로는 통계로 증명된다. 유엔경제사회국(UNDESA)이 지난 7월 29일 발표한 ‘세계인구전망 2015년 개정판’에 따르면 현재 지구 인구는 73억 명 수준이다. 2050년에는 100억 명에 육박하고 2100명에는 112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20세기 초 세계 인구가 20억 남짓이던 것에 비하면 비약적인 증가다. 사람이 채소만 먹고 19세기 후반 수준의 기술로 농사를 짓는다면 지구는 40억 명 정도를 먹여살릴 수 있다고 한다. 『인구론』을 쓴 멜서스 등의 이론에 따르면 그보다 많은 인구는 식량공급 수준를 초과하기 때문에 굶어 죽었을 것이다. 지은이는 인류가 하버와 보슈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는 법구경 구절이 하버-보슈 공정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화약도 비료와 마찬가지로 질소화합물이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바다를 장악하지 못한 독일은 칠레산 초석을 구하지 못하자 이 공정으로 질소화합물을 대량 생산해 화약 제조에 썼다. 인류를 살리는 비료 제조법이 인류를 살상하는 총알과 포탄 제조에 전용된 것이다.

 이런 과학적 성과는 20세기 초의 ‘벤처 기업’ 신화에 기여했다. 보슈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산업화했다. 화학회사 이게파르펜을 창업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줬다. 도시 절반 정도 크기의 거대한 공장은 농민의 삶을 풍요롭게 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과학기술 개발을 통해 미래경제발전을 도모하려는 정책 결정자들이 혹할 스토리다.

하버-보슈 공정은 결과적으로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연출한다. 끊임없이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한 과학자들의 집념과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인류는 발전할 수 있었다. 비극을 막지 못한 것은 전쟁을 벌인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S BOX] 나치에 악용된 유대인 하버

프리츠 하버는 1864년 독일 슐레지엔 지역의 브레슬라우(제2차 대전 뒤 폴란드로 넘어갔다)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20세기 초반 빌헬름 2세 시대의 독일제국에서는 유대인도 학문이나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었다. 반(反)유대정서가 없지는 않았지만, 사회통합과 관용 정책이 자리 잡은 개방의 땅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하버는 독일에 대한 광신적 애국자가 됐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화학으로 ‘관대한 조국’ 독일에 보답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하버-보슈 공정 개발로 독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는 이 공정으로 조국에 노벨화학상 수상국의 영광을 안겼을 뿐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화약 원료 수입이 끊긴 독일제국이 전쟁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줬다.

 1906년 독일에서 존경 받는 직업인 대학교수가 된 그는 얼마나 연구에 몰두했던지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그의 부인은 “너무 산만해 가끔 아이를 보여주지 않으면 자기가 아빠라는 사실도 잊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렇게 열심히 개발했던 하버-보슈 공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홀로코스트 주범인 아돌프 히틀러에게 도움을 줬다. 나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석유가 부족하자 이 기술로 합성연료를 대량 생산해 전쟁에 사용했다. 유대인이 개발한 과학기술이 유대인 말살한 기도한 나치의 침략전쟁에 활용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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