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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얼굴만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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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살아온 날들이 얼굴에 새겨진다.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도 있다. "술 잘 마시게 생겼네." 한 잔, 두 잔, 세 잔, 네 잔 만에 내 첫인상은 깨진다. 적어도 주량은 생김과 무관하다. 십여 년 전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통화한 적이 있다. 분위기는 좋았다. "목소리와 많이 다르네요" 만나기 전까지만 분위기 좋았다.

엘리엇 스미스.

그런 아티스트가 있다. 1990년대 활동한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s)는 가냘프고 감성적인 노래를 불렀다. 슬픔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는 깡마른 미남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 본 그의 사진은 목소리와 매치가 안 됐다. 그는 파이터에 어울리는 얼굴이다. 세상의 쓴맛을 얼굴로 승화한 주먹 같았다.

애니멀스 시절의 에릭 버든(오른쪽).

에릭 버든(Eric Burdon)은 정반대다. 그는 소년의 얼굴에 짐승의 목소리를 가졌다. 밴드도 애니멀스(Animals), 짐승이다. 60년대 애니멀스 초기 공연 영상에서 에릭 버든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모범생의 모습이다. 기숙학교 교복 같은 의상은 그를 더 어려보이게 했다. 이 소년이 마이크 앞에 서면 사자처럼 울부짖는다. 소리를 토해낸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비슷한 시기 활동을 시작한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도 거친 매력이 있지만 에릭 버든의 남성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번 주 江南通新은 커버 스토리에서 요섹남, 머슬녀에 대해 다뤘다. 20~30대 여성들이 요섹남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반전 매력이다. 겉으로는 우락부락할 것 같은 남자가 자신을 위해 야채 썰고 프라이팬 잡는 다정함이 매력이란다. 또 요섹남한테 나만 바라봐 줄 것 같은 자상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엘리엇 스미스와 에릭 버든도 얼굴과 목소리는 정반대지만 둘 다 듣는 이의 마음으로 치닫는 진심이 느껴지는 아티스트였다. 지금의 요섹남 열풍도 요리로 진심 어린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포인트가 아닐까.

그러니 얼굴만 보고 그 남자, 그 여자를 판단하지 마시라. 당신을 놀라게 할 반전 매력이 숨어있을지 모르니.

강남통신 김중기 기자 haaha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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