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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노사정 대타협 부정하는 정신 나간 경제5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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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제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경제5단체가 노동시장을 선진화하기 위해 노사정이 360일 동안 협상해서 맺은 대타협을 부정했다. 경제5단체는 공동성명에서 “노사정 합의에 의해서는 진정한 노동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회에 입법청원을 통해 노동개혁의 마지막 시도를 하기로 했다”고 천명했다. 아연실색할 일이다. 성명이 나온 시각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대타협 합의문에 서명했다. 앞에선 합의를 지지하고, 뒤에선 대(對)국회 로비를 통한 독자 추진을 천명하며 뒤통수를 친 셈이다.

 경제단체가 이런 성명을 낸 건 재계가 요구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지의 소치다. 노사정 합의로 법률문안에 가까운 실행방안을 내놓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네덜란드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1983년 바세나르 협약도 정식 명칭이 ‘고용정책에 관한 일반 권고문’이다. 향후 고용정책이 나아가야 할 큰 틀과 방향을 제시하는 정도의 합의다. 이후 이를 실현할 법안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각론은 정부의 몫이다. 경영계는 합의정신에 기초해 근로자를 배려하며, 노조는 기업을 살리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제단체의 주장대로라면 노사정 대타협이 아니라 율사위원회를 꾸려 노사 합의로 법안을 내놔야 한다. 이는 국회를 무시하고, 정부를 부정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노동개혁이 첫발을 내딛자마자 태클을 걸어 대타협을 무위로 돌리려는 건 책임 있는 경제주체가 할 일이 아니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부정해서야 노동개혁이 제대로 되겠는가. 기득권을 내려놓는 건 노동계만이 아니라 경영계에도 해당된다. 오죽하면 경총 고위관계자가 “합의문의 성격과 정신을 모르는 행동이다. 이래선 안 된다”며 부끄러워했겠는가. 경제단체는 재벌개혁 얘기가 왜 나오는지 고민해야 한다. 근로자와 함께 상생할 의지를 제대로 밝히고, 노동개혁에 힘을 싣는 대승적 동참을 경영계에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