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바둑 고수들 머리 맞대도 찾을 수 없는 ‘신의 한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4호 26면

사카타 에이오(왼쪽)의 주변에 흐트러진 담배갑과 부채, 손도구 등을 보라. 대국할 때 대국자 주변은 온통 난장판일 때가 많다. [일본기원]

1935년 3월 일본. 신포석의 물살이 바둑계를 세차게 때리고 있을 때 ‘명국을 하나 만들자’는 기획이 있었다. 스즈키 다메지로(鈴木爲次郞) 7단과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7단이 한 팀이 되고,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6단과 우칭위안(吳淸源) 6단이 또 한 팀을 이뤘다. 스즈키와 세고에는 일본기원의 장로로 구(舊)포석을 대변했다. 기타니는 스즈키의 제자였고, 우는 세고에의 제자로 두 기사는 힘을 합쳐 33년 신포석을 창안했다. 여러 모로 대비가 되었다.


제자들이 흑을 잡았고 덤은 없었다. 제한시간은 각 16시간이었고 별실에서 각 팀은 의견을 나누고 착점을 결정했다. 소위 상담(相談) 바둑이었다. 대국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검토를 마음껏 했다. 그야말로 최선의 착수를 찾았다. 이 과정을 복기해 37년엔 『상담위기(相談圍碁)』란 이름으로 책도 펴냈다.


조화가 잘 이뤄졌을까. 우칭위안은 결단력이 탁월하고 찬스에 민감한 기사. 기타니는 강철 같은 힘을 갖고 뒤를 기다리는 기풍. 서로 다른 안목은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기보 1935년의 상담 바둑. 흑55가 너무 느슨하다. 생동감이 살아 있지 못한 착수다.

조율자의 역할 중요한 상담바둑2013년 12월 중국 광저우(廣州) 기원에서 제1회 세계바둑단체전 주강배(珠鋼盃)가 열렸다. 방식이 특이했다. 팀 당 3명으로 한·중·일 모두 16개 팀을 초청했다. 준결승까지는 3대3 세 판을 두었다. 하지만 결승은 3인 상담기 단 한 판으로 끝냈다. 제한시간은 4시간 30분. 한국의 박정환·최철한·강동윤 팀이 천야오예(陳耀燁)·저우루이양(周睿羊)·스웨(時越) 조합의 중국 팀과 만났다.


심판과 기록원 외엔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별실에서 검토한 후 팀의 대표기사가 착점하고 심판이 확인했다. 한국 팀은 호흡이 잘 맞았다. 화기애애 웃으면서 두었고 이겨 상금 200만 위안(약 3억 5000만원)을 획득했다. 하지만 형세가 좋지 않았더라도 그랬을까.


관심을 끈 것 중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의견이 다를 때 누가 결정하나. 또 다른 한국팀은 조훈현·유창혁·이창호 9단의 조합이었다. 유 9단이 말했다. “나는 조율자다. 조 9단과 이 9단은 사제지간이라 아무래도 이 9단의 목소리가 줄어들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바둑계는 다양한 바둑을 실험했다. 전화 바둑도, 전보 바둑도 시도했고 라디오 중계도 했다. 1975년엔 린하이펑(林海峰) 9단과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 9단이 15줄 바둑도 둬봤다. 우칭위안을 필두로 일류 기사들이 9줄 바둑을 시도해 책으로도 남겼다. 한국의 바둑TV는 아마추어들의 시합에서 3명이 한 팀을 이뤄 초반과 중반, 종반을 서로 다른 선수가 두게도 했다. TV바둑과 인터넷 바둑은 이젠 대세다.상담바둑은 그런 실험의 하나였다. 자, 그런데 실험은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1935년 상담대국에서?우칭위안(오른쪽 편의 가운데)이?손을 뻗어 착점하고 있다.?오른쪽엔 멀리서부터?기타니 미노루, 우, 하시모토 우타로가 앉았고,?이들을 상대하는 왼편은?세고에 겐사쿠(우칭위안의 맞은편)와?스즈키 다메지로. 한 가운데는 관전기자.?[일본기원]

인간·놀이 속성 못 살린 바둑은 무력답은 부정적이었다. 상담바둑은 바둑의 묘미는 물론 수준 높은 내용도 안겨 주지 못했다. 그것이 얻은 답이었다.


왜 그럴까. 이유는 상담바둑이 인간과 놀이의 속성을 살리지 못하는 방식이라는 데 있었다.


예부터 들자. 1935년 혼인보(本因坊) 슈사이(秀哉) 명인과 우칭위안 5단과의 기념비적인 대국에서 우 5단은 전대미문의 실험을 했다. 흑1을 3三, 흑3을 화점, 흑5를 천원에 두었다. 우는 말했다. “흑1과 흑3을 두고 보니 흑5는 천원에 두어야 할 듯해서 두었다.” 일본 바둑 300년에 도전한 실험적인 수법이었다. 명인들은 신수(新手)를 가끔 둔다. 그러곤 말한다. “문득 생각나서 두어보았다.” 많은 신수가 그렇게 나왔다.


새로운 착상은 대국 당일 우연히 나오는 게 보통이다. 새로운 착상이란 것은, 하고 싶다고 또 고민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물론 예외는 있다.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 9단은 실험적인 수를 많이 두었는데 그건 그의 도전 정신에 힘입은 바 컸다. 1980년 슈코가 린하이펑과 제3기 기성전 도전기를 둘 때 1국부터 4국까지 네 판 모두 초반에 새로운 수를 실험했다. 슈코는 “도전적인 수를 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술회했다. 슈코 같은 배짱 큰 인간 아니면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다. 도전기는 큰 승부라 대개는 조심스럽게 보수적인 태도로 임한다.


많은 기사들이 중반의 고비에서 순간적인 감각으로 두곤 한다. 1시간, 2시간 생각하면서도 결단은 대체로 선뜻 내린다. 리듬이 중요한데, 리듬을 탄다는 것은 숙고보다는 반상의 흐름에 사고와 결단을 맡기는 일이다.


19세기 말 혼인보 슈에이(秀榮)는 “도중 휴식은 바둑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나흘에 한 판 두던 시절 기타니와 우칭위안은 바둑 한 판을 하루에 끝내는 제도에 찬성했다. 휴식은 맥을 끊기게 해서 바둑의 일관성을 사라지게 한다. 상담은 중간중간 맥을 끊는다.상담은 동료의 의견을 의식해야 한다. 잠시 ‘의식’을 검토해보자.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의식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살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개념이 사고의 진행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사고는 몸으로, 또 잠재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상담바둑처럼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방식으로 바둑을 두면, 그 바둑은 생동감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힘도 약해진다. 피상적인 의식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시각·촉각·미각이 교차하는 반상 1983년 조치훈이 7기 기성전 도전자로 결정되었을 때 당시 기성 타이틀 보유자였던 후지사와는 큰소리쳤다. “바둑에는 계산도 할 수 없고 끝까지 수를 읽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그런 데서 싸운다. 큰소리 같지만 치훈 군과는 차원이 다른 곳에서 싸운다.” 그렇다. 바둑에는 말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감명 깊은 말이었다.


바둑은 중반에 깊이 들어가면 논리와 계산, 수읽기가 요구된다. 그렇지만 바둑의 관상(觀相)을 결정하는 것은 모호한 초반이다. 바둑의 본질은 상징성, 특히 초반의 상징성에 있다. 후지사와가 말한 게 바로 그 부분이다. 그는 50수까지라면 당대 제1이라고 많은 기사들이 인정했다.


바둑의 서정성 또한 언급되어야 한다. 바둑에서 발달한 언어를 보면 그 얼마나 시각적이고 촉각적이며 또 미각적인가를 알 수 있다. 가볍다, 두드리다, 끌어내다, 아프다, 짜다, 날렵하다, 젖히다, 느슨하다, 누르다, 귀후비기….


감정을 다루는 놀이라 명인들은 대국 때 몸을 자유롭게 열어 둔다. 조치훈은 신음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이고 샌드백 치듯 자기 머리도 쾅쾅 때린다. 후지사와도 “멍청이!” 하는 소리를 뇌면서 주먹으로 머리를 치곤했다. 사카타 에이오(坂田榮男)는 어떤가. 상대의 귀에 들리도록 감정을 내뱉었다. 조훈현도 대국 중 혼잣말을 잘 했다.


두 대국자가 감정적으로 부딪치는 것은 자연스럽다. 대국 시 기사의 흐트러진 몸가짐은 기사 스스로 내면과 깊이 대화하기에 나오는 것이다. 의식과 잠재의식, 몸의 무질서, 혼란과 자유…. 그런 것들이 모여 한 판의 세계를 이룬다.


바둑은 상대가 있는 놀이다. 반응을 주고 받는 것, 그것이 착상이다. 착상은 스스로 나올 수 없다. 반응은 곧 박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후지사와는 “신중함 때문에 박력이 없어진다면 곤란하다. 바둑의 전진을 억제한다”고 말했다.


바둑은 격정과 후회로 이뤄진다. 1985년 2월 6일의 일이다. “끝났어 끝났어, 바둑은 끝났어.” 복도에서 자조를 내뱉던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가 대국실로 들어와 백38을 둔 것이 오후 4시 3분. 조치훈은 겨우 4분만 생각하고 흑39로 젖혔고 다케미야도 백40을 두었다. 순간 흑39가 악수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조치훈에게 탄식과 고뇌가 덮쳤다. “이런 바보! 무슨 수를 두었느냐.” 5시 반 정각이 되자 입회인 오타케(大竹英雄)가 봉수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그러나 조치훈이 흑41을 봉수한 것은 7시 12분. 한 수에 무려 3시간을 넘게 쓴 것이다. 하지만 흑41은 매우 쉬운 수로, 조치훈은 3시간 대부분을 자신의 경솔을 후회하는 데 썼다. 그렇다. 바둑이란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이어야 한다.


 결정적 순간 위험 회피하는 상담바둑『발양론(發陽論)』이라는 책이 있다. 어지럽기 짝이 없는데 그래도 고금 제1의 묘수풀이 책으로 꼽힌다. 불완전한 상황을 다룬 책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후세에 답이 정정된 문제가 많다.


대국 때 보면 반상은 어지러운 돌들로 들쑥날쑥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판이 흔들려 돌이 자리를 잃으면 우린 돌을 가지런히 다시 놓는다. 그러면 어떤가. 생동감이 사라진다. 불현듯 반상이 재미가 없다. 완전한 것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완전을 추구하면 착상은 제한된다.


바둑과 상담은 모순적인 관계다. 게다가 상담바둑은 옆에 동료가 있어 결정권을 상대에게 미루기 쉬운데, 이는 위험회피 성향을 기른다. 2014년 이세돌 9단과 10번기를 치른 구리(古力) 9단을 보자. 그는 대국 때 조언자까지 대동하고 다녔는데 좋지 않았다. 6대2로 패했는데 중요한 시점에서 결단이 부족했다.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 9단은 “내가 젊었을 때에는 바둑이란 좋은 수를 찾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좋은 수는 간단히 찾아지는 것이 아니어서 결국 악수를 두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 좋은 수는 찾아서 얻는 게 아니다. 인간적인 수가 좋은 수다.


문용직 객원기자?전 프로기사moonr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