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누워 “일본이 사과만 하면 나는 편히 눈감는다”

중앙일보

입력 2015.09.11 02:12

업데이트 2015.09.11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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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복득 할머니는 97세로 생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중 최고령이다. 적극적으로 피해 증언을 하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행사에도 자주 참석했다. 하지만 현재 건강이 악화돼 노인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의사소통도 쉽지 않은 할머니지만 “제대로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것만은 힘주어 말했다.

“사과 받아야지. 그래야 내도 죽지.”

 병실 침대에 누운 할머니는 겨우 몇 마디를 만들어 내는 데 온 힘을 짜내야 할 정도로 기력이 없었다.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최고령인 김복득(97)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다. 현재 경남 통영에 있는 노인전문병원에 입원해 있다. 기자가 가까이에서 하는 말도 보청기를 착용해야 겨우 들을 수 있다. 그래도 “일본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힘주어 말했다.

 3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열두 살 때부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했다. 위안소로 끌려간 건 스물두 살 되던 해였다. 그물 공장에서 일하던 중 만난 일본인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고 해 그 말을 믿고 고향 통영을 떠나 부산으로 갔다.

 그러나 공장 얘기는 거짓말이었다. 할머니는 배에 실려 전쟁이 한창이던 중국 다롄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김복득이란 이름을 빼앗기고 일본군 위안부 ‘후미코’로 불렸다. 죽고 싶은 마음에 바다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고향에 있는 어머니 생각에 죽을 수도 없었다. 3년 동안 모진 세월을 거친 뒤엔 다시 필리핀으로 끌려갔다. 그렇게 지옥 같던 위안부 생활을 버티는 사이 7년이 지났다.

할머니 머리맡에 있는 화분.

 1945년, 해방이 왔다. 김 할머니는 가까스로 귀향길에 올라 통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할머니를 기다리는 세상은 혹독했다. 애타게 그리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고향에서 할머니보다 열다섯 살이 많은 남자의 집에 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였다.

 할머니는 첩살이를 하며 남편의 폭행에 시달렸고, 두 번의 유산을 겪기도 했다. 할머니는 직접 쓴 일대기에 “애초에 기대하고 꾸린 가정은 아니었지만 고통스럽고 지독하게 힘들었다”고 적었다. 몇 년 후엔 전쟁이 터졌다. 이번엔 동족 간의 싸움이었다. 할머니는 살기 위해 빨치산들에게 밥을 해주고 피란을 다니며 목숨을 부지했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은 삶이었지만 할머니는 결코 숨거나 피하지 않았다. 94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할머니는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해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시작했다. 국내외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피해 증언도 여러 차례 했다.

 위안부 문제를 고발하는 활동뿐 아니라 남을 돕는 일에도 열성적이었다. 김 할머니는 평생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팔아 모은 돈과 위안부 피해자 지원금 등을 합쳐 2011년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 2000만원을 기부했다. 2012년엔 위안부 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또다시 2000만원을 쾌척했다.

 이처럼 쉼 없이 달려온 할머니이지만 이제는 건강이 크게 악화돼 거동조차 힘겹다. 할머니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이었던 남동생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함께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해 위로를 주고받았던 통영 지역의 다른 할머니들도 모두 고인이 됐다. 사람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김 할머니는 누군가 찾아오면 꼭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보청기를 끼워 달라”고 한다. 그래도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자신이 슬프기만 하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보내는 할머니에게 그나마 위안을 주는 건 머리맡의 꽃과 화분들이다. 할머니는 원래부터 꽃을 좋아해 화초 등을 애지중지 길렀고 병원에 입원할 때도 꽃을 챙겨 왔다고 한다.

 할머니의 꿈도 다시 여성으로 태어나면 엄마가 되고 꽃처럼 예쁜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다만 그전에 먼저 이뤄야 할 꿈이 있다. 일본 정부의 사과와 위안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다. 할머니는 매일 작은 목소리로 “그들이 사과만 하면 나는 편히 눈감는다”는 말을 되뇌고 있다.

  글·사진=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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