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야당, 주전자 속 개구리 되려고 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정치국제부문 차장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가 10일로 출범 107일을 맞았다. 지난 5월 27일 활동을 시작한 혁신위는 총선 공천 배제 기준을 조만간 발표하고 추석 전 활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혁신위는 대부분 당 외부 인사로 구성됐다. 이 ‘외인부대’는 4·29 재·보선 패배의 책임론을 놓고 제1 야당이 무너져 내리기 직전 투입됐다. 도입 때부터 당 주류의 ‘생명 연장 도구’라는 시비를 겪은 혁신위는 그동안 10차례나 혁신안을 발표했지만 별로 칭찬받지 못했다.

 혁신위 활동이 끝나려는 요즘 야당의 내부 갈등은 오히려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3위를 달리는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문재인 대표를 성토했다. 그러자 문 대표는 9일 대표직 재신임을 당원과 국민에게 묻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문 대표는 재신임을 받게 되면 당을 흔드는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예고했다. 당장 비노·비주류 일각에선 “문 대표가 친노 동원령을 내렸다”며 대응 방안을 찾고 있다. 정당을 같이 한다는 이들이 무협지에서나 나오듯 칼자루에 손을 얹은 채 상대가 허점을 보이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

 날만 새면 사사건건 대립하는 야당은 해당 정당 차원을 넘어서는 걱정거리가 되고 말았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혁신위 출범 직후 23%였던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9월 첫째 주 22%로 나아진 게 없다. 더욱이 내년 총선에서 상대 정당의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선인 100석도 얻지 못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되면 야당이 걱정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걱정스럽게 된다”고 했다.

 어차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만큼 문 대표의 재신임 제안을 계기로 침묵하고 있는 당내 다수가 모습을 드러내면 좋겠다. 친노와 비노, 주류와 비주류의 충돌에는 늘 등장하는 소수 인사들만 주장을 쏟아내왔다. 야당 의원 129명 중 상당수는 지역구에 내려가 내년 총선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야당 내분의 뿌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창당에 있다는 견해도 있을 만큼 불신의 골이 깊으니 뛰어들어봐야 소용없다고 체념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최대 지지기반인 호남에서도 외면당하는 초유의 상황에서 의원 개인이 뛴다고 선거에서 승리하리란 보장은 없다.

 새정치연합 구성원들은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본격적인 논의를 벌였으면 한다. 문 대표와 안 의원부터 만나길 바란다. 의원회관에서 의원 사무실은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 야당 의원들은 대외적으로 떠들 뿐 서로 만나 의견을 조율하지 않는다. 외부 인사들이 당을 바꾸려고 와서 욕까지 먹는데도 정작 주인공들은 공방전만 벌이니 양측 누구도 명분이나 지지를 얻지 못한다. 야당은 이러다가 주전자에 들어 있는 개구리가 될 수 있다. 뜨거운 물에 갑자기 들어가면 놀라 뛰쳐나올 수라도 있지만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에선 느끼지 못한다. 뜨거워지면 때는 늦는데, 국민의 시선은 끓고 넘칠 지경이다.

김성탁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