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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래는 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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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책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는 나날이다. 먼저 최근 나온 만화 『중쇄를 찍자』를 읽으면서. ‘중쇄(重刷)’란 책의 첫 1쇄가 다 팔려 새로 인쇄를 한다는 뜻이다. 유도선수였던 주인공이 올림픽 출전에 좌절한 후 만화잡지 편집자가 되면서 중쇄를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만화. 일본 만화잡지 시장도 불황에 들어선 지 오래라 편집자는 편집만 하는 게 아니라 영업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다 해야 한다. 이런 장면이 나온다. 편집장이 다음 해 예상 매출을 고민하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내가 말단이던 시절의 편집장은 누구보다 늦게 출근해서! 누구보다 빨리 퇴근하고! 해 뜰 때까지 술이나 퍼마시고!! 그런데도 잡지는 미친 듯이 팔렸지!!! 지금은 완전 반대야!! 어째서 이런 시대에 편집장이 돼 버린 거야아아아.” 이건, 신문사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탄식이다.

 한국 출판계에 “빅뱅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떠돈 지도 오래다. 지난주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가 발표한 연구보고서가 이를 다시 증명했다. 올해 상반기 출판 관련 상장법인 8곳의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2.1% 줄었고, 영업이익은 11.3% 감소했다는 통계다. 이유는 당연 사람들이 책을 안 사서다. 통계청이 집계한 가구당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올해 1분기 2만2123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8.0% 떨어졌고, 2분기엔 1만3330원으로 작년 2분기보다 13.1% 감소했다. 1만3330원은 통계가 시작된 2003년 이래 가장 적은 금액이다.

 이 와중에 온라인 서점의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올랐다는 게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예스24의 상반기 매출이 증가했고(2.8%), 영업이익도 518% 늘었다는 소식에 “책 할인율을 규제한 도서정가제 개정의 과실이 온라인 서점에만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후 유통 마진은 늘었는데 도서 공급률(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가격을 정가 대비 비율로 표시한 것)은 큰 변화가 없어 서점만 이익을 보고 있다는 주장이다. 공급률은 물론 출판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그게 가장 큰 문제일까. 의문은 계속 남는다.

 주말에는 최근 타계한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다가 여러 번 울컥했다. 갑자기 사물의 형태를 분간할 수 없게 된 남자, 자신의 몸을 몸이라 느끼는 ‘고유감각’을 잃은 여자 등 기묘한 신경장애 환자들의 삶을 그린 이 책이 더 없이 따뜻해서다. 문득 생각한다. 책이 아니었다면 세대도 국적도 다른 저자와 이렇게 공명할 방법이 있었을까. “인간의 영혼은 그 사람의 지능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포근한 시선과 마주할 수 있었을까. 그의 사망 후 교보문고에서 이 책 판매가 세 배 가까이 늘었다 한다. 여기서 희망을 본다고 하면 너무 낭만적인 결론이겠지만, 또 다들 알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답은 거기에 있음을.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