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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치마 트렌드로 본 패션의 역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모델=김민솔(서울 성북초 6), 사진=장진영 기자
원피스는 에잇 세컨즈, 모자와 구두는 자라 키즈

우리가 당연하게 입는 옷에도 나름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번 호에선 치마의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19세기 귀족들의 화려한 드레스부터 2000년대 초미니스커트까지, 어느 시대에 어떤 모양 치마들이 유행했는지 들여다볼까요?

미니스커트가 대세 된 이유
1960년대 사회가 알려주지요

여성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옷. 바로 치마가 아닐까 합니다. 치마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옷 중 하나이기도 하죠.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있어요. 예술과 마찬가지로 패션 역시 그 시대 사회상을 반영하며 진화해왔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을 사로잡은 치마들을 살펴보고, 세 명의 소중 모델들과 시대를 풍미했던 패션 스타일을 재해석해 연출해봤습니다.

~1900

치마 뒷부분이 불룩하게 솟은 19세기 말의 버슬 스타일을 재현한 패션. 물방울무늬 스커트와 레이스 치마는 에센셜, 구두는 자라 키즈.

19세기 전후의 여성 옷 엄격한 신분제 속에서 신분이 낮은 농민·하층민들은 늘 규정된 옷을 입고 색도 마음대로 고를 수 없었어요. 희소가치가 있는 자주색은 황제와 귀족들만 사용했고, 농민·하층민은 회색이나 노란색 옷을 입어야 했죠. 중세 후기, 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 부를 축적한 시민세력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성직자·귀족·평민으로 나뉜 신분 제도에 불만을 가집니다. 신분에 따른 규제를 바꿔 달라고 건의하고 규정에 상관없이 귀족처럼 옷을 입기도 했죠. 경제가 발달할수록 시민세력의 힘은 더욱 커집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정치권력은 시민으로 넘어갑니다. 이후 귀족들의 화려한 드레스는 누구나 입을 수 있게 되지만 누구도 귀족처럼 보이길 원하지 않았죠. 분을 바른 가발, 브로케이드(고급 실크), 코르셋(고래뼈·철사로 만든 속옷. 허리를 날씬하게 조여준다) 등을 거부한 시민들 사이에선 심플한 드레스가 유행해요.

1860년대가 배경인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선 코르셋을 강조한 화려한 드레스를 볼 수 있다.

1846년 재봉틀이 보급되며 패션은 대중화됩니다. 사람들은 패턴을 구해 원하는 옷을 쉽게 만들었죠.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면서 여성 평등에 대한 목소리도 커집니다. 미국의 에밀라 블루머 여사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운동을 펼치며 실용적인 여성 패션을 주장합니다. 그는 튜닉(소매가 없는 통자에, 무릎 정도 길이의 느슨한 옷) 밑에 터키식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탔으며, 당시로는 파격적인 짧은 스커트를 입기도 했죠. 그의 영향을 받은 여성들도 새로운 패션을 제안합니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원피스 스타일의 속옷, 가벼운 소재로 만든 바지와 디바이디드(바지처럼 가랑이가 있는 치마) 스커트를 선보이죠.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1910~40

1920년대는 직선으로 무릎 근처까지 오는 치마에 클로슈를 쓰는 패션이 유행했다. 원피스는 럭키 슈에뜨.

두 번의 전쟁과 패션의 변화 두 번의 세계적인 전쟁을 겪으며 여성 패션은 큰 변화를 겪습니다.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여성 해방이 이뤄집니다. 남자들이 모두 전쟁터로 떠나자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시작한 거죠. 당연히 몸을 옥죄는 코르셋과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일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성의 옷이 실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대표적인 디자이너는 코코 샤넬입니다. 가볍고 신축성이 좋은 저지 소재 원피스를 세계 최초로 선보인 당사자죠. 그는 헐렁한 라인의 재킷에 무릎 길이 치마로 편하고 실용적인 샤넬라인 슈트를 만듭니다. ‘여자도 남자처럼 자유로워야 한다’는 철학이 담긴 디자인이죠. 남성 속옷의 소재로나 쓰이던 저지로 만든 여성 정장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한 20년대 플래퍼 룩.

전쟁이 끝나자 젊은이들은 공허함에서 벗어나고자 음악과 춤, 파티를 즐겼습니다. 빠른 리듬의 재즈가 유행하면서 밝고 경쾌한 스타일의 플래퍼 룩이 등장했죠. 단발머리 위에 화려한 클로슈(종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허리선은 조이지 않은, 찰랑찰랑한 종아리 길이의 스커트를 입었습니다.

1940년대 초반 인기를 끈 밀리터리 스타일. 니트 상의는 자라 키즈 가방은 조이 그라이슨 스니커즈는 컨버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며 여성들의 옷은 다시 바뀝니다. 기능적인 군복 형태의 치마 슈트가 대세로 떠오르며 밀리터리 룩의 시작을 알립니다. 6년 동안의 전쟁으로 물자가 귀해지자 패션에도 수많은 규제가 생깁니다. 전쟁이 끝나고도 옷감이 많이 드는 풍성한 치마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커튼으로 드레스를 만들고 담요로 코트를 만들어 입을 정도로 물자는 부족했습니다. 이때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올은 획기적인 디자인의 ‘뉴 룩’을 선보입니다. 허리선을 강조한 재킷과 둥글고 풍성한 스커트입니다. 여성들은 우중충한 밀리터리 룩에서 벗어나 비로소 우아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게 됐습니다. 사치스럽다는 불평도 있었습니다. 봉긋한 스커트 라인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옷감이 사용됐기 때문이죠. 하지만 디올은 “나는 꽃 같은 여성을 위해 둥근 어깨, 풍만하고 여성스러운 가슴, 그리고 거대하고 넓게 펼쳐지는 스커트 위에 한 뼘의 허리로 된 의상을 디자인했다”고 말합니다. 전쟁으로 침체된 여성 패션을 꽃피우게 된 계기입니다.

1950~60

1950년대의 뉴 룩을 로맨틱하게 연출했다. 원피스는 지고트, 목걸이는 먼데이 에디션.

여성미의 극치에서 미니멀리즘을 거쳐 히피 룩까지 1950년대는 흔히 도약의 시대라 부릅니다. 유럽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제 재건에 열중했고 패션 역시 새 도약을 합니다. 디올의 ‘뉴 룩’은 50년대 패션에도 영향을 미쳐 여성들은 여성미가 두드러지는 옷을 마음껏 즐기게 됩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은 플레어스커트, ‘7년만의 외출’에 마릴린 먼로가 선보인 홀터넥 원피스 등이 50년대를 풍미했지요. 허리부터 엉덩이와 무릎 아래까지, 딱 달라붙는 펜슬스커트도 50년대를 대표하죠. 몸에 딱 붙는 재킷과 펜슬스커트를 입고 흰 장갑을 끼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펜슬 룩의 대표 주자는 크리스티앙 디올입니다. 디올은 둥근 어깨와 잘록한 허리, 딱 달라붙거나 꽃처럼 퍼지는 스커트 등 다양한 디자인의 치마 슈트를 발표했습니다. 샤넬 슈트도 다시 유행합니다. 디올의 슈트와 달리 입었을 때 여유가 있으면서 실용적인 것이 샤넬의 특징입니다.

1960년대 패션 아이콘인 모델 트위기의 미니멀 룩을 재현했다. 점프 슈트와 핸드백은 자라 키즈, 스니커즈는 빅토리아 슈즈.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며 본격적인 우주 시대가 열립니다. 60년대를 대표하는 스페이스 룩과 미니스커트가 등장한 배경입니다. 1964년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주는 우주 시대를 연상케 하는 소재와 기하학적 모양의 옷을 소개했고, 이는 단순하고 간결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 패션으로 이어집니다. 미니스커트도 미니멀리즘의 바람을 타고 유행합니다. 미니스커트로 유명해진 디자이너는 영국의 메리 퀀트입니다. 모던한 미니스커트와 짧은 단발머리를 하는 게 당시 트렌드였죠.

1960년대 패션 아이콘 모델 트위기.

모델 트위기가 주로 선보인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60년대 중후반을 주름잡은 패션은 히피 룩입니다. 히피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자연 회귀적 세계관을 가진 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꽃무늬 셔츠와 술 장식의 가방, 전원풍의 집시 블라우스 등을 주로 입었죠. 60년대 후반엔 유니섹스 패션이 등장했습니다. 여성해방운동이 전개되며 남녀평등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단순하고 남성적인 멋을 풍기는 테일러드 팬츠 슈트가 인기를 끌죠. 국내에서도 60년대 후반 통이 넓은 판탈롱 바지를 입는 여자들이 늘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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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수 마돈나는 80년대 펑크 패션을 대표하는 여성 아이콘이었다(위쪽 사진). 70년대 히피문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테이킹우드스탁`.

1970~90

다양해지고 글로벌해지는 패션 산업 복고풍의 레트로 룩과 민족의상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국적인 에스닉 룩, 미니멀 룩의 빼놓을 수 없는 70년대 트렌드는 ‘펑크’입니다. 1976년 런던에서 시작된 거칠고 반항적인 펑크록 음악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됩니다. 펑크록 가수들이 입고 나온 옷은 펑크 룩이라고 불리며 인기였죠. 지퍼·사슬·배지·징 등이 장식된 옷과 소품들입니다.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을 주름잡은 히피 룩. 꽃무늬 원피스는 자라 키즈. 스니커즈는 빅토리아 슈즈.

펑크 패션을 주도한 사람은 영국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입니다. 계단 하나쯤 타고 올라가 있는 것 같은 구두인 플랫폼 슈즈, 타탄체크와 징 장식을 이용한 의상 등이 대표 아이템이죠. 1970년대 후반에는 옷을 크게 입는 게 트렌드였습니다. 허리 아래로 내려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배기팬츠도 등장합니다. 이 기세를 몰아 80년대에는 오버사이즈 패션이 전 세계를 강타합니다. 바닥까지 닿는 코트와 넉넉한 길이의 소매 끝을 말아 올린 상의 등입니다. 또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등장한 사파리 룩, ‘플래시 댄스’에 나온 스웨터 셔츠도 인기였죠.

197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 열풍을 일으킨 펑크 패션. 레오파드 코트는 자라 키즈, 청치마는 제임스 진스, 토끼 인형 MCM, 클러치 백 에센셜.

1990년대 패션은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를 잡습니다. 영화배우와 가수에 이어 패션모델이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 겁니다. 린다 에반젤리스타·신디 크로퍼드·클라우디아 쉬퍼·나오미 캠벨은 90년대를 대표하는 슈퍼모델들입니다. 이들이 나오는 브랜드 광고가 화제가 되고 해당 브랜드의 옷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무렵 패션은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집니다. 미니멀리즘·복고·빈티지·스포츠·히피·아방가르드·힙합 룩 등입니다. 스트리트 패션의 영향력도 커집니다. 운동할 때 착용하던 스니커즈를 평소 복장에 스타일링해 신으면서 나이키·푸마·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의 운동화가 거리를 휩쓸었죠.

1990년대에는 스포츠 브랜드의 옷이 일상화됐다. 탱크 톱과 운동화로 연출한 스포티 룩. 탱크 톱은 스타일 난다, 미니스커트 EXR 운동화 브룩스.

2000~

내일은 소풍날.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다 문득 드라마 속 한 연예인이 떠오릅니다. 당장 ‘박신혜 패션’을 검색하죠. 이렇듯 2000년대 패션은 스타 따라잡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쉽게 접하게 돼서죠. 영화배우·가수의 패션만 따라 해도 도시 여성 스타일의 ‘시티 글램’부터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보헤미안 룩’까지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어요.

축구 선수 베컴 부인으로 유명한 빅토리아는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한 패션 피플이다.

스포츠 스타들도 패션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영국의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 러시아의 테니스 선수 샤라포바 등 유명 선수들이 패션 브랜드와 함께 옷을 디자인했습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스포츠 웨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유명 디자이너들도 제작에 나서고, 운동할 때나 입던 스포츠 웨어가 일상화됐죠.

2000년대는 패션모델들이 급부상하며 편안함에 스타일을 더한 스트리트 패션이 유행했다

유행에 재빨리 대응하는 SPA(Special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도 크게 성장합니다. SPA는 기획·디자인·생산·유통·판매의 전 과정을 의류 회사가 맡는 형태로, 스페인의 자라·망고, 스웨덴의 H&M, 미국의 Gap, 일본의 유니클로, 그리고 에잇세컨즈·스파오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입니다. 생산 과정을 직접 관리해 제품을 싼 가격에 공급하죠. 기존 회사는 계절별로 옷을 제작·판매하는 반면 SPA는 1~2주 단위로 제품을 업데이트하며 여러 디자인을 소량 생산해 재고를 줄여요. 이런 이유로 SPA를 패스트푸드(fast food)에 빗대 패스트패션(fast fashion)으로도 부릅니다.

‘스타 따라잡기’가 유행한 2000년대. 파파라치 사진에 찍혔을 법한 스타의 패션을 재현했다. 퍼 베스트는 자라 키즈.

이와 반대로 자연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패션 스타일을 만들고 윤리적 소비를 하자는 움직임도 있어요. 이들은 유기농 면으로 제품을 만들고 페트병이나 옥수수·코코넛 등을 이용해 원사(옷감의 기초가 되는 실)를 개발하죠. 또 공정무역을 통해 제3세계 생산자의 권리를 지켜줍니다. 소비자들은 이런 착한 패션을 실천하는 기업에 반응합니다. 신발 1켤레를 팔면 신발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신발 1켤레를 보내는 방식으로 착한 패션을 실천하는 탐스(Toms)는 2006년 시작해 4년 만에 약 100만 켤레의 신발을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보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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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황정옥·이세라 기자·성슬기 인턴기자 ok76@joongang.co.kr,
사진=장진영 artjang@joongang.co.kr, 사진 어시스트=우상조 기자
진행 어시스트=성슬기·이연경·전민선 인턴 기자,
모델=김민솔(서울 성북초 6)·김윤지(경기 고양 풍산초 6), 유시광(서울 인헌초 5)
참고 서적=『현대 패션 110년』(교문사)·『패션의 역사』(시공아트)·『패션 연대기』(미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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