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남정호의 직격 인터뷰

“미국 내 위안부 문제, 한·일 간 정치 이슈로 만들면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조문규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동석 시민참여센터(KACE) 상임이사는 지난달 13일 “미국 내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정치 이슈로 변질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단기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해야 하며 위안부 생존자들이 다 돌아가셨을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문규 기자]

올해 초 일본 정부는 위안부 및 독도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 500억 엔(4770여억원)이란 거액의 대외홍보비를 추가 책정했다. 과거사 및 영토 문제와 관련된 국제 홍보전에서 한국에 밀린다고 판단한 탓이다. 이런 강수가 나온 데는 2007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를 기점으로 일본의 만행에 워싱턴 정계가 주목하기 시작했고 미국 내 기림비 및 위안부 상 건립 붐 역시 이때부터 본격화된 까닭이다.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이렇듯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 위안부 결의안은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 시민운동가의 헌신적 노력으로 빛을 봤다. 김동석 시민참여센터(KACE) 상임이사(57)가 그 주인공이다. 아베 담화 후에도 한·일 간 위안부 논쟁이 좀처럼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방한한 김 상임이사를 지난달 13일 만났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홀로코스트와 같은 보편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선 “한국은 어떻게든 빠지고 미국 정치인들이 나서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슨 생각으로 2007년 위안부 결의안을 이끌어 냈나.

 “미국 내 한인들도 세금을 내는 만큼 정치 참여를 해야 한다는 게 LA 폭동 이후 생긴 개인적 소신이다. 15년 넘게 이 과제에 매달렸지만 여기에 주목하는 한인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2006년께 살펴보니 위안부 문제가 있었다. 이 정도면 민족적 결집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는데도 관련 결의안이 의회에 상정만 돼 있을 뿐 겉돌고 있었다. 그리하여 한인들의 힘을 모아 결의안을 추진하면 미 주류에도 먹히겠구나 하는 신념을 갖게 됐다.”

 -어떤 전략을 썼나.

 “위안부 문제가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면 미 의원들이 부끄러워할 걸로 판단했다.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미국으로 불러 미 정치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요즘 미국 내 위안부 문제는 어떤 상황인가.

 “결의안 통과 이후 한인들이 너무 격렬하게 대응했고 일본도 강력하게 부정해 한·일 간 정치 이슈로 변질됐다.”

 -결의안 통과 후 미국 내에서도 기림비와 위안부 상이 세워졌다.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가만있으면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이 문제가 역사적 사실이고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구체적인 움직임이 덧붙여져야 한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 문제를 그렇게 다룬다. 그래서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미국 각 지역에 교육용 기림비를 세웠다.”

 -미국 내 기림비와 위안부 상은 몇 개나 되나.

 “현재 7개다. 연방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공공장소에 세워져야 의미도 있고 영원히 갈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세우려고 서두르는 바람에 한인 회관이나 한인 소유 쇼핑몰 구석, 심지어 개인 주택 마당에 세우려 해 문제다.”

 -독도 논쟁이 위안부 문제와 겹쳐서 제기되는데.

 “위험한 일이다. 위안부 결의안 통과 후 6개국이 관련된 비슷한 결의안이 제출됐다. 위안부 문제란 한국과 일본만의 이슈가 아닌 보편적 인권 사안이라는 게 증명된 셈이다. 반면 독도 문제는 한·일 간 영토 분쟁의 측면이 강하다. 이 때문에 두 문제를 분리해야지 함께 다루면 안 된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정부뿐 아니라 관련자 모두가 냉정해져야 한다. 장·단기 프로젝트가 함께 있어야 한다. 위안부 생존자가 다 돌아가셨을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로 국내 단체들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건 어떤가.

 “이렇게 되면 일본 정부도 온다. 자연히 한·일 간 싸움으로 비치지 않겠나. 한국은 빠지고 미국 정치인들이 나서도록 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실제로 나서고 있나.

 “지난해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위안부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500억 엔을 쓰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미국 로펌들이 계약을 따내려 시키지도 않았는데 움직인다. 돈 쓴 건 아직 한 푼도 없는데도 말이다. 아베의 의회 연설도 이렇게 성사됐다.”

 -실제로 아베 연설도 로비로 됐다고 보나.

 “미 의회 연설은 전적으로 의장 권한이다. 존 베이너 의장의 지역구가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인데 2013년 9월부터 일본 기업들이 이곳에 어마어마하게 투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전당대회가 클리블랜드에서 열린다. 이곳은 철강산업이 망하는 바람에 죽어가는 도시로 전락해 전당대회를 치를 만한 여건이 안 된다. 구체적인 증거는 없지만 일본 기업들이 클리블랜드에서 전당대회가 열릴 수 있도록 뛰었을 거라는 심증이 있다. 미국 내 유대계는 움직이는 게 보인다. 반면 일본의 로비는 물 먹은 스펀지 같다. 물을 먹었는지는 겉으로 봐선 모르고 만져봐야 안다.”

 -아베 정권이 팔을 걷어붙였는데 우리 정부는 가만있어야 하나.

 “정부 대 정부로 움직이라는 얘기다. 외교 통로를 통해 더욱 씩씩하고 전략적으로 미국·일본 정부와 상대해야 한다. 단 우리 정부는 미국 내 한국계 시민사회 활동에 끼어들면 안 된다. 이게 포인트다. 한국 정부가 개입하면 미 정부에선 한국계들이 미 시민사회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본국 정부와 짝짜꿍돼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인 워싱턴 내 한국의 위상은.

 “높아졌다. 과거에는 한국 국회의원이 여러 명 와도 미 정치인 1명을 한꺼번에 만나야 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세 명이 오면 세 명을 만난다. 중진 정치인이 오면 미국의 지도적 정치인이 의사당에서 밥 차려놓고 기다리게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옛날엔 한국과 미국의 이익이 일치했다. 대부분 사안에서 양국의 국익이 다르지 않아 같이 갔다. 하지만 이젠 한국도 커져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간 현안을 해결하려면 한국 정치인들과도 친해져야 한다는 인식이 미 정계에도 퍼진 셈이다.”

 -오바마 2기 들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줄지 않았나.

 “미 국무부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의회는 꼭 그렇지 않다. ‘미국 외교는 시장의 매물로 나와 있다’는 말이 있다. 미 의회에는 인사권과 예산권이 있다. 자연히 미 국무부·국방부 할 것 없이 모두 의회 눈치를 본다. 이 때문에 한국계·유대계·쿠바계 할 것 없이 외교 위원들을 열심히 만나고 로비하면 해당 사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오바마 리스트에서 남북 문제가 빠졌다는 견해가 많다.

 “중동 이상으로 아시아 안보 문제는 어려울 걸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중국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위협적인 존재로 컸다. 현재 미국 의회는 여소야대라 오바마 행정부가 소신껏 외교정책을 펴기도 쉽지 않다. 오바마는 되는 일부터 먼저 하고 일단 시작하면 마무리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터라 한반도 문제가 오바마의 어젠다 중에서 뒤로 밀릴 위험이 적잖다는 의견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오바마 행정부가 한반도 이슈에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뉴욕에서 가장 잘나가는 게 쿠바인들이다. 이들은 과거 카스트로 정권과의 수교를 반대했지만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이게 미-쿠바 수교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미국 내 한국계도 이념적으로 유연해져야 한다. 한쪽에선 북한 인권 및 핵 문제 해결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쪽에선 김정은 정권을 소멸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의사결정자들이 보면 어떻겠는가.”

 -한국 정치인들의 역할은.

 “그간 방미 한국 정치인들이 미국 의원들을 만날 때 배석한 적이 많았다. 이런 자리에서 대부분의 한국 정치인들은 특정 사안을 놓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미 의원들에게 물어본다. 이젠 그러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이렇게 풀어야 하니 미국도 이렇게 가야 한다’고 당당히 주장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쿠바 때처럼 오바마 정부가 북한과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고 발표할 수도 있다. 남북 문제에선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오바마가 북한 문제를 다룰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 오바마는 공약을 지키는 스타일이다. 쿠바 수교에 앞서 그는 ‘지구상에 미국의 적국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강조했다. 오바마의 안보보좌관인 수전 라이스도 이에 맞장구치고 있다. 북한을 계속 적국으로 두지 않을 걸로 점치는 이유다. 중국이 북한과 너무 가까워지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막말을 하면서도 인기가 높은데.

 “해프닝이다. 트럼프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연예인처럼 틈만 있으면 대중의 시선을 끌려 한다. 또 오바마에게 적대적인 지역을 골라 유세하면서 지지자들을 끌고 다닌다. 게다가 공화당 극우파들은 선거 초엔 열광적으로 참여하다 시들해진다. 트럼프가 소수계를 싸잡아 마약이나 파는 범죄자라고 매도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이유다. 주목해야 하는 건 민주당 쪽이다. 최강 후보로 꼽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지지율이 최고점을 지나 내리막길이다. 대신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도가 최근 힐러리를 앞섰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은 없나.

 “많다. 위안부 결의안 처리 때 아베 총리실에서 딕 체니 당시 미 부통령에게 ‘정작 한인들은 별로 관심이 없고 후진타오 중국 정권의 조종을 받는다’고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이 탓에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크당하기도 했다. 또 미국에서 난징 학살 사건 관련 결의안을 추진했던 중국계 지식인들이 여지없이 살해당했다며 FBI가 우리를 보호해 주기도 했다.”

 -미국 내 일본 세력은 가만있었나.

 “일부 일본 기업들이 무척 공격적이었다. 미쓰비시 등은 자기 회사에 고용된 한국인들을 앞세워 ‘위안부 결의안 같은 걸 왜 하느냐’‘여기까지 와서 왜 그러느냐’고 항의했다. 아베 총리가 미국에 왔을 때도 똑같았다. ‘한국은 여섯 번이나 했는데 일본 총리가 한 번 연설한다고 왜 말리느냐’고 따졌다. 산케이·요미우리 같은 우익 성향의 일본 미디어들도 우리를 못살게 굴었다.”

김동석 상임이사는 …

1977년 성균관대 법대 입학. 이후 고(故)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과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탄압을 받아 85년 미국 유학차 도미했다. 천신만고 끝에 뉴욕시립대를 졸업한 김 소장의 인생은 94년 LA 폭동으로 결정적 전환점을 맞는다. 엄청난 피해를 본 한인들이 제대로 보상받지도, 가해자인 흑인들이 올바로 처벌받지도 않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김 고문은 이 같은 잘못이 미국 내 한인들의 정치력 결핍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이를 바로잡기 위해 뉴욕·뉴저지 유권자센터를 설립, 이후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위해 20여 년간 헌신했다.

남정호 논설위원
사진=조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