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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역사 교과서, 국정 발행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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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역사 교과서 발행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2018년부터 고교생이 배우는 교과서를 국가가 발행하는 국정(國定)으로 할지, 현행처럼 민간이 다양하게 만들면 국가가 심의·승인해주는 검정(檢定)을 유지할지가 핵심이다. 학계에 맡겨둬야 할 일에 정치권이 끼어들어 일이 커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엊그제 국회 연설에서 “편향된 교육을 막기 위해 국정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주화와 함께 폐기된 군사정부로의 회귀”라며 극력 저지를 예고했다. 이번 국정감사가 ‘역사 전투장’이 될 우려도 있다.

 국·검정 여부는 이달 말 교육부가 고시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포함된다. 최종 결정권자인 황우여 부총리가 국정화 뜻을 비춰 국정이 기정사실화하는 양상이다. 역사학계와 교사들은 황당해한다.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 34명은 엊그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한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며 반대 성명을 냈다. 역사 교사 2255명도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이 우려된다”며 불복종 운동을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정이 국정화를 밀어붙이면 교육 현장에 큰 혼란이 벌어질 게 자명하다.

 세계적으로도 역사 교과서는 검정화가 대세다. 미국·유럽 등은 자유발행체제로 다양하고 질 좋은 교과서를 제공한다. 국정은 관제사관(官制史觀)을 주입하는 북한·베트남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도 1992년 국정교과서가 “위헌은 아니나 바람직한 제도는 아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따라서 국정은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없다. 과거 군사정부 때처럼 입맛에 맞게 교과서를 주무르는 시대는 지났다. 대안은 올바른 정사(正史)가 담긴 질 좋고 내용 풍부한 교과서다. 현행 검정제를 강화해 집필 기준에 국가 정체성 내용을 명시하고 편향성을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 현재 대여섯 명에 불과한 집필자도 대폭 늘려야 한다.

역사학계의 치열한 노력도 필요하다. 보수·진보 각자 주장만 하지 말고 중립적이고 균형 잡인 교과서 개발에 힘을 결집해야 한다. 당장 공동 토론회부터 열 필요가 있다. 당정의 역할은 바로 이런 일을 돕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를 바꿀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