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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담벼락 너머 그 집에선 단편영화 절찬 상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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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상영관 옥인상영관 사진=라희찬(STUDIO 706)

[기획]담벼락 너머 그 집에선 단편영화 절찬 상영 중
옥인동 옥인상영관 & 이태원 극장판

‘서촌’이라 불리는 서울 옥인동 그리고 이태원의 우사단길. 개성 있는 디자인 가게, 아담한 카페와 식당, 펍이 자리한 이곳에 최근 영화 팬의 발길을 이끄는 독립 단편영화 전문 상영관이 자리 잡았다. 옥인동의 ‘옥인상영관’과 이태원의 ‘극장판’이다. 독립영화 중에서도 드물게 단편영화만 상영하는 곳이다. 부담 없이 단편영화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친구 집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두 영화관을 소개한다.

-옥인상영관-
주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77-5
운영 시간 매주 주말 정오~오후 6시(동절기인 11~2월엔 운영하지 않음)
상영 회차 오후 12시·3시·5시 │ 관람료 5000원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걸어서 10분. 영화·미술 관련 예술가들이 자주 모인다는 통인시장 먹자 골목을 지나 옥인동 주택가 쪽으로 걷다 보면, 전봇대에 ‘옥인상영관’이라는 작은 팻말이 보인다. 마당이 있는 2층 양옥집이 바로 옥인상영관이다. 아담한 마당을 지나면, 카페처럼 꾸민 1층 라운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상영을 기다리는 관객은 물론 방문객도 자유롭게 쉴 수 있다. 상영관은 옆 방에 마련돼 있다. 낡은 가죽 소파 여섯 석과 스크린, 뒷편의 프로젝터가 설치된 공간이다. 뒷 방엔 추억을 자극하는 비디오 테이프가 쌓여 있다.

옥인상영관은 2013년, 이 동네에서 자란 동갑내기 친구 다섯이 함께 만들었다. 본래 이 집의 주인은 김도균(33)씨. 그가 부모님과 어릴 때부터 함께 살던 집이었으나, 동네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자 돈을 들여 철거와 보수를 하는 게 어려웠다. 김씨가 유학을 떠난 후, 부모님은 집을 버리다시피 떠났고, 서울에 돌아온 김씨와 친구들은 집을 조금씩 보수해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 마음먹었다. 김씨의 친구 김종우·김진호·백호균·이준우씨는 수도와 전기가 끊긴 집을 손수 고쳐 나갔다.

현재 옥인상영관 대표를 맡고 있는 김종우(33)씨는 “전시 공간으로 할지, 공연장으로 만들지 고민하다 공간을 활용하기엔 상영관이 제일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훌륭하지만 극장에서 보기 어려운 영화를 여기서 상영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해 3월, 옥인상영관이 탄생했다. 설치 미술가로 활동하는 김 대표는 상영 기획과 영화 수급을 전담했고, 나머지 친구들은 각기 전공을 살려 홍보·관리·디자인 등을 맡았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옥인상영관은 사업체로 등록돼 있지 않다. 관람료를 5000원으로 명시했지만 꼭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수익이 목표가 아니다. 한데 무료로 운영하니 영화 상영 중간에 나가는 관객이 있더라.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관람료를 받기로 했다.” 주말만 운영하는 옥인상영관에는 일주일 동안 많게는 스무 명, 적게는 다섯 명 정도의 관객이 찾아온다. 공간을 구경하기 위해 찾는 방문객은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초기엔 김 대표가 상영작을 고르고, 감독과 배급사에 직접 연락해 상영 허락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최근엔 기획전 공모를 열어 외부인에게 무료로 위탁·대관하고 있다. “친구들 각자 생업이 있어, 이곳에만 온전히 매달릴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획전 심사 역시 김 대표가 맡는다. 기준은 “영화의 만듦새와 완성도”다. “본인 혹은 지인의 영화를 틀고 싶다고 요청해 오면 대체로 긍정적으로 검토하지만, 기준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영 중인 ‘최신춘 영화제’는 단편영화 전문 배급 레이블 오렌지필름의 기획전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전문사를 졸업한 최신춘 감독이 만든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묶어 선보인다. 8월 30일에는 영화 상영 후, 관객과 최 감독이 한데 어울려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는 ‘치맥영화제’를 연다.

-극장판-

주소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3길 43-10
운영 시간 오후 1~9시(매달 첫째 주·둘째 주 월요일과 매주 화요일 휴무)
상영 회차 수시 │ 관람료 2000원

이번엔 눈을 돌려 이태원 극장판으로 떠나 보자.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와, 보광동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이슬람 사원이 보인다. 주택가 방향으로 꺾어 골목길을 오르면 ‘극장판’이라고 쓰인 남색 대문이 방문객을 맞는다. 이곳에 들어서면 향긋한 향초 냄새가 물씬 풍긴다. 50㎡(약 15평) 남짓한 공간 한편에서 팔고 있는 향초와 사진 엽서, 귀고리와 목걸이 등 액세서리가 눈에 띈다. 향초와 사진 엽서는 극장판 권다솜(27) 대표가 직접 만든 작품이다.

극장판은 옥인상영관과 달리 상영 시간표가 없다. 관객이 와서 이달에 상영 중인 단편영화 세네 편 중 한 편을 골라 관람료 2000원을 내면 바로 상영해 준다. 단편영화의 상영 시간이 대개 20분을 넘기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다. 상영관 내부는 기대해도 좋을 만큼 꽤 안락하다. 풀 에이치디(Full HD)급의 프로젝터와 나무 판자에 천을 씌워 만든 스크린 그리고 권 대표의 부모님이 사용법을 몰라 방치한 홈 시어터(Home Theater) 음향 기기, 1인용 소파 여섯 석으로 꾸렸다.

권 대표는 지난해 8월, 인천 부평구청의 청년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극장판을 열었다. 지원금 300만원으로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마련해 인천 부평구에 첫 둥지를 틀었다. 서울예대 영화과 출신인 권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빛을 보지 못한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있었으면 했다. 앞서 옥인상영관 김 대표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월, 단편영화 관객이 더 많은 서울로 옮겨 왔다. 월세가 저렴하고, 젊은 세대가 모일 만한 곳을 찾던 차에 눈에 띈 곳이 이태원 우사단길이었다. “홍대와 경리단길 등은 감각 있는 젊은 상인이 꾸려 놓은 가게에 많은 사람이 찾으면 임대료가 치솟아 상인들이 쫓겨 나가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두드러진 곳이다. 하지만 우사단길은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있어 당분간 상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권 대표의 말이다.

극장판은 소매품 판매업체로 등록돼 있다. 실제 수익도 관람료가 아닌 물품 판매액에 의지한다. 권 대표가 직접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영화도 수급한다. 지난 6월에는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와 함께 ‘두근두근 영춘권’(2010, 윤성호·박재민 감독) ‘그녀의 연기’(2012, 김태용 감독) 등을 상영했다. 권 대표가 서울독립영화제 등 영화제에 참석해 감독에게 직접 배급을 문의할 때도 있다.

3개월마다 한 번씩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블로그 등을 통해 상영작을 공모하기도 한다. 자신이 만든 영화를 상영하길 원하는 영화과 학생 등 단편영화 감독이 대상이다. 영화제에서도 보지 못한 영화를 극장판에서 볼 수 있는 이유다. 8월 상영작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단편영화 네 편이다. 현재 상영 중인 ‘온 아워 웨이’(2014)의 김선우(25) 감독은 “단편영화를 만들어도 경쟁률이 치열한 영화제에 뽑히지 않으면 가족들에게도 보여주기 어렵다. 극장판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요즘 하루에 많게는 50명, 적게는 15명 정도의 관객이 극장판을 찾는다. 이곳에서 만난 관객 심다혜(30)씨는 “기다리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어 부담도 적고, 단편영화가 주는 산뜻한 감흥도 신선하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몇몇 관객은 이런 상영관을 어떻게 만드는지 묻기도 한다. 오랫동안 있어 달라고 당부하는 분도 있다”며 “그만큼 관객도 단편영화를 모니터가 아닌 큰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디스토리 김화범 배급팀장은 “서촌과 이태원 등 ‘핫플레이스’에 문화를 체험할 곳은 많지 않았다”며 “창작자와 배급사, 극장이 네트워크를 만들면 단편영화의 새로운 배급 활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영작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팟캐스트 ‘문옥씨네’로>
옥인상영관 김종우 대표

-옥인동 친구들의 본업이 궁금하다. “나는 홍대 조소과를 졸업해 미술 작업을 하고 있다. 기자·디자이너로 일하는 친구도 있고,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도 있다. 미술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겨울철에 문을 열지 않는 이유는. “난방 때문이다. 낡은 집이다 보니 단열이 전혀 되지 않아, 겨울엔 전기료를 감당할 수 없다. 옥인상영관은 봄과 가을이 아름답고 쉬기도 좋다.”

-팟캐스트 ‘문옥씨네’도 진행하고 있는데. “옥인상영관 외에 공연장 ‘문래동 레코드’를 운영하고 있다. 문래의 ‘문’과 옥인의 ‘옥’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격주로 녹음하고, 문래동 레코드의 음악과 옥인상영관의 상영작 이야기를 번갈아 한다. 현재 150명 정도 듣고 있는데, 재미있다는 반응이 더러 올라온다(웃음). 인디 음악과 영화가 궁금한 분은 한 번쯤 들어주시길 바란다.”

<공간에 대한 관심이 단편영화로 이어지도록>
극장판 권다솜 대표

-이름을 극장판으로 붙인 이유는. “영화의 극장 상영 버전을 대개 ‘극장판’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명탐정 코난 극장판’처럼. 단편영화도 극장에 걸릴 수 있다는 의미로 지었다.”

-직접 배급을 문의하는 일이 쉽진 않을 것 같다. “감독 개인에게 배급 권한이 있는 경우, 대부분 반가워하며 선뜻 상영을 허락한다. 반면 대단히 호평받은 단편영화나, 장편영화로 발전하고 있는 단편영화의 경우엔 상영을 거절하기도 한다. 돈을 많이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웃음).”

-현재 극장판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최근 관객이 늘었다. 흥미로운 공간에 대한 관심을 단편영화로 이어지게 하는 게 관건이다. 가끔 구경 왔다가 ‘영화가 재미없다, 다시 안 온다’는 관객도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객에게 단편영화 특유의 매력을 보여줄지 고민하고 있다.”

글=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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