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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북한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 4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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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 진
논설위원

남북이 다시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10년 이산가족 상봉 이후 5년 만이다.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남한에서는 또 기대가 부풀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북한은 대화 속에 발톱을 숨겼다. 그런데도 남한에는 ‘남북대화 환각증’이 여전하다. 국가의 진로에 대해 환상적 기대를 갖는 건 위험하다. 북한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김정은 정권은 안정을 확보했나. 남북대화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결과를 책임질 핵심 세력이 있어야 한다. 북한의 2인자 3인방은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최용해 노동당비서다. 황은 국방위 부위원장이기도 하고, 김은 정권의 경호실장이며, 최는 시진핑과 푸틴을 만나는 특사다. 그렇다면 김정은과 황-김-최 4인 관계는 평안할까.

 황-김-최 3인은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과 오랫동안 잘 아는 관계다. 노동당 또는 국방위를 통해 얽혔다. 그랬던 이들이 장성택 제거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 서로는 잘 안다. 3인은 지금 건재하거나 출세했다. 3인은 서로를 믿을까. 그리고 김정은은 3인을 진짜 신뢰할까. 지금은 자신의 사냥개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물 수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까. 3인인들 김정은을 믿을까. 자신들도 하루아침에 장성택이나 현영철 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이들이 자신 있게 김정은에게 정책을 건의할 수 있을까.

 남북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려면 김정은이 개혁·개방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덩샤오핑은 1978년, 고르바초프와 베트남 공산당 정권은 86년 개혁·개방에 성공했다. 그들이 그랬던 건 개인숭배와 절대부패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숭배와 부패가 있는 정권은 개혁·개방을 할 수 없다. 외부 바람이 들어오면 인민은 오랫동안 속았다는 걸 알고 봉기를 일으킨다. 그러면 정권은 무너진다. 기회가 있었는데도 김일성과 김정일은 개혁·개방을 하지 못했다. 89~92년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질 때도 북한은 문을 닫았다. 권력이 확고했던 김일성·김정일도 개혁·개방만은 못했다. 그런데 권력이 취약한 김정은이 과연 할 수 있을까.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 한 북한 정권의 대화 목적은 오직 하나다. 남한으로부터 달러·쌀·비료를 받아내는 것이다. 그래야 정권을 연명(延命)하고 핵·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다. 김일성도 그랬고 김정일도 그랬다. 91년 비핵화 공동선언이 있었지만 2년후 김일성은 핵개발을 선언했다. 2000년 김정일은 김대중 정권으로부터 4억5000만 달러를 챙겼다. 약효가 떨어지자 2002년 연평해전 도발을 감행했다. 2007년 김정일은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엄청난 약속을 얻어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합의문은 허공에 날아갔다. 김정일은 2년 후 천안함·연평도를 저질렀다. 평화를 원하면 돈을 내놓으라는 협박이었다.

 그렇다면 아들 김정은은 무엇을 원할까. 개혁·개방일까. 아니다. 그 역시 돈이다. 31세의 불안한 권력자 김정은은 지금 돈이 필요하다. 자신이 뛰어난 지도자라는 걸 증명하려면 간부들에게 선물을 풀어야 하고 인민에게 옥수수라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스커드 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으려면 마무리 작업에 돈을 퍼부어야 한다. 그런데 다행히 남북대화라는 요술이 있다. 잘만 하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금강산 관광이 풀리면 1년에 3000만 달러가 들어온다. 5·24 조치가 해제되면 남한에 광물이나 수산물을 팔아 큰돈을 챙길 수 있다. 해주 앞바다와 개성 사천강의 모래만 팔아도 1년에 1억 달러는 벌 수 있다. 이런 돈을 주면서 남한은 무얼 얻을까. 북한 인민의 배고픔이 해결되나. 꿈 같은 얘기다.

 마지막 질문은 남한의 자세에 관한 것이다. 남한은 진정 무엇을 위해 남북대화를 하는 것인가. 단순한 평화인가. 그저 긴장만 없으면 되나. 남자들은 골프 치고, 여자들은 쇼핑하기 위해 북한의 도발만 없으면 되나. 평화는 편한 것이다. 하지만 2500만 북한 동포의 고통은 어떻게 되나. 좋다. 모른 척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핵은 어떤가. 북한이 어느 날 스커드 미사일에 핵을 장착이라도 하면 어떻게 되나. 남한은 그냥 머리에 이고 숨죽이고 살아야 하나. 핵미사일이 있다는데 과연 남한이 확성기를 틀 수 있을까.

 역사상 개혁·개방을 거부한 공산정권의 문제가 대화로 해결된 사례가 없다. 김정은 정권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공산주의가 나빠서이다. 공산주의의 본질이 그런 것이다. 물론 대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공산주의자와 대화할 때는 테이블 위의 손이 아니라 테이블 밑의 발을 보아야 한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엄격한 자세만이 남한의 환각증을 막아줄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