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TALK]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건 밑지는 장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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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저자, 서은국 연세대 교수

서은국 교수는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먼저 알고 행복에 대해 논해야 한다고 했다. “행복의 핵심인 쾌감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찾도록 만드는 신호이자 도구”라는 것이다. [김경록 기자]

사람들은 목표한 무언가를 이루면
대단한 행복을 느낄 거라 착각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밥 먹는 게 행복인데

많은 이들이 행복한 삶을 꿈꾼다.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서은국(49)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지난 27일 그를 만나 행복에 대해 물었다. 그는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심리학 박사를 받았다. 20여 년간 행복을 연구했으며, 지난해 『행복의 기원』을 출간해 행복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규정하는 것과 같다. 다만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구체적인 경험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행복이라는 개념을 따지고 들어가면 ‘뇌에서 만들어내는 플레저’(Pleasure)다. 플레저, 즉 쾌감은 행복의 핵심이다. 이 쾌감은 구체적인 경험이다. 배고플 때 먹고,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실질적인 감정이다. 쾌감을 유발하는 일들을 묶어서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얘기한다. 많은 이들이 행복은 마음가짐에 달렸다 하고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너무 오랫동안 철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는 말인가.

“아니다. 인간은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와 똑같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은 굉장한 오만이다. 생명체들은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그 목적은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인간만 그렇다고 착각할 뿐이다. 생명체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 살고 내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게 본질이다.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자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음식과 사람(타인)이 제일 중요하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인간이 쾌감을 언제, 왜 느끼는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쾌감 신호가 자꾸 울리게 만들어주면 된다. 쾌감은 생존에 필요한 도구인데 그걸 역이용하는 거다. 생존와 번식에 가장 필요한 자원인 음식과 사람이 가져다주는 쾌감을 동시에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겠나. 상징적으로 말해 행복해지려면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으면 된다는 거다.”

-스스로 행복해지려 노력하는 편인가.

“친한 친구 만나는 걸 좋아한다. (행복해지려면) 이게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본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참고 견디면 큰 행복이 오지 않을까.

“오늘보다 더 큰 행복이 내일이라고 해서 오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은 목표한 무언가를 이루면 대단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 행복도 너무 빨리 소멸한다. 1년, 10년 긴 시간 동안 뭔가를 이루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건 이런 관점에서 밑지는 장사다. 100가지 하고 싶은 일을 참고 목표를 이루면 100가지 일을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올까. 아니다. 그보다 터무니없이 작은 행복감에 불과할 거다. 사실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다. 또 행복한 삶이 제일 좋은 삶도 아니다. 아주 나쁜 사람도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이 (사회적으로) 루저가 되는 삶일 수도 있다. 행복하든 말든 그건 각자의 선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이 좋은 삶이라고 했다. 심리학자 대부분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마치 성경처럼 인용되고 사실인 양 얘기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그저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지구는 둥글다’ 같은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건 지나치다. 전혀 과학적인 얘기가 아니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을 꼽는다면.

“7~8년 전에 읽은 진화심리학 도서 『메이팅 마인드』(제프리 밀러 지음)다. 사람은 100% 동물이라는 확신을 준 책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1999년 일리노이대에서 7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고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 캠퍼스 교수가 됐다. 교수 생활 3년 만에 종신 교수직을 받았다. 미래가 보장된 상황이었지만 1년 뒤 한국행을 택했다.

-왜 한국에 돌아왔나.

“한국에서 사는 게 더 행복할 듯했다. 미국은 그냥 내 집 같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외롭고 향수도 느꼈다. 한국에 제일 친하고 가까운 친구들이 있어서 돌아왔다.”

▶서은국 교수가 추천하는 행복에 대한 사회심리학 도서 4권
글= 서은국 교수

『메이팅 마인드』
제프리 밀러, 김명주 옮김, 소소

마음(mind). 바로 이것 때문에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책은 사회심리학에 『종의 기원』 같은 파격을 던진 책이다. 다소 충격적이지만, 창의성과 같은 마음의 가장 우아한 능력들도 사실은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함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서은국 외 옮김, 김영사
 

행복이 손에 잡히지 않는 이유는 녀석이 우리의 예측과 다른 방향으로 늘 도망 다녀서다. 인생에서 대단한 것을 얻든 잃든, 우리의 장기적인 행복에는 큰 변화가 없다. 우리는 사장이 되면 대단히 행복해지고 팔을 잃으면 영원히 불행할 것이라는 틀린 예측을 하며 산다. 이런 예측 오류는 왜 생기며,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위트 있게 담은 책이다.

『Before the dawn: Recovering the lost history of our ancestors』
Nicholas Wade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철학적 사색이 아닌 과학적 설명을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유구한 시간 동안 호모사피엔스가 당면했던 문제가 무엇이었으며 어떤 해결책을 찾게 되었는지를 쉽게 설명한다. 이 여정에서 만들어진 ‘원시적’ 뇌와 몸을 가지고 우리는 문명인의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내가 낯설다』
티모시 윌슨, 진성록 옮김, 부글북스

며칠 전 선 본 남자가 싫은 이유, 고갱보다 고흐가 좋은 이유. 정말 그 정확한 이유를 스스로 알고 있을까. 많은 경우 우리의 선택에 대한 이성적 설명은 이미 원초적 수준에서 차려진 밥상에 뒤늦게 숟가락을 얹는 격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과대평가된 이성, 과소평가된 본능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의 책이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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