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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다이어트 왜 자꾸 실패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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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계 눈금은 마음에 달렸다

1 심리적 허기 채우려 먹고 또 먹어

Q (찌는 남편과 마르는 아내) 50대 중반 부부입니다. 둘 다 직장 문제, 자식 문제, 집 문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먹을 것, 특히 단것이 계속 먹고 싶습니다. 그래서 체중도 많이 늘어나고 있고요. 그런데 아내는 저와 반대로 식욕이 떨어져 체중이 계속 줄고 있습니다. 왜 이런 걸까요. 현실의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으니 저희 부부의 식욕 문제도 개선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뇌를 즐겁게 해주라는 윤 교수)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선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거꾸로 과다 수면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다 수면 현상은 뇌가 깨어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식욕도 줄거나 늘어날 수 있습니다. 식욕이 느는 건 심리적 허기를 채우려 하는 겁니다. 달달한 음식을 입에 넣을 때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것에 손에 가게 됩니다. 스트레스에 지쳐 울적하고 불안하고 짜증난 뇌에 맛난 음식을 넣으면 그 순간이나마 쾌감이 느껴지고 삶의 통증을 잠시 잊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식욕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간다는 건 뇌가 현재를 위기 상황이라고 인식하는 겁니다. 전투가 임박한 위기 상황에선 식욕이 줄어듭니다. 모든 감각을 위기 대처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적을 앞에 둔 군인이라면 한 끼 굶었다고 허기를 느끼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또는 스트레스의 종류와 강도에 따라 다양한 생리적 반응이 나타납니다.

 금방 해결될 스트레스 요인이 아니라면 지친 뇌를 잘 쉬게 해야 합니다. 뇌를 쉬게 한다는 건 뇌를 즐겁게 해주는 겁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 자연과 호흡하고 좋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통해 힐링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줘야 합니다.

 그리고 식욕저하와 체중감소가 계속된다면 몸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혹시 식욕저하를 일으키는 다른 내과적인 문제는 없는지, 우울증이 찾아 온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꼭 있습니다.

2 ‘빼야지’보다 ‘건강해야지’로 바꿔야

Q (뱃살로 휴가도 꺼려지는 주부) 30대 중반 주부입니다. 결혼을 늦게 해서 지난해 첫 출산을 했습니다. 휴가 시즌을 피해 다음 주 1박 2일로 호텔 패키지를 예약해 놓았습니다. 아이는 친정어머니가 봐주시기로 해 오랜만에 짧게라도 남편과 신혼 분위기를 즐기려고 합니다. 문제는 제 뱃살인데요, 호텔 수영장에서 비키니로 몸매 자랑을 하고 싶어서 한 달째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가면 몸무게에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더 우울해집니다. 휴가마저 가기 싫어지니 어떡하죠.

A (속상해하면 더 안 빠진다는 윤 교수) 바캉스 시즌 동안 체중계와 전투를 벌인 건 한두 분이 아니겠죠. 그런데 아침마다 올라가는 체중계에 큰 변화가 없으면 속상합니다. 마음속에선 자기 비난의 소리마저 들릴 수 있습니다. ‘넌 의지박약이야, 먹는 것 하나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 한다니 말이야’ 하고요.

 ‘뱃살을 뺄 수 있는 확실한 치료법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운동, 약물, 수술’ 등입니다. 그러다 속삭이듯 누가 말합니다. ‘덜 먹는 거 아닐까요’라고요. 맞습니다. 비만의 결정적인 치료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덜 먹으면 됩니다. 의학적인 측면에서는 비만의 결정적인 치료법이 아직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덜 먹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죠.

 요즘 먹방이 대세입니다. 방송국이 주방으로 변신한 것 같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먹방에 빠져드는 걸까요. 우리 뇌 안에는 쾌락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그 시스템이 좋아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것이 먹는 쾌감입니다. 먹방의 내용은 가볍게 보이지만 사실은 내 쾌감의 가장 강력한 요소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죠. 다이어트가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식욕은 쾌락을 동반한 강력한 생존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살이 찌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를 섭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필요 이상 먹고 있을까요. 심리적 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섭취하는 칼로리의 상당 부분은 인생의 스트레스를 위로하고자 먹는 심리적 허기에 의한 것입니다. 부부 싸움 후, 직장에서 상사에게 깨진 후, 먹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먹는 쾌락을 삶을 위로하는 데 사용하다 보니,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먹게 되고 그 남는 에너지가 모두 배로 가고 있는 겁니다.

 심리적 허기를 줄이는 것에서 다이어트는 시작돼야 합니다. 심리적 허기의 특효약은 ‘자유’입니다. 먹는 욕망을 통제하는 다이어트는 자유를 억압하기에 심리적 허기를 증폭시킵니다. 체중계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체중계에 오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만큼 더 먹고 싶어지니까요.

 우선 ‘체중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삶을 더 건강하게 즐기겠다’는 목표로 바꿔야 합니다. 똑같은 운동도 살을 빼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운동의 목적은 살을 빼려는 것이 아닌 ‘내 몸의 움직임을 느끼고 자연과 같이 호흡하는 것’이 돼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뇌는 이완되면서 자유라는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돼 있으니깐요. 먹는 것이 생존의 쾌감이라면, 자유는 생존을 통해 얻고자 하는 삶의 본질적인 기쁨인 셈이죠. 바캉스의 어원이 ‘자유’라고 합니다. 바캉스를 위해 굶지 마세요. 뱃살이 있건 없건, 바캉스 기간 멋진 곳 속에서 내 마음과 몸의 자유로움을 충분히 즐길 때, 슬며시 심리적 허기도 줄어들게 되니까요.

 먹어 가며 심리적 허기를 줄이는 방법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의식하면 식사하기, 영어로 conscious eating을 권합니다. 말 그대로 내 입속에 맴도는 밥알의 느낌, 음식의 향 그리고 색깔 등을 음미하며 식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음식 전문가도 아닌데’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단순한 식사 습관이 잠시나마 바쁜 일상에서 나를 분리해 나를 느끼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마음을 충전시킵니다. 마음이 충전되면 심리적 허기도 줄어들기 때문에 과식을 막아 주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됩니다.

 먼저 조용히 식사할 곳을 찾아봅니다. 자연과 가까운 곳이라면 더 좋습니다. 일과 관련된 것을 주변에 두지 않습니다. 음식은 건강에 좋은 것으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일은 잠시 멀리하고 내 내면의 감각을 일깨워 봅니다. 먹기 전에 음식의 향과 색깔 등을 느껴봅니다.

 그리고 세 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을 한 후 식사를 시작합니다. 천천히 잘 씹으며, 그 느낌에 집중합니다. 입안의 음식이 다 넘어가기 전에는 또 음식을 넣지 말고 입안의 음식을 충분히 느껴봅니다. 느린 식사를 하는 거죠.

 언제 그러고 있느냐, 답답하신가요. 이 이야기가 답답하다면 내 뇌는 너무 전투적인 상황입니다. 하루에 잠깐이라도 이런 이완의 시간을 가져야 오히려 강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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