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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따라 예술·낭만 차곡차곡, 홍대 옛 거리로 시간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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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홍대 주차장길 쪽에서 바라본 ‘서교 365’ 건물들 모습. 이곳은 1970년대까지 철길과 판잣집들이 들어서며 서교 365의 뒤편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넓은 주차장길이 생기면서 현재는 이곳이 정면으로 여겨진다. 가운데 ‘V자 계단’도 보인다. [김경빈 기자]

홍대 거리는 최근 빠르게 변화해왔다. 그런 가운데서도 홍대의 원형(原形)을 지키고 있는 공간이 있다. ‘서교 365’ 거리다.

 홍대 걷고싶은 거리를 따라 쭉 올라가다 보면 2~3층 높이로 비뚤비뚤 이어진 건물군을 만나게 된다. 이곳의 행정주소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5번지. 1980~90년대 젊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작업실을 하나 둘 꾸리기 시작하면서 개성 있는 풍경이 형성됐다고 한다. 현재 서교 365 앞쪽의 ‘주차장길’ 쪽엔 타로 카페와 옷가게가, 뒤쪽 ‘시장골목’엔 각종 먹거리들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서교 365 건물들은 하늘 위에서 본다면 폭 3~5m, 길이 200m의 거대한 기차 모양을 닮았다. 지금의 독특한 모습이 된 사연을 알기 위해선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지어지면서 주차장길을 따라 석탄을 운반하기 위한 철로가 만들어졌다. 70년대 들어 좁은 철둑 위엔 낮은 건물들이 하나 둘 들어섰다. 당인리선은 76년 폐선됐다. 지금도 서교 365 건물이 끝나는 지점엔 색상과 촉감이 다른 콘크리트 바닥이 뒤섞여 있다. 옛날 간이역의 흔적이다.

 건축가들은 서교 365에 주목한다. 조한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마치 테트리스 게임처럼 건물주들이 필요에 따라 벽면 사이사이에 새로운 공간들을 끼워 넣었다”며 “40여 년의 누적된 세월이 건물에 드러난다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들어 홍대에 불어온 상업화 바람은 서교 365를 휩쓸었다. 임대료가 치솟자 예술가들이 모이던 바와 작업실들은 인근 상수동·문래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들어오 면서 옛 모습을 잃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곳 주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이정균(58)씨는 “이곳은 한 달 임대료가 평당 200~300만원 수준이라 웬만큼 수입을 올리지 못하면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7월엔 서교 365의 명물이었던 갤러리 바 ‘로베르네집’이 문을 닫았다. 2002년 영업을 시작한 칵테일 바 ‘bar다’는 홍대의 옛 감성이 담긴 몇 안남은 곳 중 하나다. 배성민(37) 매니저는 “ 이곳에서만 파는 칵테일 ‘바다’는 이름 그대로 바다색을 닮아 빛깔에 먼저 취한다”고 자랑했다. 시장골목의 터줏대감 ‘홍대곱창’의 김영희(56·여) 사장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곱창볶음의 손맛은 그대로”라며 “가게를 옮길까 생각도 했지만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들 때문에 여태껏 남아 있다”고 했다.

 마포구청은 서교 365를 두고 철거와 보존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2006년 지역 재개발에 따른 철거 위기 때는 이곳을 지키려는 자생적 모임들의 노력으로 계획이 무산됐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증·개축이 이뤄지면서 생겨난 안전 문제와 상인들의 미관 개선 요구 때문에 서교 365의 운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아직까지 철거 계획은 없지만 서교 365에 대한 민원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글=장혁진 기자, 권혜민(고려대 경제학) 인턴기자 analog@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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