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한국 주도의 대북 정책 꺼낼 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고수석
고수석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올해 8월은 유난히도 길고 더웠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마저 가세해 더 지치고 힘들었다. 내일이면 9월이라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가을이 시작된다. 남북한에도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고 있다. 남북한은 지난 25일 극적으로 타결한 고위급 접촉의 합의사항인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을 9월 7일 판문점에서 갖기로 했다. 한국이 지난 28일 제의한 지 불과 하루 만에 북한이 호응해왔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원래 싸우다 지치면 친구가 되는 법”이라고 말했듯이 남북한도 이번에 친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친구가 되려면 지금부터 잘해야 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앞으로 예상하지 못한 악재가 나타날 것이고 방해꾼도 훼방을 놓을 것이다. 위기 다음에 기회가 오듯이 기회 다음에 위기가 온다. 성공적인 고위급 접촉 타결은 빨리 잊어버리고 차분하게 준비해야 한다.

 남북한이 분단된 것은 냉전의 산물이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냉전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남북한은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력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주변국들의 국익에 유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그들의 지지와 협력을 확보할 수 있다. 주변국들은 한반도가 자신들의 직접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남북한보다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전략적 인내’라고 하지만 ‘낙담에 의한 방치’에 가깝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2월 29일 자신의 임기 중 첫 북·미 합의를 했지만 북한이 그해 4월 13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기 때문이다. 결국 ‘2·29 합의’는 파기됐다. 그 이후 북·미 관계는 냉각기를 맞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공식적으로 국가주석에 선출되기 한 달 전에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했다. 그것도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 기간(2월 12일)에 말이다. 그 이후 북·중 관계도 불편해졌다. 그 틈새를 이용해 일본·러시아가 북한과 손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일본은 2013년 평양에 특사를 보냈고 지난해 ‘스톡홀름 합의’를 통해 북·일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다. 러시아는 지난 4월 27일 북·러 경제무역 및 과학기술 협력에 관한 의정서를 체결하는 등 경제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처럼 국익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한국이 먼저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력을 얻어 대북 정책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평화와 통일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북 고위급 접촉의 대표인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미·중·일·러의 정부 당국자 및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나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을 설명하고 이해와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1668~1744)는 “신이 세상을 창조했을지는 몰라도 역사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제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역사를 쓸 때다. 김 실장과 홍 장관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