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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뉴스] 매일 10시간 황토 뿌리는 ‘바다 위 소방수’들 “시꺼먼 거 보이지예, 적조가 시뻘건 게 아입니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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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20일 오후 3시20분 경남 거제시 동부면 율포리 가배(율포)항. 5t급 어선 209호(거제시청 지도선)에 몸을 싣고 5분쯤 지나자 어선 꽁무니로 검붉은 포말이 일기 시작했다. 가배항 해역의 쪽빛 바다는 어느새 검은 콜라색으로 변했다. 지난달부터 남해안을 강타한 적조(赤潮)였다.

 적조는 바닷속 플랑크톤이 과다 증식을 하면서 생긴다. 높은 수온과 바닷물에 유기양분이 많아지는 게 원인이다. 파도에 휘청이는 배를 간신히 붙잡고 선 김양호(41) 거제수협 대리가 말했다. “저 시꺼먼 거 보이지예. 적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적조라고 사람들이 다 시뻘건 줄 아는데 그게 아입니더.”

 위이이잉-. 쏴아-. 어선 209호와 10여m 떨어진 바지선 위에선 포클레인 한 대가 쉴 새 없이 바닷물을 배 위로 길어 올렸다. 바지선에 4~5m 높이로 쌓인 황토에 물을 부어 바다로 밀어내는 작업을 되풀이했다. 적조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황토는 적조 생물을 바다 밑으로 가라앉히고 적조띠를 해체하는 효과를 낸다. 김 대리는 “적조 방제 작업은 화재를 진압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적조 위로 황토를 뿌리는 이들을 보면 바다 위의 소방수 같다”고 말했다.

 황토는 적조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 지방자치단체에서 미리 확보해 놓는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성분 분석을 마친 뒤 인근 야적장에 비치해 놓으면 바지선이 2~3일에 한 번꼴로 오가며 황토를 실어 온다. 황토는 사실상 적조와 싸우는 유일한 무기다. 거제시는 올해 비축량 3만t 의 황토 중 4000여t을 바다에 살포했다. 우리나라 바다에서 주로 발생하는 적조 생물은 ‘코클로디니움’이라는 플랑크톤이다. 이것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게 황토다. 국립수산과학원 윤석현 박사는 “국내에서 적조 피해가 처음 발생한 게 1995년이고, 황토를 살포하기 시작한 건 96년”이라며 “황토는 싸고 구하기 쉽고 생태계에 영향을 덜 주는 등 장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붉은 흙이 쏟아져 내리는 바지선 뒤로 2~5t 규모 어선 8척이 계속 맴돌며 바닷물을 휘젓고 있었다. 10년 넘게 적조 방제 작업을 했다는 거제시청 어업지도과 박장원(41) 주무관이 말했다. “황토랑 바닷물이 잘 섞이게 ‘물갈이’를 하는 거예요. 요즘엔 배 한 척이 하루 40마일(약 64㎞)씩 물갈이를 합니다.”

 바지선 한 대와 어선 7~8척씩으로 구성된 선단이 거제시 둔덕면 앞바다부터 남부면 저구리 앞바다까지를 6~7군데로 나눠 적조 방제 작업을 했다. 적조 기간 남해 바다에서는 매일 오전 8~9시부터 오후 5~6시까지 매일 이런 작업이 반복된다.

 전문가들은 적조가 꽃이 피고 지는 것 같은 일종의 ‘자연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적조는 대개 오염이 심한 연안보다는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생성돼 연안으로 밀려온다. 윤석현 박사는 “적조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오히려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가두리 양식장이 거의 없어 어류 폐사 피해가 없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적조 방제 개념도 없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 양식장이 워낙 넓고 빽빽하게 들어차 피해가 심각하다”고 했다.

 “거기는 상황이 어떻습니까? 여기는 좀 낫네예.” 김 대리가 휴대전화로 다른 어선과 통화를 했다. 김 대리는 어민·시청·수협 관계자 등 18명과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방)도 만들었다. 엔진 소리 때문에 통화가 어려울 때가 많아서다. 이 단톡방에선 적조 상황과 어선 출항 상황 등을 공유한다. ‘가배 상황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면 바다 사진 등을 찍어 보내는 식이다. 이런 공조는 적조가 본격적으로 생기는 7월 말부터 최대 두 달간 지속된다.

 지난 25일 제15호 태풍 ‘고니’가 남동해안으로 북상하면서 기대했던 이곳에서의 적조 분산 효과는 미미했다. 풍속이 약하고 강수량이 적어져서다. 윤 박사는 “남해안 적조는 적조 생물이 사멸하는 9월 말이 돼야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적조와의 해전(海戰)은 중단 없는 전진, 전진이다.

거제 취재·액션캠 촬영=채승기·한영익 기자 che@joongang.co.kr

중앙일보 지면·디지털 융합 콘텐트 ‘액션뉴스’의 세 번째 현장은 거제 해역 적조 방제 현장입니다. 취재기자가 현장에서 ‘액션캠’으로 촬영한 영상을 지면 기사와 함께 온라인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에 게재합니다. 액션캠은 몸에 부착해 촬영하는 카메라로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생생한 현장감을 전합니다. 영상은 아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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