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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받은 돈 절대로 돌려주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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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

지금 전국 어디에선가 수사를 받고 계시거나 곧 받게 될 공직자나 정치인 피의자 여러분. 소중한 팁 하나 드리겠다. 수사의 칼날을 피하는 기본인 ‘1도(첫째 도망), 2부(둘째 부인), 3빽(셋째 빽)’은 익히 들어보셨을 테고. 이번 건 피의자가 해서는 안 되는 스페셜 팁이다. 절대로 받은 금품을 돌려주지 마라. 왜냐고? 돌려준다고 해서 뇌물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범죄 행위가 원점으로 되돌려지지 않는다. 또 걸리면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없다. 최근 3억원대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된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의원이 대표 사례다. 그는 지인을 통해 일부를 돌려줬다가 증거은닉 교사 혐의가 추가됐다. 지난 20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 선고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판결문을 보면 이 팁의 가치는 한층 명확해진다.

 13명의 대법관이 유죄의 심증을 굳힌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은 한 전 총리가 한신건영 부도 직후 한만호 대표에게 돌려준 2억원 등 3억원이었다. 3억원이 불법 정치자금 9억원 사건의 유무죄를 갈랐다.

 귀한 팁을 드렸으니 물어보자. 이 땅에 사법 정의는 살아 있다고 보는가. 한 전 총리는 “2015년 8월 20일 사법 정의는 죽었다”고 했다. 하지만 2013년 3월엔 정반대였다. 대법원이 당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5만 달러를 뇌물로 받은 혐의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자 ‘정의의 승리’라고 반겼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직전 한 전 총리는 “양심의 법정에서 나는 무죄”라고 했다. 무죄 주장은 피고인의 자유다. 다만 그것과 대법원의 유죄 선고는 차원이 다르다. 인간의 법정에선 유죄다.

 묘한 건 기업인들과 달리 정치인들은 대부분 증거를 코앞에 갖다 대도 혐의를 시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이 권력인 기업인들은 복귀가 가능하지만 정치인들은 아예 터전을 잃기 때문인 듯싶다. 그러니 한 전 총리도 나중에 ‘신(神)의 법정’에서 어떻게 되든 두 번째 계책인 ‘부인’술을 구사한 게 아닐까. 양심을 담보하는 소품으로 성경책을 활용해서 말이다.

 기소된 지 5년1개월 만에 막 내린 한 전 총리 사건에 승자는 없다. 검찰도, 법원도, 한 전 총리도 모두 부끄럽다. 한 전 총리는 수사 내내 묵비권 행사로 일관했다. 묵비는 피의자의 권리지만 약점이 있다. 유죄의 심증을 갖게 한다. 일종의 도박이다.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하던 내 눈에 피의자 한명숙은 위태로워 보였다.

 검찰은 다급했다. 5만 달러 사건이 1심에서 무죄선고가 날 게 확실시되자 선고 나오기 하루 이틀 전에 9억여원 사건에 대해 별도 수사에 착수했다. 보복 수사라는 비난에 휩싸였다. 법원은 비겁했다. 1심 무죄를 뒤집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2심 재판부는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상고심 선고를 2년 가까이 지체해 정의를 훼손했다.

 에필로그. 가장 큰 교훈은 ‘죗값은 언젠가는 치른다’ 아닐까. 노자의 도덕경 구절이 떠오른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빠뜨리는 게 없다.”(천망회회 소이부실·天網恢恢 疎而不失)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