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4월 8일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화 결렬을 선언한 지 4개월 만이다.
이에 따라 노사정위가 조만간 복원될 전망이다. 한국노총은 26일 서울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를 열고 노사정 대화 재개를 결정했다. 중집은 한국노총 지도부와 산별노조 위원장, 각 지역본부 의장으로 구성된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노사정위 복귀 시기와 방법은 김동만 위원장에게 일임했다. 김 위원장은 “기자회견 형식으로 노사정위 복귀의 심정을 조만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노총의 복귀와 동시에 열릴 예정이었던 노사정 4자 대표회담은 이날 열리지 못했다. 노사정 대표회담에는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참여한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복귀를 결정하고도 숨 고르기를 한 건 정부와 여당에 대한 항의의 표시다. 이 장관은 지난 2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26일까지 한국노총이 돌아오지 않으면 정부 단독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며 최후통첩을 했다. 한국노총이 의도적으로 이 장관이 제시한 시한을 넘기면서 힘겨루기를 시작한 셈이다. 향후 노사정 논의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와 달리 정부는 내년 대기업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는 데 맞춰 노동개혁을 올해 안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4월 대타협이 결렬될 때까지 대부분 의제에 대해 의견 접근이 이뤄진 데다 의견 충돌이 있었던 사안은 공익위원안을 중심으로 논의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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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위원장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논의 토대가 있기 때문에 속도를 내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정년 60세 시대에 맞춰 임금피크제는 당장 도입하되 호봉제를 역할·직무·성과형 임금체계로 바꾸는 문제는 2년의 기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노동개혁 일정이 정부나 노사정위의 생각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한국노총은 이날 중집에서 ‘추후 협상과 관련한 내용은 중집에서 논의한다’고 정리했다. 협상 과정에서 의제 하나하나를 깐깐하게 따지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지도부가 협상과 관련한 권한을 위임받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지도부가 합의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안건마다 중집회의에서 재논의해야 한다. 단 한 개 사안이라도 반발하는 세력이 생기면 노사정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지난 18일 중집회의가 내부 반발로 무산된 데다 이날 회의장에도 일부 노조원이 피켓시위를 하는 등 갈등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논의가 지지부진할 상황에 대비한 정부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채필 전 고용부 장관은 “플랜B(대비책)가 없으면 플랜A(합의문)도 없다”며 “합의 실패를 염두에 두고 정부가 주도해 갈 복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실제로 올해 초 협상에서도 정부는 “플랜B는 없다. 합의 외에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합의에만 매달리다 논의가 결렬되자 우왕좌왕했다.
또 법으로 시행할 것과 시행령으로 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해 협상에 임할 필요가 있다. 시행령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합의정신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통상임금은 시행령으로도 산정 기준을 정할 수 있다.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 문제도 중앙노동위원회의 ‘일반해고 사건처리 업무에 관한 심사요령’에 반영해 시행할 수 있다.
이런 문제까지 합의를 시도하면 공론화의 의미는 크겠지만 다른 과제까지 블랙홀로 빠뜨릴 위험이 있다. 지난 4월 결렬사태가 빚어진 원인도 따지고 보면 이런 협상 전략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준모(성균관대·경제학) 고용노사관계학회장은 “이젠 노사정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안정감과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려면 통상임금이나 근로 시간 단축과 같은 시급한 사안부터 합의해 국회로 보내고, 첨예하게 노사정이 대립하는 저성과자 해고나 취업규칙 변경 문제와 같은 것은 벼락치기할 것이 아니라 담론을 형성하는 투트랙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