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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묻고 조양호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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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김경빈 기자 중앙일보 부장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사무실에서 김영희 대기자에게 2018 겨울올림픽 준비상황을 설명하는 조양호 조직위원장. 겨울올림픽 유치위원장이었던 그는 ‘결자해지’의 각오로 조직위원장을 맡았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2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 겨울올림픽. 3수 만에 유치한 올림픽인데 막대한 운영비, 분산 개최 여부, 경기장 건설 지연까지 많은 논란을 불렀다. 이제 큰 고비는 넘긴 것 같다. 지난해 7월 조직위원장이란 가시방석에 앉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는 다양한 겨울올림픽 종목들을 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 큰 과제다. 김영희 대기자가 을지로 미래에셋 빌딩에 있는 평창 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서울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겨울올림픽 준비 상황을 들었다.

“평창을 다시 찾고 싶은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겠다”

김영희=대한항공 하나 경영하기도 벅찰 텐데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은 왜 맡으셨습니까?

 조양호=유치위원장을 맡아 유치에 성공했을 때 내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본업으로 돌아갔는데, 김진선 조직위원장이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후임자를 찾는 과정에서 그 자리가 내게 떨어졌습니다. 한진해운 일 때문에 고사했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해서…. 일이 힘들게 됐지만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각오로 맡기로 했습니다. 

 김=취임 후 1년 동안 조직위원회에 잡음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분산 개최, 개·폐회식장 이전, 활강경기장 변경 등 논란이 많아 언론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조=내가 맡기 전에 그런 문제가 있었고…. 이 때문에 전임자가 그만둔 것 같아요. 내가 와서 그것을 해결하느라 1년 동안 바빴는데, 올림픽의 효율성에 관한 것보다는 정치적인 것이 많이 개입됐고 지역적인 것이 많았습니다.

 김=지역적인 문제란 무엇입니까?

 조=우리가 겨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이유의 하나가 콤팩트(compact)라는 개념을 앞세웠던 겁니다. 모든 경기가 선수촌에서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 안에서 치러진다는 겁니다. 분산 개최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가 ‘어젠다 2020’이라는 게 나왔어요. ‘어젠다 2020’이라는 것은 올림픽에 비용이 많이 들어 적자가 심하니 그것을 분산해 다른 지역의 기존 시설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20과는 맞지 않아 분산 개최보다는 콤팩트로 가자는 논리였습니다.

 김=평창 말고는 쓸 만한 기존 시설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조=그렇습니다. 가령 원주에서 경기를 하고 싶어도 거기엔 기존 시설이 없어요. 강릉에서 할 수 있는 걸 원주에 새로 경기장을 지어서 한다는 건 추가 비용이 들어 불가능합니다. 토지는 시가 제공한다고 해도 허가사항, 건축설계에 시간이 많이 들고 올림픽이라는 것은 날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분산 개최의 뜻은 좋지만 내가 취임했을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김=조직위와 강원도의 갈등설이 있었는데 조직위와 강원도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조=시설에 대한 모든 책임은 강원도가 집니다. 강원도가 만들어준 시설을 갖고 경기를 운영하는 게 조직위의 일입니다. 시설에 대한 예산은 정부가 75%, 강원도가 25%를 맡습니다. 시설을 만들어 주면 그게 국제규격에 맞는지 테스트해 보고 선수들에게 맞게 운영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전 조직위원장 시절엔 강원도가 야당이고 조직위원장은 여당이다 보니 협조가 제대로 잘 안 됐던 것 같습니다.

 김=조직위원장에 취임한 뒤 내세울 만한 업적은 무엇입니까?

 조=내가 조직위를 맡았을 당시에는 3년 동안 여러 가지 국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신뢰를 많이 잃은 상태였어요. 제2의 소치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으니까요. 신뢰를 잃은 큰 원인이 경기장 건설이 지지부진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3~4개월 걸리는 걸 지름길을 찾아 빨리 준공한 후 프로젝트를 점검하는 IOC위원들에게 보여줬더니 이젠 궤도에 오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이번에 바흐 위원장이 와서 “올림픽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코멘트를 해서 우리에 대한 신뢰가 최종 확인된 셈입니다.

 김=평창올림픽이 추구하는 가치랄까 정신은 뭡니까?

 조=그건 강원도라는 지역이 올림픽을 계기로 관광지로 개발돼 세계관광지도에 평창의 이름을 올리는 겁니다. 티켓을 얼마나 팔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지역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김=강원도민들의 기대가 크겠네요.

 조=힘을 모아야 해요. 관광객들이 과연 올림픽을 할 만한 곳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나의 목표입니다. 이건 강원도민들이 스스로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그런 의미에서 강원도민들의 자세가 기대에 미치고 있습니까?

 조=아직은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앞으로 2년 동안 우리 조직위의 과제입니다. 항공사라는 것이 결국 서비스업이라 내게 그쪽의 경험이 많다고 할 수 있어요. 그걸 잘 살리려고 합니다. 강원도를 업그레이드시켜 관광객을 만족시키고, 그들이 강원도를 다시 찾게 만드는 일입니다.

 김=평창 겨울올림픽 슬로건 중 하나가 ‘Passion. Connected’인데 직역하면 ‘정열. 연결’인데 무슨 뜻입니까?

 조=그건 유치 경쟁 때 내세운 New Horizon(새 지평)이라는 슬로건에서 유래합니다.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말인데, 겨울 스포츠는 유럽과 북미에서만 생활화돼 있고, 다른 지역은 낙후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유치할 때 아시아라는 큰 시장에 겨울스포츠를 소개하고 관심을 갖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Passion의 P에는 Peace(평화), Possibility(가능성), People(사람), Place(지역)의 네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이걸 전부 연결시켜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뜻입니다.

 김=88올림픽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겨울올림픽도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조=올림픽은 운동뿐 아니라 한국을 소개하는 겁니다. 88올림픽이 전쟁 피해 국가에서 선진국 문턱에 있는 한국을 보여줬다면 평창올림픽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Morning Calm)” 한국이 역동적 한국(Dynamic Korea)으로 발전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김=여름올림픽과 달리 겨울올림픽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에서 하기 때문에 관객의 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겠지요?

 조=우리는 한국 사람만으로 채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베이징이 2022 겨울올림픽을 유치했으니 중국 사람들이 관심이 많아 한국으로 올 것입니다. 서울에서 평창까지 고속전철이 완공되면 1시간 안에 갈 수 있어, 서울에 머물면서 아침에 평창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올 수 있습니다.

 김=최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차기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베이징이 채택됐습니다. 2018년 평창, 2020년 도쿄, 2022년은 베이징인데 동북아시아가 올림픽을 싹쓸이한다는 인상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불평은 없나요?

 조=여름올림픽은 경쟁이 심한데 겨울올림픽은 제한된 시장이라 다들 안 하려고 해요. IOC가 안전성 있게 경기를 치를 나라를 찾다가 베이징에 착안한 것 같아요.

 김=한국 입장에선 잘되었네요.

 조=베이징과 합동(coordination)할 수 있어 나는 은근히 베이징을 기대했어요. 우리가 설상 경기에 익숙하지 않아 운영위원을 양성하는 것이 큰 고민입니다. 외국인 전문가를 많이 초빙해 교육시키고 있는 상황인데, 중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베이징 올림픽에는 우리 운영요원들이 가서 자문역을 하게 될 겁니다.

 김=평창올림픽 총예산이 14조원 정도 되고, 올림픽 자체에 필요한 예산이 2조3000억원 정도라는데 비용을 줄일 방법은 없습니까?

 조=조직위의 실제 가용예산은 2조원이 좀 안 됩니다. 이 예산은 민간인에 대한 인건비, 컨설팅 비용, 운영 장비 등에 쓰입니다. 이 예산은 10년도 더 전에 겨울스포츠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림잡아 짠 예산이란 게 문제입니다. 예산이 늘어난 건 10년 전의 견적을 업데이트하는 데서 생겼어요. 경제적인 올림픽을 하기 위해 장비 구매를 대여(rental)로 돌리고, 올림픽이 끝나면 되돌려 주는 방식을 취하려고 합니다.

 김=국민들의 관심은 금메달인데 몇 개를 예상합니까?

 조=경기 실적은 대한체육회(KOC)의 소관입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경기에 관한 모든 책임이 조직위에 있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돼요. 설상 경기는 아직 금메달을 딴 적이 없고 빙상경기가 메달박스인데 거기도 일본과 중국이 맹렬히 쫓아오고 있습니다.

 김=메인 경기 뒤에 열리는 장애인 올림픽에는 국민들의 관심이 적은데 이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생각입니까?

 조=우리 국민의 의식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장비에 따라 성적도 달라집니다. 이를 위해 정부 지원으로 좋은 장비를 줘서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좋은 성적이 나오면 국민들도 더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김=현재 이건희 회장이 IOC 위원으로 활동을 못하시고, 문대성 선수위원도 곧 임기가 끝납니다. 한국의 스포츠 외교에 큰 공백이 생길 것 같은데 조 회장께서 IOC 위원으로 나설 생각은 없습니까?

 조=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김=하실 의향은 있습니까?

 조=있습니다.

 김=대한항공이 인기 없는 탁구와 남자배구 팀은 왜 갖고 있습니까?

 조=선진국에서는 이런 스포츠를 클럽화해 재능이 있는 선수를 찾아 올림픽에 출전시킵니다. 하지만 개도국에서는 엘리트 선수만을 키웁니다. 중학교부터 집중적으로 교육시켜서 금메달을 따게 해요. 메달을 못 따면 졸업 후 사회 진출에 제약이 있어요. 그래서 인기 종목에만 몰려요. 대기업들이 그런 종목 선수를 맡아서 직업팀으로 키워줘야 스포츠가 다양화됩니다.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글=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정리=진은수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조양호는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1949년 인천에서 출생. 경복고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귀국해 군에 입대, 최전방과 월남에서 복무. 제대 후 인하대에서 공업경영학 전공으로 졸업. 74년 조 회장은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에서 경영학 석사, 88년 인하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에 입사 후 정비·전산·자재·기획·영업 등 항공사 경영에 필수적인 주요 부서에서 경험을 쌓고 상무·전무이사를 거쳐 수석 부사장을 지낸 후 92년 사장에 취임하고 2003년 한진그룹 회장이 됐다. 94년 경제 발전에 공헌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는 한국항공대 재단인 정석학원과 인하학원을 운영하면서 과감한 교육 투자로 인재 양성에 힘쓴다. 그는 남캘리포니아대 재단이사도 맡고 있다. 조 회장은 항공사의 유엔총회라고 하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집행위원을 2001년부터 맡아 항공외교에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2000년부터는 한불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경제협력과 민간외교에 힘을 쏟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를 받았다.

 그는 2009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뒤 현업으로 복귀했다가 2015년 몇 번의 고사 끝에 ‘결자해지’의 각오로 조직위원장 자리를 맡았다. “지고 이겨라”가 그의 생활신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