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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신흥국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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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가가 이틀 동안 폭락했다. 서방 언론은 궤멸(Rout)이라고 묘사했다. 시세 차익을 좇던 대륙 주식꾼들의 꿈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 BBC방송 등은 “황금인 줄 알았던 주식이 돌덩이로 돌변하는 모습에 상하이 증시 참여자들이 낙담하고 있다”고 25일 전했다.

주식꾼의 좌절은 증시 폭락이 연출한 풍경의 작은 일부다. 톰슨로이터는 “상하이 주가 폭락이 어떤 큰 사건의 신호탄일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상하이 추락이 1997년 5월 태국 증시 붕괴와 닮은꼴일 수 있다. 그때 주가 하락이 아시아 금융위기의 서곡이었다.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상하이 주가가 6월12일 정점에 이른 뒤 추락 중이다. 중국과 함께 브릭스로 불리며 이름을 날렸던 브라질·러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의 주가는 이 기간 동안 2~39% 하락했다. 이들 나라의 통화 가치는 2~18% 정도 떨어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차이나 쇼크(China Shock)가 다른 브릭스를 위태롭게 한다”고 묘사했다.

차이나 쇼크는 브릭스만 흔들고 있지 않다. 전통적인 교역 채널을 타고 충격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태국 등의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유럽 등 선진 시장 주가가 최근 급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차이나 쇼크는 자원 채널을 타고 번지고 있다. 중국이 2000년 이후 자원의 블랙홀이어서다. 무한 흡입력을 자랑하던 세계 공장 중국 경제가 주춤하자 원유·철광석·구리 등의 값이 추락하고 있다. 이들 상품 가격을 반영하는 블룸버그 상품지수가 1999년 이후 최저다.

블룸버그는 “2000년에 시작한 자원 가격 대세상승(수퍼 사이클)이 완전히 끝나고 원점으로 되돌아간 모습”이라고 평했다. 그 바람에 볼리비아?베네수엘라?나이지리아 등의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중국발 소용돌이가 세계 구석구석를 할퀴고 지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 경기 둔화→원자재?중간재 수입 감소→원유 등 상품가격 하락→펀드 투자 수익률 하락→글로벌 주가 하락이란 소용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머징 국가들이 “submerging(서머징, 침몰)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서머징’은 ‘The emerging is submerging(신흥국이 가라앉고 있다)’의 일부다. 멕시코 외환위기가 발생한 94년 월가 사람들이 멕시코 사태를 비꼬기 위해 만든 문장이다. 이후 이머징 국가들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어김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금융투기의 역사』를 쓴 에드워드 챈슬러는“‘The emerging is~’는 말이 신흥국 위기 상징어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징어가 다시 미디어에 오르내린다. 97년 이후 18년 만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위기의 10년 주기설’에 비춰 상당히 긴 잠복기다. 종전에는 일종의 신화가 있었다. ‘글로벌 경제 새 엔진론’이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2008년 미 금융위기 직후 “중국의 금융 시스템과 경제관료의 능력에 비춰 하드랜딩(위기) 가능성은 낮다”며 “이런 중국이 존재하는 한 신흥국이 위기를 맞은 선진국을 대신해 글로벌 성장을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는 거꾸로다. 중국이라는 새 엔진이 활력을 잃을 조짐을 보여서다. 이머징 국가가 받을 충격이 심상찮을 조짐이다.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커서다. 중국은 잠시 주춤하지만 경착륙할 가능성은 작다. 대신 중국의 우산 밑에 있던 신흥국들이 더 큰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는 구도다.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루치르 샤르마 이머징시장 총괄대표는 최근 칼럼에서 “역대 신흥국 가운데 중국만큼 규모가 커진 나라는 없었다”며 “이런 나라가 침체에 빠지면 다른 이머징 국가의 위기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중국이 빨아들인 글로벌 자금 자체가 만만찮다. 네덜란드 투자자문사인 NN인베스트파트너스(NNIP)는 최근 보고서에서 “양적 완화(QE) 시기 신흥국에 흘러든 달러 자금이 2조 달러 이상이었는데 현재까지 대략 1조 달러가 빠져 나갔다”고 밝혔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아시아 금융위기 때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에 흘러든 자금은 4000억 달러 안팎이었다. 멕시코 사태 직전까지 남미 지역에 유입된 달러는 2500억 달러 정도였다. 미 금융전문 매체인 글로벌파이낸스는 “QE 기간 동안 이머징 국가에 흘러든 자금의 규모가 이머징 역사상 최대였는데 이 돈이 본격적으로 빠져 나가면 신흥국 위기는 심화한다”라고 평했다.

게다가 글로벌 경제는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재정 위기의 후유증을 완전히 털어버린 상태가 아니다. 모건스탠리 샤르마 대표는 “글로벌 경제 체력이 상당히 약하다”고 진단해 신흥국에는 설상가상이다.

신흥국 위기는 선진국 금융위기나 유럽 재정위기와는 달리 환란(외환위기) 형태를 띈다. 위기 유발자인 중국이 외환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낮다. 외환보유액이 3조6513억 달러나 된다. 월가 전문가들은 다시 러시아와 남아공과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을 주목하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 값은 달러당 70루블 선까지 추락했다. 6월12일 이후 두달 여 새에 18% 이상 하락이다.
WSJ는 “중국발 나쁜 소식이 많은 신흥국에서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며 “적잖은 나라들이 이 난국에서 빠져나가는 게 힘겨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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