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반달리즘, 예술이 물건이 될 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고대 동서교류의 중심지였던 시리아 팔미라에는 3세기 로마제국에 당당히 맞섰던 제노비아 여왕의 꿈이 깃들어 있다. 지난주 이 도시에는 여왕이 결국 로마군에 체포됐을 때보다도 더 비극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평생 이 도시를 연구하고 자기 딸의 이름을 제노비아라고 지은 노(老)고고학자 칼레드 알아사드(83)가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돼 시신이 내걸린 것이다. IS가 주요 유물들이 숨겨진 위치를 물었을 때 고문과 협박에도 그가 끝내 입을 열지 않은 결과였다.

 알아사드에게는 그것들이 목숨을 걸고 지킬 역사였고 예술이었고 인류의 유산이었다. 하지만 IS에게는 ‘파괴해야 할 우상’이나 군자금을 위해 암시장에 팔아 치울 ‘돈줄’에 불과했다. 예술에 대한 이런 인식의 부재에서 반달리즘 이 발생한다.

 문화예술 훼손·파괴 행위를 가리키는 반달리즘은 5세기 로마를 파괴한 주범이 게르만족 일파인 반달족이라는 설에서 비롯됐다. 사실 현대에는 반달족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역사학자가 많지만 말이다. 박상익 교수에 따르면 고대 로마 건축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반달족보다 르네상스인들이 더 많이 훼손했다. 그들이 동경한 고대 그리스·로마와 비슷한 건축물을 지으려고 고대 유적의 기둥을 마음대로 빼다 쓰곤 했다는 것이다.

 반달리즘의 주체들에게 그것들은 그냥 ‘물건’이다. 사실 옛 유적과 유물이 보호받아야 할 역사의 증거물이자 예술로 인정받게 된 것은 근대 이후부터다. 예술의 개념이 생기던 시점과 비슷하다. 미술사학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에 따르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처럼 작가가 분명한 걸작조차 그 당시에는 성당을 꾸미는 데코레이션이자 종교 프로파간다로 여겨졌을 뿐이다. 그것이 창작자의 ‘자아의 대리 혹은 실현’인 예술로 여겨진 것은 근대 이후부터라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근대적 인식의 부재와 그로 인한 반달리즘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주 JTBC 보도에 의해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이 거대 청동조각 ‘3·1정신상’을 2007년에 온통 흰색으로 칠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사진 참조> 이름 있는 조각가인 원작자와 상의도 없이 브론즈 특유의 물성과 색채를 지닌 조각에 용감하게 흰색 칠을 한 것도 놀랍지만 그에 대한 해명이 더 놀라웠다. ‘작품’이 아니라 ‘전시를 위한 제작물’이라 도색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시각예술을 장식품이나 프로파간다 도구로 여기던 근대 이전 시대로 회귀한 느낌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