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대결이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자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나섰다. 지난 20일 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해당한다. 조선중앙TV가 21일 오전 방영한 화면에서 회의를 주재한 김정은은 서류를 꼼꼼히 훑어보면서 일일이 지시를 내렸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으로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군에 완전무장을 명령했다.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건 이번까지 모두 8차례다. 김정은이 취임한 뒤엔 처음이다. 그마저도 21일 오후 5시를 기해 전방부대엔 전시 상태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중앙군사위가 ‘비상확대회의’라는 이름으로 회의를 소집한 것도 처음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비상’ 을 붙인 것은 김정은의 의지를 보여주고 그 의도를 군인뿐 아니라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에는 김정은을 비롯해 군 간부 10명 등 총 16명이 참석했다. 군 수뇌부는 총출동했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이영길 총참모장, 박영식 인민무력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조경철 보위사령관 등이다. 이 중 이영길과 김영철은 이번 대남 도발을 직접 지휘한 인물이라고 정부 당국자들은 지목했다. 대남업무를 맡고 있는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 비서와 조용원 당 부부장, 군수공업을 담당하는 홍영칠 당 기계공업부 부부장도 배석했다. 특히 김영철은 21일 오후 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남조선의 정치·군사적 도발이 나라의 정세를 위기 일발의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남성욱(북한학) 교수는 “김정은은 권력을 물려받은 탓에 콤플렉스가 심하고 유달리 최고 존엄을 강조한다”며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이 이런 존엄에 흠집을 내기 때문에 이번 남북 간 극한 대결 상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또 “군부가 이에 편승해 충성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국지적 도발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김정은 시대의 대남 도발 패턴도 변하고 있다. 이전보다 과감해졌다. 북한은 그동안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에는 도발을 자제해왔다. 한·미 양국이 강력한 대응 태세를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도발을 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를 우려해서다. 하지만 지난 20일 포격 도발은 한·미 합동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기간 중 발생했다. 한·미 연합 훈련 중 북한이 군사 도발을 한 건 처음이다.
그동안 북한은 군사 도발을 했던 지역에선 추가 도발을 피했다. 최근에는 같은 지역에서 도발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북한군은 육군 1사단 관할 비무장지대에 진입해 귀순 인터폰을 누른 뒤 이를 뜯어 갔다. 목함지뢰 도발도 같은 사단 지역에서 일어났다.
한편 북한 외무성은 21일 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 단순한 대응이나 보복이 아니라 우리 인민이 선택한 제도를 목숨으로 지키기 위해 전면전도 불사할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북 모두의 자제를 요청한 중국을 겨냥해 “지금에 와서 그 누구의 그 어떤 자제 타령도 더는 정세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없게 됐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