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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정철근의 직격 인터뷰

김일성대와 학술행사 다녀온 박명규 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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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명규 서울대 교수는 김일성대도 우리 대학과 마찬가지로 대학 개혁, 국제화·융합화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김일성대·연변대와의 학술행사는 일단 말이 통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기가 다른 외국 학술행사보다 훨씬 쉬웠다고 했다. [오종택 기자]

한국 서울대와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 중국의 연변대학은 모두 해방 후 한민족이 세운 대학이다. 세 대학은 남북한과 중국 내 한민족 사회를 대표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서울대, 김일성대, 연변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중국 연변대에서 ‘고등교육의 발전과 전망’이란 주제로 공동 학술행사를 가졌다. 각 대학이 그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고 미래를 대비해 어떤 고민을 하는지를 나누는 자리였다. 2004년 당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러시아 극동대학 개교식에서 성자립 김일성대 총장을 만난 적이 있다. 이듬해 서울대 교수진이 방북해 김일성대에 공동 학술 교류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두 대학의 만남은 이어지지 못했다. 학술행사에 참석했다 18일 돌아온 서울대 사회학과 박명규(통일평화연구원장) 교수를 만나 김일성대의 최근 변화 등에 대해 들었다. 박 교수는 “김일성대도 국제화 추세에 발맞춘 대학 개혁을 고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 김일성대도 대학 개혁, 국제화를 고민하고 있다”
서울대·김일성대 10년 만에 만남
광복 70년 맞아 연변대서 학회
김일성대도 종합화·융합화 추구

-남북의 민간 교류마저 뜸해진 상황에서 이번 행사는 어떤 의미를 갖나.

 “남북이 함께 광복절을 기념하는 행사가 그동안 거의 성사된 적이 없다. 우리 민족 세 단위의 대표 대학인 서울대, 김일성종합대, 연변대가 함께 광복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공유했다는 것은 시의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대학이라는 조직은 어느 사회나 대단히 중요하다. 세 대학은 정권이 수립되기 전에 설립된 학교다. 대학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라는 것에 대해 민족 차원에서 대화를 나눈 것이 귀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결국 민족의 문제, 대학의 문제라는 보편적인 공감을 갖고 있으니까 하루 반나절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눴다.”

 -김일성대는 대학 교육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는가.

 “북한에서 김일성대는 ‘본보기 대학’이다. 북한의 교육·학술·사상 등 모든 면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다는 의미다. 유일한 종합대학, ‘외아들 대학’이라고도 부른다. 지금까지 민족 간부의 양성기지 역할을 해왔다는 자부심이 큰 것 같았다. 그런데 김일성대도 대학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세계적 추세에 맞으면서 새 세기 강성국가 건설에 요구되는 유능한 인재를 길러내도록 교육체계를 정비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2009년 이후 중요한 대학 체제의 전반적인 개혁, 종합화, 학과 학부체제의 개편, 교육 방법의 전환 등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일성대도 세계 일류 대학을 지향하고 있다. 전 세계의 대학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나름대로 상당히 추적하고 있었다. 뛰어난 교수, 연구 중심 대학, 일류 실험실, 연구 성과, 국제 교류 등을 세계 일류 대학의 특징으로 보고 이를 지향하고 있다.”

 -김일성대가 구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교육개혁 사례는 무엇인지.

 “법학부를 법률대학으로, 조선어문학부를 문학대학으로 승격하고 경제학부에서 재정대학이 분립했다. 대학 체계가 종합화되고 있다. 평양의대, 평양농대, 사리원농대를 편입해 의학·자연과학 분야도 강화하고 있다. 현실의 요구와 세계화 추세에 맞춰 실용화·종합화·현대화하는 사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이뤄지는 최신 과학 연구 성과들을 자신들의 실정에 맞게 교수 내용에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교수와 과학연구를 결합한 ‘연구형 교수제’도 실시하고 있다. 교육 방법도 주로 지식 주입식 교육에서 좀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교육의 형식을 추구하고 있다. 지식 전수 위주의 낡은 교육 방법은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표현을 하더라. 학점제·선택과목제·탄성학제 등 교육의 질 관리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해외 대학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참조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유를 어떻게 대응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전자도서관, 자연박물관, 수영장, 체육관, 기숙사, 식당 등 학교 시설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김일성대도 정보화·융합화되는 국제적 추세를 따라가고 있는가.

 “학문 간의 융·복합을 북한에선 ‘경계과학’이라고 표현했다. 21세기는 지식 경쟁, 상업 경쟁이 치열해지는 정보화 시대이므로 교육과 연구를 일체화한 복합형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교육을 중시했는데 지금은 교육과 연구를 같이 강조한다고 한다. 연구와 교육을 어떻게 잘 융합할 것인가, 그와 관련된 여러 변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적 성과를 이룩할 수 있는 젊은 학자들과 세계적 명성을 떨칠 발명가·설계가들을 더 많이 키워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를 위해 국제 학술 교류, 과학기술 공동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길 원하고 있었다. 서울대가 이런 김일성대의 니즈(needs)에 맞춰 교류할 부분이 많다고 본다. 서울대는 신희영 통일의학센터 소장이 의대 대표로 이번 행사에 갔는데 자기들도 의대 교수를 데리고 올 걸 그랬다며 아쉬워했다. 북한도 의학·과학·기술 분야에선 최신 학술 정보를 원하고 있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탓인지 남북의 학술 교류 등 민간 교류가 뜸하다. 민간 교류가 중요한 이유는.

 “통일이 된다는 것은 그 안의 사람들도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시장과 문화를 공유하고, 결혼·여행 등을 즐기는 행위가 하나의 단위로 모이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민간이다. 이런 것들이 다 모여야 정치적인 통일도 탄탄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은 통일’을 얘기하는데 작은 통일이 모여 이뤄지는 통일이 가장 좋은 것이다. 특히 언론, 대학, 종교 등 공공성을 가진 민간의 교류가 통일과 화해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원장으로 있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매년 통일 의식조사를 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어떤가.

 “통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의 이슈는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통일이 필요하다는 답변은 50~60% 선을 유지하는데 언제쯤 통일이 될 것 같으냐고 물으면 20년 이내는 20%에 머문다. 많은 응답자가 3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 통일이 돼야 하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실제로 통일은 여건이 잘 갖추어진 상태에서 순리적으로 가자는 의견이 많았다. 자기의 일상적인 생활의 불안정한 변화를 동반하는 통일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있다. 북한 핵실험이나 여러 충돌로 부정적인 인식이 쌓인 것도 있고 무관심이 더해진 결과다. 북한에 대해 과거에는 형제이고 도와줘야 한다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그런데 지금은 경계해야 된다는 비율도 커지고 있다. 이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염려스러운 변화다. 또 예전에는 대개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관용적이고 통일을 지지했다. 그런데 지난 2~3년간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이제는 학력과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불안정성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조금 더 신중하거나 회의적인 인식이 커졌다.”

 -김정은 집권 후 북한 사회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나.

 “첫째,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그만큼 돈이 중요해졌다. 탈북자들에게 북한에 있을 때 제일 큰 고민이 뭐냐고 물으면 돈 버는 것이었다고 대답한다. 그런 변화는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게 만든다. 농업 부문은 꽤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평양은 주택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다. 둘째는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급격히 확장될 때는 그 기회를 잘 타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고 그 속에서 더 힘들어지는 사람도 있다. 매년 조사결과를 보면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씀씀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북한의 변화가 주는 함의는.

 “통일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시장이 통합돼야 한다. 북한이 시장의 원리를 수용하고 시장의 삶을 체득한다는 것은 통합의 수준이 발전하는 것이다. 북한도 시장화가 되면 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원할 것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남북경협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5·24조치 해제를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논란이 있다. 꼬여 있는 남북 경제협력 어디서부터 풀어야 한다고 보는가.

 “기본적으로는 경제는 남북 서로가 필요로 한다. 한국 경제를 생각해서도 북한은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장기적으로 5·24 조치로 남북이 막혀 있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완전히 해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5·24 조치 중에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있지만 정보를 주고받는 차원의 교류 협력도 있다. 하지만 5·24 조치는 전체를 막아놨다. 지금 상황에서 대규모 인프라 투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도 불확실성 때문에 대규모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규모의 인적 교류, 학술이나 문화적인 협력사업은 먼저 풀 수도 있다.”

 -우리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통일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사회적으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우선 우리 사회의 통합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한국 안에서도 이념, 노사, 계층, 세대, 지역 간 이해를 달리하는 사람끼리 갈등하고 있다. 사실 갈등은 어느 사회나 있기 마련이다. 갈등을 하면서도 깨지지 않는 것이 통합이다. 사실 남북이 앞으로 통일하기 위해 경제력, 외교력도 키워야 하지만 우리 사회의 통합 역량을 높여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외국인도 많이 들어왔고, 다문화 가정도 다양한데 이런 사람들이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한다면 앞으로 큰 사회 문제로 등장할 것이다. 독일 학자들은 한국이 통일을 얘기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고 지적하더라. 통일 과정에서 민주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 견해가 다름을 인정하면서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평화통일 대신에 통일평화라는 개념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무슨 뜻인가.

 “행사에서 만난 김일성대 교수도 통일평화의 뜻을 묻더라. 평화통일은 평화적인 수단으로 하자는 개념이다. 통일평화는 한반도를 벗어나 동북아 평화라는 결과를 지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통일은 21세기 동북아의 평화 창출, 더 크게는 인류 평화의 핵심적 고리다. 한반도가 통일이 돼야 미·중, 중·일 간도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한반도 통일이 평화로 이어진다는 개념이 국제사회에서도 먹힌다. 중국은 한반도가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안정되길 원한다. 분단 상태에서 평화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분단평화는 끊임없이 불안과 갈등을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 분단평화가 아니라 통일평화로 가야 한다.”

박명규 교수는 …

1955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학부 때 사회학과 역사학 중 무엇을 전공할지 고민하다가 사회학 분야를 선택했다. 한국·중국·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연구했다. 그러다 민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남북 문제와 통일을 파고들게 됐다. 한국사회학회 회장을 지냈고 2006년부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통일평화원구원은 매년 국민들의 통일의식조사를 하고 있으며 남북한 간 통합의 정도를 계량화한 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박 교수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지내는 등 대북 문제와 통일정책 자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글=정철근 논설위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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