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배명복의 직격 인터뷰

‘중앙시평’ 칼럼집 낸 조윤제 서강대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조윤제 교수는 민주주의는 1인 1표, 자본주의는 1원 1표가 원칙이라며 “재벌이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총수 일가가 1원의 몇 배에 해당하는 표를 행사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인섭 기자]

조윤제(63)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경제학자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보좌관과 주영대사를 지냈다. 2009년부터 올 6월 말까지 6년 반 동안 중앙일보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약했다.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3주에 한 번씩 쓴 그의 ‘중앙시평’ 칼럼은 정치권과 학계, 관계에서 매번 화제가 됐다. ‘중앙시평’에 연재된 85편의 글을 엮어 만든 칼럼집(『제자리로 돌아가라』) 출간을 계기로 그를 인터뷰했다. 각각의 칼럼에 못다 쓴 내용을 후기 형식으로 일일이 덧붙인 점이 여느 칼럼집과 다르다. 인터뷰는 11일 중앙일보 논설위원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 칼럼을 쓰면서 중앙일보의 논조나 입장을 의식해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한 적은 없나.

 “없다. 어떤 주제에 대해 쓰든 가급적 정제된 표현을 쓰려고 노력하긴 했다.”

 - 혹시 수정을 요구받거나 몰고된 적은 없나.

 “한 번도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중앙일보 측에 감사하고 있다.”

 - 어렸을 때 꿈이 뭐였나.

 “딱히 생각나는 건 없다. 고등학생 때 사실 대학 진학을 안 하려고 했다.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꽃나무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서점을 하나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 그런 생각을 부모님께 밝힌 적이 있나.

 “그래서 야단을 많이 맞았다. 부모님 기쁘게 하려고 결국 대학에 갔다.”

 - 살면서 여러 경력을 거쳤는데 제일 좋았던 게 뭔가.

 “직업으로서는 교수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시간적 여유, 언로(言路)와 생각의 자유 등에서 특히 그렇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어떻게 만났나.

 “청와대에서 경제보좌관 임명장 받는 날 처음 봤다. 노 대통령은 경제수석 대신 경제보좌관을 두기로 하고, 세 가지 인선 지침을 줬다고 한다. 첫째 관료 출신이 아닐 것, 둘째 경제정책을 다뤄본 경험이 있을 것, 셋째 관료 사회에 포획되지 않은 사람일 것 등이었다고 한다. 그 기준에 따라 몇 사람 명단이 올라갔고, 그중 내가 낙점됐다고 들었다.”

 -얼마 전 광복 70주년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업적을 많이 남긴 대통령으로 1위가 박정희, 2위가 노무현으로 나왔다.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1980년대에는 매우 낮았고,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아주 형편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큰 줄기를 보게 되면서 평가도 달라지는 것 같다.”

 - 언젠가 노 대통령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나.

 “박 대통령은 18년, 노 대통령은 5년간 집권했다. 아무래도 세월의 길이를 뛰어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 칼럼에서 제일 많이 다룬 주제가 국가와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였다. 칼럼집을 통해 하고자 한 얘기를 네 글자로 줄이면 ‘공정 경쟁’ 아닌가.

 “정확하게 그거다. 경쟁을 강화하되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자는 게 핵심이다.”

 - 공정 경쟁을 위해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한 운동장으로 바꾸는 게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일관된 주장인데.

 “솔직히 나도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엔 언론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언론을 통해 보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정책을 맡아 일을 하면서 실제로 일어난 일과 언론 보도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단순히 몰라서 하는 실수가 아니라 언론사들이 각자 어젠다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도 많다는 걸 알았다.”

 - 냉철한 관전자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선수로 운동장에 뛰어든다는 얘기인가.

 “언론도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성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일부 언론의 경우 스스로 권력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면을 통해 힘을 과시하고, 정권을 길들이려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언론이 정치적 포장, 즉 프레이밍(framing)을 통해 힘을 과시하게 되면 정부 정책이 왜곡돼 장기적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비용으로 돌아갈 수 있다.”

 - 롯데 사태의 핵심은 지배구조 문제인가.

 “그렇게 본다. 롯데가 한국 기업이냐 일본 기업이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요즘 같은 글로벌화된 경제에서 이를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 롯데는 단순한 개인 회사가 아니라 국가 경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재벌 그룹이다. 총수가 연로해지면 아무래도 정보의 취합·분석·판단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 반복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 재벌 개혁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우리 경제의 재벌 의존도는 매우 높다. 재벌이 잘돼야 한국 경제가 잘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재벌의 총수란 자리는 단순히 부와 경제적 권력을 넘어 막강한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자리다. 사적인 영역을 넘어 공적인 자리다. 이런 자리가 전체 지분의 극히 일부를 소유한 가족 내에서 승계되고, 계속 지배되는 것이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가치와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근본적 의문이 있다.”

 -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꼭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재산권이 보장하는 것 이상의 권력을 행사하고 세습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1인 1표, 자본주의는 1원 1표가 원칙이다. 그런데 재벌은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총수와 그 일가가 1원의 몇 배에 해당하는 표를 행사하고 있다.”

 - 결국 순환출자 구조의 해소가 관건이란 뜻인가.

 “순환출자 고리를 하루아침에 없애도록 하는 것은 무리다. 미리 제시된 스케줄에 따라 단계적으로 축소해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줄이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계열사 일감을 몰아줘 재벌 2, 3세가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기업에 부가 쌓이도록 하는 것은 계열기업 소액주주들의 주머니를 털어 2, 3세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 재벌은 그나마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들이다. 교각살우(矯角殺牛)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걱정이 있는 게 사실이다. 오너 경영 체제는 장점도 많다. 오너 경영 체제에서는 자신의 라이프타임만이 아니라 자식 세대까지 생각하는 장기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창업자는 스스로 기업을 다 일구었으니까 회사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타고난 카리스마도 있다. 하지만 2세, 3세가 다 창업자와 같은 능력을 가지란 법은 없다. 적법한 재산권 상속은 시장경제의 근본인 만큼 완전히 인정해줘야 하지만 모든 계열사의 경영권을 한 사람의 집중적 의사결정에 맡기는 게 옳은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재벌을 해체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재벌이 가진 장점은 살려가되 조금씩 투명화하자는 것이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거나 오너 일가의 지분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일부 회사를 팔아 몇 개의 독립경영 체제로 분리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 삼성의 승리로 끝난 삼성 대(對) 엘리엇 싸움의 본질은 뭐였다고 보나.

 “롯데 사태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지배주주 가족 내 분쟁이라면 삼성·엘리엇 사태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내부주주와 외부주주 간 싸움이었다. 삼성은 엘리엇을 부도덕한 벌처 펀드로 몰아붙여 국민 정서에 호소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소수 지분을 가진 재벌가의 이익과 승계를 위해 계열사 소액주주의 이익이 희생될 때 소액주주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숙고하게 한 케이스였다. 엘리엇이 경영권을 장악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닌데 경영권 공방으로 몰아간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 것이다.”

 - 박근혜 정부는 노동·금융·교육·공공 등 4대 개혁에 올인하고 있다.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보나.

 “그렇게 본다. 처음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잘 안 보였지만 지금은 조금씩 가닥을 잡아 가는 것 같다.”

 - 임금피크제 도입과 저성과자 해고 조건 완화가 노동개혁의 전부인 것 같은 분위기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대기업 정규직 고용의 경직성 완화와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임금 체계의 개편, 그리고 이를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다. 기업들에는 고용, 근로자들에게는 이직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줌으로써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에서 경제의 적응력을 높이자는 취지다.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서는 고용의 경직성 문제가 없다. 당장 내일 그만두라면 그만둬야 한다. 문제는 전체 고용의 10%를 차지하는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다. 2013년 정부가 정년 연장이라는 혜택을 노조 측에 일방적으로 주고 이제 와서 해고 조건 완화와 임금피크제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잘된 접근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한을 정해 놓고 이벤트성으로 가게 되면 자칫 대기업에만 혜택을 주게 됨으로써 추가 고용이나 투자는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시간을 갖고 포괄적·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과연 청년 일자리가 늘어날까.

 “청년 일자리 문제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인구 고령화로 정년이 연장되는 반면 성장은 정체되고 있는 게 근본 문제다. 고학력 추세로 현장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문제도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임금 격차도 줄어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기술 수준과 생산성 향상, 대기업·중소기업 간 공정 경쟁 질서 정착이 필요하다. 독일처럼 동일 직종, 동일 노동이면 규모에 관계없이 비슷한 봉급을 받을 수 있는 임금 체계가 사회적으로 정착돼야 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정년퇴직이 마무리될 때쯤이면 지금 일본처럼 대졸 취업률이 다시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당분간 근로자들에게 임금 체계 개편을 수용케 하는 대신 대기업들이 청년고용 의무비율을 지키도록 하는 타협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국가 지배구조를 고쳐 대통령이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자는 입장인데, 최근 유승민(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태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제 아닌가.

 “민주화 이후 시장 권력은 점점 집중돼 온 반면 국가 권력은 점점 분산돼 왔다.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다고 하지만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예산권은 이미 국회로 넘어가 있고, 인사청문회 때문에 인사도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 무늬만 민주주의를 하던 시절, 국회에 권한을 많이 주는 것이 더 민주적이란 인식 때문에 시행령으로 할 수 있는 것까지 국회 입법 사항으로 넘긴 게 많다. 지도자를 직접 뽑았으면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조윤제 교수는 …

1952년 부산 출생. 67년 경남중 졸업. 70년 경기고 졸업. 76년 서울대 졸업(국제경제학). 80년 일리노이대 경제학 석사. 84년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세계은행 경제분석관. 89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분석관. 93년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95년 재정경제원 장관 자문관. 97년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2003년 대통령 경제보좌관. 2005년 주영대사. 2009년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글=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사진=신인섭 기자